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이 지났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이 1997년 11월21일.한국 경제는 외부의 긴급자금 수혈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그 바탕 위에서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액은 경상흑자가 이어지면서 세계 5위 규모로 불어났다.

7000달러까지 곤두박질쳤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로 올라섰다.

수출은 4000억달러 고지를 향해 순항하고 있고 280포인트까지 떨어졌던 코스피지수는 2000선을 넘나들고 있다.

위기를 딛고 일어섰기에 더욱 화려해 보이는 실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과연 위기를 극복하긴 한 것일까.

무엇보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1960년대 맨손에서 출발해 1990년대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며 세계를 질주하기까지,든든한 재산이 돼주었던 모험정신은 안타깝게도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글로벌스탠더드라는 명목 아래 밀려든 주주중시 경영과 각종 견제장치,새로운 지배구조는 기업인들이 리스크를 회피한 채 단기실적에만 매달리도록 강요하고 있다.

불안한 노사관계는 여전한 숙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내기는커녕 샌드위치의 공포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기업들의 현 주소다.

주식시장은 재테크 장터로 전락한 지 오래다.

기업들이 증시를 통해 대규모 자본을 조달했다는 얘기를 요즘 들어본 일이 있는가.

증시가 가계의 유휴자금을 산업현장으로 흘러들게 하기는커녕 기업자금을 주식 소각,자사주 매입 등으로 빨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규제의 칼자루를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는 정부다.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재벌경영을 탓했던 정부는 기업들의 모험적인 투자를 격려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와 덩치 키우기에만 골몰할 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모들의 아픔을 목도했던 청소년들은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제는 이 같은 속병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기업이 다시 나오고 도전정신에 충만한 젊은이들이 활개를 칠 수 있어야 한다.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