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3. 뷔페에 가면 왜 배 터지게 먹을까…매몰비용
"우리는 왜 뷔페식당에 가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까?" "나이가 들수록 합격 가능성은 떨어지는데 왜 30,40대에도 고시에 매달릴까?" "왜 도박꾼은 돈을 다 잃을 때까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할까?"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실상은 이처럼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고,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나 본전을 뽑아야 직성이 풀리며,미래 가치보다는 과거에 편향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는 무시하지 못하는 '매몰비용(sunk cost)'으로 설명된다. 인간의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매몰비용의 오류에 함몰돼 있는지 알아보자.

◆뷔페에 가면 '먹는 게 남는 것'(?)

뷔페식당에서 1만원을 내고 들어간 사람과 무료 식사권을 갖고 들어간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이 먹을까? 미국 심리학자 리처드 탈러의 실험 결과 두 그룹 간 음식 소비량에 상당한 차이가 났다. 돈을 내고 들어간 그룹은 나중에 배탈이 날지언정,음식 한 접시당 평균비용(1만원÷비운 접시수)을 낮추려는 듯 최대한 많은 접시를 비웠다. 분모(비운 접시수)가 커질수록 평균비용은 싸지니까.뷔페식당에 지불한 1만원은 이미 돌려받을 수 없는 매몰비용이라는 점을 잊고서 접시당 한계효용이 0이 될 때까지 먹고 또 먹는다.

이 같은 매몰비용 효과는 관람료가 비싼 공연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공연이 재미없고 지루하면 아예 도중에 나가 집으로 가서 잠자는 게 오히려 자신의 효용을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낸 입장료가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참고 듣는다.

◆본전 생각에 흔들린다

매몰비용은 문자 그대로 이미 파묻혔거나 가라앉은 비용,즉 회수할 수 없는 손실이다. 기회비용이 '하나의 선택을 위해 포기한 것 중 최선의 가치'라면,매몰비용은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회피할 수 없는 비용'이라 할 수 있다. 매몰비용에 무지하거나,이를 무시하는 행동을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지노나 도박판에서 보여지는 인간들의 행태다. 돈을 조금 잃으면 본전을 찾을 때까지 버티다 결국 남은 돈마저 다 잃는다. 본전 생각이 간절할수록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고시 합격에 목을 매는 '고시 폐인'들도 다를 바 없다. 응시 기간이 길어질수록 합격은 더욱 어렵지만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돈이 아까워 다시 법전을 붙잡는다. 정부가 벌이는 공공사업은 사업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더라도 이미 투입한 예산 때문에 끝까지 그만두지 못한다.

◆마음속에 회계장부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경제학과 심리학의 연구에 의하면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인간 심리와 행태에는 △타인에게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욕구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규범 △낭비를 싫어하는 성향 △중도실패에 따른 책임회피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제임스 탈러는 인간에겐 어떤 행동을 적자로 마감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ing)'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8000원에 영화표를 샀으면 마음속 회계장부에는 '마이너스 8000원'이 기록된다. 영화를 다 보면 장부는 '0원'이 되지만,다른 일 때문에 못봤다면 마음속에는 '8000원 적자'로 남는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아키스와 블러머는 사람이 일단 시간,돈,노력을 투자해 어떤 결정을 한 뒤엔 성공 가능성에 관계없이 과거 결정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매몰비용 효과)

◆속담과 시로 설명하는 매몰비용

선조들의 지혜를 담은 속담에서도 매몰비용에 관한 비유가 많다.'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에서 '외양간과 놓친 고기'가 바로 매몰비용이다.'엎질러진 물'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어 포기해야 할 매몰비용이긴 마찬가지다.

'가다 멈추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속담에서 일관성을 강조하지만,실제 현실에선 본전 뽑기 전에 못 그만두고 '못 먹어도 고(go)'로 치닫기 일쑤다. 그러고 보면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유행가 가사가 훨씬 합리적으로 들린다.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 흔들어봐야 소용없으니까.

"세상 살면서 우리는/ '그놈의 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그르치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길로 돌아서 가고 싶어도/ 너무 많이 와버려/ 돌이키기엔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그냥 그렇게 자신을/ 방치하는 사람들(이하 생략)"

이태연의 시 '매몰비용'의 일부다. '돌이키기엔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판단이 흐려진다는 매몰비용의 오류를 이보다 더 알기 쉽게 적절히 표현할 수 있을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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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의 '고집' 對 인텔의 '포기'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3. 뷔페에 가면 왜 배 터지게 먹을까…매몰비용
1969년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마하 2.2) 여객기인 콩코드 개발에 착수했다. 파리뉴욕 간 비행시간을 7시간에서 3시간대로 단축한다는 것이었다. 막대한 투자비에다 수익성이 희박하다는 비판을 무시한 채,두 나라는 1976년 드디어 상업 비행에 성공했다. 항공분야에서 미국을 앞질렀다고 환호성을 올렸고,학 모양을 한 콩코드는 '여객기의 귀족'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항공업계의 불황,기체 결함,만성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콩코드는 2003년 날개를 접어야 했다.

이처럼 잘못된 결정임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행동을 가리켜 '콩코드의 오류(Concorde fallacy)'라고 한다. 중도 포기할 경우 기존 투자비를 허공에 날리게 되므로 손해를 감수하고 계속 강행하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매몰비용의 오류'와 같은 개념이다. 경영학의 구루(guru)인 피터 드러커는 "포기에 관한 결정은 아주 중요한데 가장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서울대 2008학년도 논술고사 2차 예시문항 [문항 1]에서 매몰비용 개념을 묻고 있다.)

반면 인텔의 변신 성공사례는 '적절한 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한다. 1960,70년대 컴퓨터 메모리칩 시장의 80% 이상을 석권했던 인텔은 80년대에 이르러 일본 반도체업체들과의 가격경쟁에 밀려 위기상황에 처했다. 이때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는 고심 끝에 거의 대부분 인력과 생산시설이 집중된 메모리칩을 버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쪽으로 전환하는 경천동지할 결단을 내렸다. 이는 마치 육군을 공군으로 전환하는 수준의 변신이었다. 그 결과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세계 최고기업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과거의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고,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미래를 겨냥해 과감히 투자함으로써 콩코드 사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