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별을 보며 등교했다가 달빛을 받으며 하교하는 것'이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운명이라 했던가. 대부분의 고교생들은 하루 종일 입시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독서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손에 드는 책도 수능에 나오는 고전 위주다.

고3학생은 차치하더라도 비교적 여유가 있는 고1,2학생마저 '입시를 위한 문학 작품'에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읽어 보고 싶은 책을 읽어야 일상 속의 활력소가 되고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독서는 성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되었다. '고교 필수 고전소설 50선''세계고전 문학' 등의 제목을 단 수능 출제 예상 작품 모음집이 독서의 대부분이다.

물론 고전은 학생이 읽어야 할 책이다. 고전 작품 속 주옥같은 표현을 발견하는 기쁨과 작품 속에 내포된 선조들의 깊은 뜻을 깨닫는 보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고전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니 학생들이 자신의 기호나 관심 영역의 책을 두루 접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추천 도서들도 대부분 인문학이라 학생들이 과학 경제 정치 분야에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기 어렵게 한다. 이른바 '수능형 작품'들에 발목이 잡혀 모두 엇비슷한 작품을 읽게 된다. 쌍둥이도 얼굴이 다르듯이 어떤 학생은 추리소설을 좋아하고,어떤 학생은 장편소설을 읽어보고 싶어 하지만 결국 대학 입시라는 목적 앞에 한 곳으로 향하는 양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도행씨(경희대 1년)는 "고교 시절 좋아하던 지리 분야의 책을 읽다가 선생님,친구들로부터 이과가 왜 그런 책을 읽느냐는 소리를 듣고 책을 덮게 되었다. 독서마저 수능 위주로 가다 보니 문학이란 '분야'만 보게 되고,일반상식은 비문학 문제집에서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독서 방법 또한 문제다.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감동을 받기보다 작품의 주제와 의의,문법적인 내용을 외우다시피하는 것이 고등학생들의 현 위치다. 홍세기군(마산 창신고3)은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감동이다. 그런데 입시를 염두에 두다 보니 무언가를 자꾸 외우려고 하게 된다"고 밝혔다. 김민경양(부산 사직여고2)은 "문학,특히 시같은 경우에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표현법이 어쩌니 주제가 어쩌니 하고 단순한 '정보'로 머리 속에 주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종류의 양서를 접하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험의 압박감에 시달려 필수 작품만을 읽기보다 먼저 하나의 작품이라도 가슴으로 품어볼 수 있는 교육 분위기가 확산되길 바란다.

송지은 생글기자(부산 혜화여고 3년) jieuni4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