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번영없이는 평화 기약할 수 없다"공감대 형성
북한의 개혁·개방 통한 궁극적 변화 전제돼야
2007 남북 정상회담이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경제적 번영 없이는 평화를 기약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언급이 미약하고,인도적 문제들이 거론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10·4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로 한 발짝 더 내디딘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여지가 많다.
그러나 체제 유지에 부심하는 북한이 합의 내용을 잘 지킬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미 7년 전 1차 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도출했음에도 북한은 끝내 비밀 핵 개발로 치달은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남긴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
◎ "더 차분하고 실용적인 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국민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좀 더 차분하고 실용적인 회담이 될 것"이라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적지 않은 현실적 선물을 받아 내 출발 당시의 각오가 말의 성찬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2000년 1차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이번 회담은 보다 실무적이었다.
1차 회담 때 합의한 6·15 공동선언은 총 5개항으로 이뤄져 이번 8개항보다 적다.
내용면에서도 6·15 공동선언은 통일 방안,경제·사회·문화교류 방안 등 포괄적인 원칙만을 명기했을 뿐이다.
2차 회담에 남북 실무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 당시 180명이던 방북단 규모는 이번에 총 300명에 달했다.
기업인 등 각 분야 인사들로 구성된 특별수행원 역시 49명으로 2000년 24명에 비해 규모가 2배로 늘어났다.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은 "1차 때는 면담 장소에 북측에서 최고인민회의 간부만 나왔지만 이번에는 정부를 대표하는 부총리 철도상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했다"며 "경협 등 여러가지 협의 의제들을 다 반영하고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배려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제로섬'이 아닌 '플러스섬'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은 이번 합의를 제로섬(zero sum)이 아닌 플러스섬(plus sum)으로 평가했다.
그는 "1990년대 이전 남북대화는 성과를 내고 합의를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궁색하게 만들까,어떻게 하면 받지 못할 제의를 할까,상대방 제의를 어떤 명분을 내걸어 잘 거부할까를 우선 생각하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이 '플러스섬 회담'으로 진보한 것은 악화된 북한의 사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1990년대부터 소련,동구권 붕괴 등 탈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북한은 체제 안전에 불안을 느낀 데다 심각한 경제난까지 겹쳐 남측으로부터 최대한의 실리를 챙기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이 이번에 "경제공동체가 곧 평화공동체"라고 강조하면서 남북 윈-윈의 경제논리로 김 위원장을 설득,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건설 등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도 그 연장선이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당시에는 '남북은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합의조항에 따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경의선·동해선 연결 등의 후속 결과물을 낳았지만 2차 회담은 공동선언문에 곧바로 해주특구 신설,안변·남포조선협력단지 건설 등을 명기했다.
향후 실무협력의 속도와 이행 시기를 앞당겨 사업의 현실성을 한층 높인 것이다.
◎ 차기 정부에 대한 부담도
그러나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북핵 폐기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방북 전 핵문제를 의제화하겠다고 밝혀 기대가 컸지만 정작 합의문 4항을 통해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9·19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표현이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북한학과)는 "구체적 사안들이 들어간 합의지만,북한에 구체적 이익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명시돼 있고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이익은 추후 논의 등의 형태로 추상적으로 규정됐다"고 말했다.
예컨대 경의선 철도 개성~신의주 구간 개보수,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재포장 등은 차기 정부에 만만찮은 재정적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약속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이들 사업에는 각각 약 1조3768억원,44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야당인 한나라당과 상당한 논란을 빚을 소지가 있다.
◎ 북한의 궁극적인 변화 이끌어내야
이번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간 것을 비롯 서울~백두산 관광 직항로를 개설하고,내년 베이징 올림픽에 남북 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참가키로 하는 등 눈길을 끌 만한 내용도 많다.
그러나 국민들은 1차 회담 때의 학습효과로 인해 비교적 차분하게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보았다.
일회적 이벤트에 열광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남북관계를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북한을 지원하고,경제공동체를 만들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번 합의의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변화란 폐쇄·고립에서 벗어나 개혁·개방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민주 인권 자유 평화…)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쪽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공동번영을 통해 남북 간 경제 격차를 줄이는 것 못지 않게 국민 의식에서도 격차를 줄이는 것이 통일비용을 절감하고 실현 가능한 통일로 가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김홍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comeon@hankyung.com
북한의 개혁·개방 통한 궁극적 변화 전제돼야
2007 남북 정상회담이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경제적 번영 없이는 평화를 기약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언급이 미약하고,인도적 문제들이 거론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10·4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로 한 발짝 더 내디딘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여지가 많다.
그러나 체제 유지에 부심하는 북한이 합의 내용을 잘 지킬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미 7년 전 1차 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도출했음에도 북한은 끝내 비밀 핵 개발로 치달은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남긴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
◎ "더 차분하고 실용적인 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국민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좀 더 차분하고 실용적인 회담이 될 것"이라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적지 않은 현실적 선물을 받아 내 출발 당시의 각오가 말의 성찬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2000년 1차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이번 회담은 보다 실무적이었다.
1차 회담 때 합의한 6·15 공동선언은 총 5개항으로 이뤄져 이번 8개항보다 적다.
내용면에서도 6·15 공동선언은 통일 방안,경제·사회·문화교류 방안 등 포괄적인 원칙만을 명기했을 뿐이다.
2차 회담에 남북 실무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 당시 180명이던 방북단 규모는 이번에 총 300명에 달했다.
기업인 등 각 분야 인사들로 구성된 특별수행원 역시 49명으로 2000년 24명에 비해 규모가 2배로 늘어났다.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은 "1차 때는 면담 장소에 북측에서 최고인민회의 간부만 나왔지만 이번에는 정부를 대표하는 부총리 철도상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했다"며 "경협 등 여러가지 협의 의제들을 다 반영하고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배려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제로섬'이 아닌 '플러스섬'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은 이번 합의를 제로섬(zero sum)이 아닌 플러스섬(plus sum)으로 평가했다.
그는 "1990년대 이전 남북대화는 성과를 내고 합의를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궁색하게 만들까,어떻게 하면 받지 못할 제의를 할까,상대방 제의를 어떤 명분을 내걸어 잘 거부할까를 우선 생각하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이 '플러스섬 회담'으로 진보한 것은 악화된 북한의 사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1990년대부터 소련,동구권 붕괴 등 탈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북한은 체제 안전에 불안을 느낀 데다 심각한 경제난까지 겹쳐 남측으로부터 최대한의 실리를 챙기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이 이번에 "경제공동체가 곧 평화공동체"라고 강조하면서 남북 윈-윈의 경제논리로 김 위원장을 설득,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건설 등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도 그 연장선이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당시에는 '남북은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합의조항에 따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경의선·동해선 연결 등의 후속 결과물을 낳았지만 2차 회담은 공동선언문에 곧바로 해주특구 신설,안변·남포조선협력단지 건설 등을 명기했다.
향후 실무협력의 속도와 이행 시기를 앞당겨 사업의 현실성을 한층 높인 것이다.
◎ 차기 정부에 대한 부담도
그러나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북핵 폐기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방북 전 핵문제를 의제화하겠다고 밝혀 기대가 컸지만 정작 합의문 4항을 통해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9·19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표현이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북한학과)는 "구체적 사안들이 들어간 합의지만,북한에 구체적 이익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명시돼 있고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이익은 추후 논의 등의 형태로 추상적으로 규정됐다"고 말했다.
예컨대 경의선 철도 개성~신의주 구간 개보수,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재포장 등은 차기 정부에 만만찮은 재정적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약속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이들 사업에는 각각 약 1조3768억원,44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야당인 한나라당과 상당한 논란을 빚을 소지가 있다.
◎ 북한의 궁극적인 변화 이끌어내야
이번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간 것을 비롯 서울~백두산 관광 직항로를 개설하고,내년 베이징 올림픽에 남북 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참가키로 하는 등 눈길을 끌 만한 내용도 많다.
그러나 국민들은 1차 회담 때의 학습효과로 인해 비교적 차분하게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보았다.
일회적 이벤트에 열광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남북관계를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북한을 지원하고,경제공동체를 만들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번 합의의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변화란 폐쇄·고립에서 벗어나 개혁·개방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민주 인권 자유 평화…)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쪽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공동번영을 통해 남북 간 경제 격차를 줄이는 것 못지 않게 국민 의식에서도 격차를 줄이는 것이 통일비용을 절감하고 실현 가능한 통일로 가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김홍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