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대회에 제출된 논제들을 보면서 매우 고무적인 느낌을 받았다. 많은 교사·강사들이 논술문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출자들의 노력과 정성,창의와 열정에도 불구하고 질이 고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논제는 주제도 좋고 제시문도 좋았는데 완결도가 떨어지는 한편,또 어떤 논제는 논술문제가 갖추어야 할 철학과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논술 훈련은 현실적으로는 대입 준비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방향성이나 철학은 엄정해야 한다. 논술이란 단순한 지식,혹은 글쓰기의 기교나 논리를 위한 논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깊게 하고 또 넓게 하려는 데 근본적 목적이 있다. 논술 주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적 담론을 넘어서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정성스럽게 준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주제가 좋아야 한다. 양질의 주제가 되려면 시대의 흐름이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거짓말'이나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혹은 '자살' 등의 주제 선정은 매우 적절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한편 각 제시문들은 스스로 독립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수험생들이 논술에 대한 답안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기에 앞서 제시문을 통해 무엇인가 배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응모작 2번(학원강사 전동진씨가 출제한 삶의 방식에 대한 논제)과 같은 경우는 제시문 자체가 나쁘지는 않으나 출처가 빠져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제시문이 반드시 고전 문헌이나 유명 저자의 글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나,고전적 가치를 가질 만큼 무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출제자 스스로가 창의적으로 제시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건은 제시문 자체에서 일정한 향기가 풍겨나올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논술 문제는 폐쇄형보다는 개방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지식을 묻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답변하기를 요구하기보다,혹은 단순한 요약을 요구하기보다 적어도 비교 분석의 성격을 갖는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응모작 1번(박상철 S·논술 강사가 출제한 '거짓말' 관련 주제)의 논제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일단 주제가 시대적 흐름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고 제시문들도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것들이었으며 물음의 형식도 비교적 무난했다. 다만 문제 1에서 거짓말을 정의하라는 요구는 개방형보다 폐쇄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응모작 8번(상산고 강영준 교사의 '자살, 실업' 관련 논제)과 2번의 논제가 완결도 관점에서 비교적 무난하다고 평가된다. 자살이나 개인주의,공동체주의는 확실히 시대의 흐름에서 중요한 것들이고 우리 자신들이 이에 대해 일정한 입장과 견해를 가져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응모작 2번의 논제에서 출처가 빠져 있는 것이 유감이고 또 응모작 8번 논제에서 요약만 요구하는 문제도 다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이번 응모에 제출된 논제들을 보면서 '좋은 시작'이라는 느낌을 가졌다(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학생들로부터 '좋은 글쓰기'나 '좋은 답안'이 나오기를 기대하기 전에 중요한 것은 바로 '좋은 문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