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 딜로이트코리아 회장·국제금융대사 >

한국경제신문 10월8일자 A39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게 세상의 법칙이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인류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준 현대문명의 발달은 금융공학의 발전,자산유동화 확산,자본시장 개방,국제적인 인수·합병(M&A) 열기 등을 가져와 시장기능과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잦은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결국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한국경제의 앞날은 금융역량을 지렛대로 얼마나 성장의 기회를 찾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PEF)에 이어 국부펀드(SWF)의 부상(浮上)이 세계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펀드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업의 성장전략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발전전략도 획일적으로 같을 수도 또 같아서도 안 되겠지만 대체로 성공적인 모델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과거 2만달러 시대에서 3만달러 시대로 진입을 성공적으로 이끈 미국 영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는 물론,싱가포르나 홍콩,호주의 경험 등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인 금융부문의 경쟁력 강화가 국가경제를 한 단계 높이는 핵심 채널이라는 공통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를 테면 심장이 강해야 체력을 키울 수 있듯이,경제시스템의 심장역할을 하는 금융이 강해져야 국가경쟁력이 제대로 커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각국에서 통용되는 금융강국 건설을 위한 기본요건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규제완화,전문인력 육성,인프라 강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필수조건 외에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실천적 리더십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각국의 국제금융센터 구축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뉴욕,런던에 이어 상하이나 두바이에 이르기까지 10여개국의 노력을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우리나라도 금융허브의 로드맵을 열심히 그려 온 것은 사실이나,논의가 무성한 데 비해 결과는 빈약하다.

일례로 외환보유고의 적극적인 운용과 자산운용업 중심 허브 구축의 계기를 기대하며 출범한 한국투자공사(KIC)의 진척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금융강국 코리아'라는 국가발전 아젠다의 실행으로 핵심 제조업과의 성장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실천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둘째,혁신적 경영마인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은행의 자산건전성이나 자본적정성 등 지표면에서는 적지 않은 개선이 이뤄졌지만 수익구조나 경영행태 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과도한 예대마진 의존이나 외형적 자산경쟁과 대출의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금융 컨버전스 시대에 부응한 자본시장통합법의 도입을 계기로 증권 등 비은행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획기적 노력이 있어야 하며,금융글로벌화 시대에 차별화된 해외성장전략이 필요하다.

투자은행업무 강화를 통한 영업력 확대를 위해서도 더욱 혁신적인 경영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며 이를 위해 합리적 노조문화의 정착도 필수적이다.

금융기법과 재무역량 강화를 기업경쟁력 제고의 촉진제로 활용하는 것도 금융강국 구현(具現)을 앞당길 과제다.

셋째,의식의 글로벌화다.

금융강국은 하드웨어 개선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즉 국민의식의 개혁과 선진화를 요구한다.

최근에 만난 한 국제적인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CEO)는 서울과 상하이의 차이점을 얘기하면서 파견근무자를 선발할 때 보면 상하이에는 서로 가겠다고 하는데 서울에는 가겠다는 직원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 놓았다.

금융국제화는 금융인력의 육성 못지않게 유치,즉 해외전문가들이 국내에서 얼마나 활동하느냐에 달려 있고,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금융허브는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영어의 보편화와 같은 영업환경의 글로벌화 노력과 함께 무엇보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서 생산적 개방주의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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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허브 되려면 새로운 금융기법 과감히 도입해야

▶해설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금융센터를 심층 분석한 최근 특집기사에서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상하이 등이 아시아 '금융허브'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잡지는 주식 거래량 기준으로 아시아 금융센터는 도쿄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순이나 미국 유럽과 달리 아직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금융허브가 출현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도쿄는 자국 금융시장 중심인 데다가 홍콩,싱가포르에 이어 떠오르는 상하이가 군웅할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정부의 소망과는 달리 금융센터에 대한 기사 속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이라는 단어가 호주 시드니와 함께 '군소' 금융센터의 하나로 분류되면서 스치듯 잠깐 인용됐을 뿐이다.

반면 홍콩과 상하이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아시아의 월스트리트를 목표로 급성장하고 있다고 상세히 보도했다.

싱가포르에 대해서는 최근 '인도로 진출하는 관문'임을 내세워 글로벌 기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싱가포르는 특히 정교하게 조율되는 관리체제와 신속한 의사결정 집행, 경제와 정치의 안정과 각종 금융 인센티브 정책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 오일머니를 무기로 최근 급격하게 떠오르고 있는 두바이도 만만치 않은 금융센터 후보 도시로 들었다.

금융센터 또는 금융허브(hub)는 국내외 유수 금융회사들이 한 도시에 집결해 자금의 조달과 거래·운용 등 각종 금융 거래를 하는 지역을 말한다.

금융 거래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법률회사,회계법인 등 부대 비즈니스도 함께 모여 있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금융센터 앞에 '글로벌'이란 수식어를 붙일 만한 곳은 현재로선 뉴욕과 런던뿐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화가 계속되면서 뉴욕과 런던은 세계 금융자본의 블랙홀로 더욱 많은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금융센터들은 생존할 수 없을까.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금융센터들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전했다.

두바이는 중동지역으로 향하는 자본 투자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프라이빗뱅킹에선 스위스 제네바,보험과 재보험 분야에선 스위스 취리히와 버뮤다,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에선 시카고,인프라투자 분야에선 카타르,이슬람 금융에선 바레인의 예를 들었다.

전 회장은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지향해온 '서울'이 실질적인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된 다른 도시들처럼 차별화된 성장전략을 통해 새로운 금융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한편 국민의식도 이와 함께 글로벌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IT 분야에서 첨단을 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독 금융 부문에서는 아직도 후진국 소리를 듣는 한국으로서는 새겨들어야 할 말 같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