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비대칭과 역(逆)선택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9. 시장에 나오는 중고차를 왜 레몬이라고 부를까?
고장이 잦고 허접한 중고자동차를 영어 속어로 레몬(lemon)이라고 한다. 간혹 상태가 양호한 중고차도 있는데,이는 복숭아(peach)라고 부른다. 왜 중고차를 과일에 비유했을까? 레몬은 향도 좋고 맛 있어 보이는 색깔이지만 먹기엔 너무 시다. 반면 복숭아는 겉모양에 비해 맛이 좋다. 겉만 그럴싸 한 중고차와 속이 알찬 중고차의 차이를 레몬과 복숭아의 차이에 대비한 것이다.

중고차시장에서 중고차를 파는 사람은 자신의 차에 대한 정보를 다 갖고 있다. 몇 번 사고를 냈는지,어떻게 관리했는지,특별한 하자는 없는지…. 반면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은 이런 정보를 하나도 모른다. 아는 것이 없으니 단지 값을 깎는 것으로 혹시 모를 손실을 벌충하려 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처럼 한 쪽은 정보를 알고 다른 쪽은 모르는 데서 발행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경제학에서 역선택이란 좋은 것은 다 빠져나가고 나쁜 것만 남는다(선택된다)는 의미다.

◆나는 널 아는데,너는 날 몰라

모든 경제학 원론서가 상정하는 완전경쟁시장은 수요자든,생산자든 모든 정보(수요량,공급량,균형가격 등)를 다 알고,제품 품질은 균일하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런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어느 한 쪽은 아는 정보를 상대방은 모를 때가 허다하다.

예컨대 MP3플레이어를 살 때 생산자는 제품의 장단점을 다 알지만 수요자는 모른다.이렇게 거래 쌍방 간에 생기는 정보의 차이를 '정보의 비대칭'이라고 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인터넷 쇼핑몰의 이용 후기를 뒤져보고,그 제품을 써본 친구가 있는지 수소문도 해본다. 정보 부족을 만회해 판매자와 대등해지기 위해서다.

◆맥도날드·하버드의 위력도 '정보' 탓(?)

매출 세계 1위라는 맥도날드의 햄버거 맛은 별로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맥도날드를 찾아간다. 이는 '맥도날드'라는 브랜드가 햄버거 선택의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매장이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맛의 햄버거와 어린이 놀이기구,그리고 깔끔한 화장실을 제공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버드대 졸업생은 대개 사회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다. 그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서인가,아니면 아예 성공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학생들을 입학시킨 탓인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둘 다 맞다고나 해야 할까….

◆중고차시장과 '레몬 모형'

중고차시장으로 돌아가보자. 신차를 살 때는 제품 정보를 여러 경로로 파악하고,가격도 비교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고차시장에선 어떤 차가 좋은지 자신할 만한 정보가 없다. 운 나쁘면 겉만 멀쩡하고 속은 고장 투성이인 애물단지가 걸릴 수도 있다. 수요자들은 중고차 시장에 매물로 나온 차에 대해 기본적으로 품질을 의심한다. 그래서 중고차 시장의 가격은 파는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낮게 형성되게 마련이다.

반면 '복숭아' 수준의 중고차를 가진 사람들은 낮은 가격에 팔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중고차시장은 질 나쁜 중고차가 넘쳐나는 '레몬시장'이 된다. 정보비대칭이 매물로 나온 중고차의 평균적 품질을 왜 낮추는가에 대한 설명을 '레몬 모형(lemons model)'이라고 부른다. 미국 버클리대의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이런 설명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기업들의 역선택 고민

보험은 역선택 문제를 가장 깊이 연구하는 분야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건강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보험사는 동일한 조건의 집단에 대해 동일한 보험료를 매길 수밖에 없다.이 경우 건강이 나빠 보험금을 탈 확률이 높은 사람이 가장 유리해지는 역선택이 생긴다. 이 때문에 보험금을 과다하게 지급하게 된 보험사는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그러면 건강한 사람은 더더욱 보험을 기피하게 된다. 그래서 생명보험시장에는 악화(건강이 나쁜 사람)만 남고 양화(건강한 사람)는 구축될 위험이 있다.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기업들도 늘 역선택의 고민에 봉착한다. 내보내고 싶은 사람들은 악착같이 안 나가고,나가지 말아야 할 유능한 사람들이 명퇴금을 받고 전직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대출시장에서도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더 몰리게 되고,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때도 연봉 수준에 비해 능력이 처지는 사람들이 대거 지원하게 마련이다. 이는 금융회사나 채용기업이 거래 상대방(대출자,취업희망자)의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이 아닌 '피하고 싶은 사람'만 남게 되는 역선택 사례들이다.

◆주변에 흔히 보는 역선택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모르면 결혼도 역선택이 된다. 신랑감이 신용불량자일 수도 있고,신부감으로 성형중독자를 고를 수도 있다. 신용불량자나 성형중독자라면 자신의 약점을 숨기게 마련이다.

최근 논란을 빚은 학력 위조도 정보 비대칭에서 온 역선택의 결과물이다. 학력을 위조한 사람의 정보를 이들을 채용한 대학,기관 등에선 몰랐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거래 전에 자신만 아는 정보라면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회가 투명해진다는 것은 역선택을 최소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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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선택 예방법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생기는 역선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거래 쌍방간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문제를 해소하면 된다. 다시 말해 모자란 정보를 채우거나,상대방이 자신만 아는 정보를 악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선택의 위험을 안고 있는 기업 등에선 다양한 방법으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는 계약 전에 가입자들의 건강검진을 요구하기도 한다. 지병이 있는데 알리지 않고 보험에 가입할 여지를 없애고,가입자 본인도 모르는 질병을 미리 발견하는 이점이 있다. 자동차보험에는 자기부담금(deductible) 제도가 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가입자 차량 수리 비용의 일부를 가입자에게 부담시킴으로써 안전운전을 유도하는 것이다.

중고차시장도 수요자들에게 정보를 채워줌으로써 역선택을 줄인다. 중고차 중개업체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중고차 매물의 사고·수리·부품교체 등 차 이력을 제공하고 신차처럼 일정 기간 품질보증도 해준다. 망설이는 수요자들에게 중고차 매물이 '레몬'이 아니라는 정보를 제공해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은행에선 대출자에 대한 신용조사를 강화해 대출금을 제대로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보고,채용 기업들은 인턴사원 제도를 통해 취업희망자들이 열심히 일할 사람인지,아닌지 미리 검증할 기회를 갖는다.

요즘 결혼하기 전에 신용조회를 해보는 경우도 있고,중·고교 시절 졸업앨범을 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혹시 결혼상대방이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결함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미국,유럽 등지에서 먼저 살아보고 결혼할지를 판단하는 혼전 동거가 많은 것도 혹시 모를 역선택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