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실패 해답은 정부개입이 아닌 인센티브의 제도화에서 찾아야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스톡홀름과 오슬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노벨상의 영예가 누구에게 돌아갈지를 놓고 도박사들이 베팅에 열을 올릴 정도다.

특히 경제학상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실상 유일한 사회과학 분야 시상이라서 그렇다.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경제학상을 받는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늘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수상자로는 미네소타 대학의 레오니트 후르비치(90),프린스턴 고등연구원의 에릭 매스킨(56),시카고대의 로저 마이어슨(56) 등 3명의 미국 석학이 선정됐다.

[Focus]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제도설계이론' 후르비치, 배스킨, 마이어스 공동수상
최고령 노벨상 수상자로 기록된 후르비치와 그의 메커니즘 디자인(제도 설계) 이론, 좀 더 넓게는 게임이론을 발전시킨 두 후학들이 사이좋게 상을 받아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시장의 실패'에서 출발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은 경제학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한 회의론에서 시작됐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이기적인 동기로 경제 행위를 하더라도 이것들이 한데 모이면 사회 전체의 효용이 커지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원이 배분된다는 주장을 담은 표현이다.

'시장 기능'이 이기적인 개인의 행위를 조율하고 잘 꿰어서 새로운 조화와 선(善,virtue)에 이르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선,그리고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지적이 항상 있어 왔다.

만약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 틀인 시장 기능에도 신뢰를 보내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시장이 기대했던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라고 한다.

물론 시장의 실패가 목격되고 현실화됐다고 해서 시장이나 시장 기능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지고지선의 가치"라는 맹목적인 이해는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완전한 시장과 완전시장경쟁이란 애당초 경제학자들의 단순한 모델링 속에,추상화시킨 이론 속에 존재할 뿐이다.

⊙인센티브로 경제제도 개선

이처럼 시장의 실패를 받아들일 경우 이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 눈여겨 본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케인즈주의자들처럼 '정부의 시장 개입' 같은 손쉬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다.

이 이론의 기틀을 세운 후르비치 교수는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인센티브'에서 답을 얻었다.

잘하는 사람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시장의 규칙을 만들면 제대로 된 사회제도가 만들어지고 시장 기능도 개선된다는 것이다.

어떤 제도와 규칙를 만들고 그 제도내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경제활동을 하도록 할 경우,먼저 정확한 정보를 보고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는 것이 후르비치 교수의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은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종 경제 제도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명한 게임이론의 한 분야이긴 하지만 사고의 흐름은 정반대다.

시장 실패가 없다면 경제적 균형이 가질 수 있는 여러 특징들이 어떤 것인지 묻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특징과 요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경매,투표,공공정책으로 분야 넓혀

경매를 예로 들어 보자. 가장 큰 문제는 입찰자들이 담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정부 입찰 같은 데서도 똑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담합이 이뤄지면 시장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낙찰될 수밖에 없다.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은 이런 담합을 처음부터 배제시킬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이탈리아 중앙은행 국고채 입찰 시스템 개혁'에서 그 실용성을 인정받았다.

의대 졸업생들이 인턴을 할때 선호하는 분야와 그렇치 못한 과정이 있는 경우도 이 이론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이미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놓으면 비효율적으로 배분될 인턴십을 사회적 효용이 극대화되도록 규칙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 밖에 △오용 가능성은 적으면서 적용 대상은 최대한 넓힌 보험정책 설계 △공공재의 최적 공급량,최적의 과세 시스템 구축 등에도 폭넓게 응용돼 왔다.

⊙자본주의의 우월성도 입증

후르비치 교수는 이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 우월성을 역설했다. 인센티브가 없는 사회주의에 비해 개인의 이익이라는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자본주의가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는 특히 거짓 보고(내지 정보)가 만연한 사회주의를 혐오해 '하이에크식' 자유시장론자로 분류된다. 자유주의 사상가였던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가운데 어느 체제가 더 효율적인지에 대한 사상적 논쟁을 주도했다면 후르비치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우월성을 수학적 방법을 통해 이론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제도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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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 후르비치, 새뮤얼슨의 조교생활…매스킨은 2009년 연세대 강의 맡는다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의 선구자인 후르비치 교수는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난 191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38년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에서 법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경제학 분야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석사나 박사학위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과에서 복지-공공경제 메커니즘을 가르칠 정도로 경제학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지평이 넓었다.

그 자신도 평소 "나는 귀동냥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독학했다"고 말했다.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사뮤엘슨 교수의 조교를 지낸 시간이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매스킨 교수는 노벨상 후보로 계속 손꼽혀 왔지만 이처럼 빨리 수상할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2000년부터 재임하고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분야와 상관 없이 세계적인 석학을 영입해 왔다.

아인슈타인이 1호 교수였다.

매스킨은 특히 한국과의 인연이 많다.

2004년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특별강의를 했다.

연세대 경제학과에서 2009년 가을학기에 게임이론을 비롯해 학부와 대학원 각 한 과목씩을 직접 가르칠 예정이다.

마이어슨 교수는 역시 대규모 선거에서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분석 이론을 확립했다.

2005년 '경제적 의사 결정을 위한 확률 모형'이라는 저서에서 집단적 불확실성에 대한 수학적 게임 이론을 개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