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가 낚싯대 사용하면 생산성 높아져

☞한국경제신문 9월4일자 A1면

[뉴스로 읽는 경제학] 노동생산성은 어떻게 결정되나?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지만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세계 최고인 미국의 68% 수준에 불과하고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경쟁국에 비해서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ILO)가 3일 배포한 '노동시장 핵심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52개 국가 중 근로자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이 2200시간을 넘는 나라는 한국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등 6개국이었으며, 이 가운데 한국의 근로시간이 2305시간으로 가장 긴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생산성(근로자 한 명이 1년간 생산하는 부의 가치)은 평균 4만3442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국의 68%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경쟁 상대국인 홍콩은 미국의 90%,싱가포르는 80%,대만은 70% 수준이었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6만3885달러로 조사됐으며 아일랜드 5만5986달러,룩셈부르크 5만5641달러,벨기에 5만5235달러,프랑스 5만4609달러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은 정보ㆍ통신기술(ICT) 발달에 따른 효율성 제고 때문으로 풀이된다. 노동생산성은 국내총생산(GDP)을 취업자 수로 나누어 산출됐다. 이를 근로자 1인당 연간 평균근로시간으로 나눈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노르웨이가 37.99달러로 가장 높았으며 미국은 35.63달러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 근로자들의 연간 근무시간은 1804시간으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조사됐다. 노르웨이 1407.1시간, 프랑스 1564.4시간과 비교하면 미국 근로자는 연간 300~400시간 정도 더 많이 일을 한 셈이다.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기자/안정락 기자 upy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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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3일 발표한 '세계 주요국 노동시장 핵심지표'는 세계 각국의 2006년 노동생산성을 비교 설명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면서도 생산해 내는 부가가치는 매우 낮다는 이야기다. 근면하다고 알려진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근로자의 근면성 외에 생산장비 기술지식 교육수준 등 여러 요인의 복합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단정하기 힘들다. 노동생산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시간당 노동생산성?

노동생산성(그냥 생산성이라고도 함)은 근로자 한 사람이 주어진 시간 안에 생산해 낼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말한다. 일년간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하기도 하고 한 시간 동안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전자는 단순히 '노동생산성' 후자는 '시간당 생산성'이라고 한다. ILO는 이번에 두 가지를 모두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미국의 68%수준이라는 것은 근로자 한 사람이 1년간 창출한 소득 즉 '노동생산성'을 미국과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 사이에는 노동생산성을 '시간당 노동생산성'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학자 맨큐도 그의 저서 '경제학'에서 노동생산성을 시간당 노동생산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맨큐경제학 15쪽)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계산하는 식은 간단하다. GDP(국내총소득)를 취업자×근로자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으로 나누면 된다. 따라서 GDP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높게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9월 조사 발표한 '생산성 제고를 위한 7대 과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80년대 4.1달러, 90년대 7.5달러, 2000년대(2000~2004년) 10.4달러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2000년대 노동생산성 10.4달러를 OECD 국가 평균(27달러)과 비교하면 38.6%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1990년 8.1%에서 2004년 3.2%로 최근 들어 크게 둔화되고 있어 선진국 진입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것도 노동생산성 하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기본적으로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근로자들이 사용하는 생산 장비나 보유하고 있는 생산 기술 등이 같다는 조건 아래에서 가능한 주장이다. 사용 장비가 차이가 있거나 보유 기술이 다르다면 근로자의 노력에 관계없이 노동생산성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다니엘 디포의 유명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들어 보자.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선원 크루소가 하루에 잡을 수 있는 물고기 마리수는 우선 그의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는 성능 좋은 낚싯대를 갖고 있느냐(물적자본), 낚시 기술을 제대로 알고 있느냐(기술지식), 섬 인근에 물고기가 많이 살고 있느냐(자연자본)의 여부가 어획량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크루소가 새로운 고기잡이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거나 배울 수 있는 능력(인적자본)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어획고의 변수가 된다. 이처럼 노동생산성에는 물적자본 기술지식 자연자본 인적자본 등이 영향을 미친다. 첨단 기술이 속속 개발되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이들 중 기술지식과 인적자본이 특히 강조된다. 새로운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할 뿐 아니라 새로 개발되는 기술을 빠르게 소화할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술지식과 인적자본을 교과서에 비유하면 교과서의 내용은 기술지식이고 사람들이 교과서를 이해하는 능력은 인적자본에 해당한다. 많은 국가에서 기업의 연구개발을 강조하고 교육에 많은 지원을 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기본적으로 물적자본 인적자본 기술지식을 확충해야 한다. 물적 인적 기술지식을 모두 합쳐 노동장비율이라고 하는데 근로자의 노동장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장비율은 하루 아침에 높아지지 않는다. 기업들이 첨단 공장을 짓고 특허기술을 확보하려면 투자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때만 가능하다.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이윤을 남기는 기업만이 성능 좋은 시설을 새로 들여 올 수 있고 연구 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입해 고부가가치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경쟁력은 장비만으로 갖출 수 없다. 근로자의 노력과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임금이 과도하게 오를 경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결과적으로 노동생산성이 하락할 수 있다. 실제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것은 과도한 임금상승률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임금상승률은 8.9%에 달했으나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4%에 그쳤다. 낮은 노동생산성의 원인을 근로자의 근면성과 직접 연결시키기는 힘들지만 지나친 임금 상승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하락시켜 결국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삼성경제연구소 등 경제 관련 단체 기관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려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대한상의는 이를 위해 근로자들이 과도한 임금 상승이나 파업을 자제하는 외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서비스 산업의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을 높여야 하며 △기업들이 자유롭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