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2차 남북 정상회담, 경협은 북한이 변화 전제돼야
남북한이 2차 남북 정상회담(8월28~30일)을 평양에서 갖기로 발표한 지난 8일 국민이 보인 관심도는 7년 전인 1차 정상회담 발표 때보다 낮았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2000년 4월10일 1차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방송한 지상파TV 3사의 4개 채널 저녁 종합뉴스 시청률 합계는 47.4%였으나 이번에는 40.5%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의 신선함이 떨어져서였을까? 1차 정상회담이 가져다 준 학습효과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사상 첫 정상회담의 진한 감동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5억달러에 달하는 뒷돈을 북측에 주고 얻어낸 것으로 결국 드러나 퇴색했고,회담의 성과인 듯했던 남북 화해는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한방에 무너진 데 따른 실망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임기 6개월여를 앞둔 노무현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은 역설적으로 더 주목된다. 당장 노 대통령도 투명한 절차를 밟아 회담을 성사시킨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퍼주기'식 대북 지원 약속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 확약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불투명한 회담 추진과정

지난해 연말부터 정가를 중심으로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올해 8월15일 전후가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예상됐다. 정부는 그때마다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없다"고 거듭 손사래를 치더니 지난 8일 2차 정상회담 개최를 전격 발표했다.

그동안 "쉬쉬"했던 정부의 회담 성사 과정이 의혹을 산 건 당연했다. 정부는 더욱이 주무 부처인 통일부를 제쳐놓고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주도적으로 개입해 성사시켰다고 밝혔으며,노 대통령 측근들이 북측과 은밀하게 접촉한 흔적도 속속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가 중국에서 비밀리에 대북 접촉을 가진 데 이어 이해찬 전 총리가 지난 3월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 자격으로 방북했던 게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 준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차 정상회담이 발표되자 그제서야 이 전 총리는 "북·미 간,남북 간에 실리를 쌓을 수 있도록 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 전 총리가 방북 당시 대남관계 총책인 최석철과 깊이 있는 논의를 가지는 등 사실상 정상회담 특사 역할을 수행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투명하지 않은 추진 과정은 현 정부가 당초 약속한 원칙과 정면 배치된다. 정부는 대북정책을 법적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추진하겠다는 취지에서 남북회담 대표와 대북 특사 임명절차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남북관계발전법을 2005년 제정한 장본인이다.

◆금전적인 뒷거래 있나 없나

야당인 한나라당은 회담 성사 과정의 불투명성에 뒷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정형근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나라당의 간판 정보통으로 진작부터 정부가 2차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기해 왔던 터다.
정 의원은 "(북측과) 금전 거래가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1차 정상회담 사례와 북한의 대남관계 행태 등을 볼 때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1차 정상회담 사례란 김대중 정부가 2000년 사상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목적에서 북측에 5억달러를 지불한 것. 당시 정부는 대가 지불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으나 2003년 특검을 통해 정부가 북측에 1억달러를 송금하고,현대그룹은 4억달러 상당의 현물 등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북 '퍼주기' 논란의 시발점이었다.

게다가 1차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북측과 뒷거래를 담당한 접촉창구는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다. 정 의원은 이런 점에서 현 정부의 회담 추진 방식이 김대중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뒷거래 의혹이 간다고 꼬집었다. 반면 "2차 정상회담을 투명하게 추진했다"는 게 현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임기 6개월여를 남겨두고 굳이 2차 정상회담을 고집한 또 다른 명분이 향후 정상회담의 정례화,제도화라고 강조해 왔다. 정부의 바람대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상회담이 개최되려면 정치적·금전적 뒷거래 의혹이 한 톨도 제기되지 않도록 투명성 원칙이 견지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북핵 폐기없이 또 지원?

노 대통령은 대북 지원에 대해 "다 줘도 남는 장사"라면서 "선(先)투자 개념"를 제시했다. 1차 정상회담에서 성사된 남북 간 협력(금강산 관광,개성공단,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질적으로 뛰어넘는 남북 경제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남측이 북측의 도로,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과감히 자본을 투자해 북측의 경제 재건을 도와 상호이익을 도모하자는 전략을 축으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북측의 철도시설 현대화를 지원,대륙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하면 남측 기업들이 유럽시장으로 가는 값싸고 획기적인 물류 노선을 확보하는 이익을 볼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북한을 대외 개방으로 유도한다는 논리다.

정부는 비슷한 시범사례로 남측이 경공업 원자재를 북측에 제공하고,북측은 지하자원 개발권을 남측에 주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최근의 '유무상통(有無相通)'식 경제협력 모델을 들었다. 남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교환해 공동의 이익을 얻는 상호주의다.

그럼에도 당면과제인 북한의 핵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이번 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핵폐기 확약을 받아내겠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는 한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경제공동체 건설은 두고두고 핵 변수에 끌려다니게 될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성급한 대북 지원 약속이 다시 '퍼주기'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정상회담의 경험은 이런 우려를 더하고 있다. 1차 회담 후 북측은 화해무드를 조성하는가 싶더니 2002년 서해교전을 일으켰고,이어 2006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해 남북관계를 경색국면으로 몰아넣는 두 얼굴을 보였었다.

김홍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