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은 평균이다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15) 성형수술…평균치가 제일 예쁘다
어느 사진이 가장 매력적일까? 각 사진의 매력도를 1점에서 10점까지 매겨 보자. 단 남학생은 여성의 사진에 점수를 주고 여학생은 남성 사진에 점수를 준다. 이 사진은 유명한 실험이다. 이렇게 생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여러 사람의 얼굴을 컴퓨터를 이용해 조합했다. 조합의 기준은 평균값이다. 두 사진의 얼굴 윤곽을 수치화해서 평균값으로 새로운 윤곽을 그리는 방식이다. 맨 위에서부터 2명, 4명, 8명, 16명, 32명의 얼굴을 복합한 사진이다. 이 사진을 300명에게 보여주고 매력 지수를 매기도록 하였다. 결과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바 그대로였다.("attractive faces are only average." Psychological Science, Langloi, J.H. & Roggman)

'가장 평균적으로 생긴 사람이 가장 매력적이다.' 이 말이 곧 '가장 평범한 사람이 매력적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되어선 곤란하다. 윤곽이 이토록 평균적인 사람들은 사실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실은 평균값에 가깝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미인은 매우 특별한 존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주는 정보

직관에는 거스르지만 이 실험은 미(美)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부합한다. 이성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정보를 가득 담은 메시지라고 과학자들은 해석한다. 거친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좋은 유전자를 갖춘 2세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유전자를 갖춘 짝을 만나야 한다. 외모는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수만 대(代)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 정보를 감정의 영역에서 처리하게 되었다.

평균적인 윤곽은 수만 대를 거쳐 살아남은 유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평균에서 먼 윤곽일수록 특이한 형질을 갖춘 유전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한 세대나 두 세대밖에 버티지 못하는 치명적인 질병에 취약한 특이한 유전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 눈길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이성은 '난 수십만 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검증된 유전자만 보유하고 있어요'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중이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이런 식이다.

◆성형이 불쾌한 이유

2m 이상의 장신들만 판을 치는 농구 코트에서 일반인보다 작은 선수가 활약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틀림없이 인간 승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정신 장애를 타고난 학생이 수능 시험에서 전국 1등을 했다면 어떨까? 아마 신문과 방송은 이 학생의 학창 생활을 집중 보도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 경쟁할 것이 틀림없다.

키 작은 농구 선수나 수석 합격한 장애 학생은 왜 감동을 줄까? 의지와 노력으로 타고난 조건을 극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타고난 유전자나 환경보다 이를 극복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더 높이 평가한다고 단정해도 좋을까?

타고난 외모는 별로이지만 뼈를 깎는 훈련과 인내, 그리고 진짜 뼈를 깎는 성형 수술을 통해 미인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어떤 시선을 보낼까? 영화판과 드라마를 휩쓸던 미인 배우의 학창 시절 사진이 유포되었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면, 적어도 타고난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찬사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노력이나 열정은 칭찬하지만 미에 대해서만큼은 타고난 그대로의 모습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다움 그 자체가 정보라서 사람들이 외모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얻어 왔기 때문이라면 설명이 쉬워진다. 성형은 사람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익숙한 정보를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사기 행위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학력 위조가 주는 반전(反轉)

지난 3월 경찰은 명문 대학 졸업장을 위조한 유명 학원 강사 25명을 적발했다. 언론들은 이들이 가짜 졸업장을 내세워 학원생들을 끌어 모았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몇몇 기자들은 강남 학원가에 탐방 취재를 나갔다. 기자들은 위조 졸업장 사건으로 강남 학원가에 침울한 기운이 감돌 것을 예상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뢰가 땅에 떨어졌으니 일시적으로나마 사업에 지장을 받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한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연한 반응이었다. "어떤 대학 나온 게 뭐가 중요합니까? 잘 찍기만 하면 되죠."

아무리 학력이 좋아도 강의가 안 좋으면 학생들은 미련 없이 강사를 바꾼다. 이직이 빈번한 학원가에서 강사의 졸업장은 이미 신뢰성을 잃은 지 오래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어느 정도 감(減)해서 생각한다고 한다. 이것이 졸업장을 위조해 부당 이익을 착복했다는 성급한 추측보다 사교육 시장의 진실에 훨씬 가깝다.

학원가에 학력 위조가 극심한 것은 학력이 주는 이익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학력을 위조할 수 있고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진다. 학력이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한다. 남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평가하는 어떤 의미에서건 '실력'뿐이다. 학력 사기는 오히려 사교육 시장을 '실력 위주로 평가받는' 사회로 전진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경쟁이 치열하고 선택이 자유로운 사교육 시장에서만큼은 학력 차별이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름다움은 정말로 거죽일 뿐일까?

'Beauty is only skin-deep'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름다움은 거죽일 뿐이니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성형 수술의 유행 앞에 이 말은 지나치리만큼 도덕적으로만 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형 수술이 외모 지상주의의 원인이거나 아니면 그 결과라고 단정하고 성형이 유행하는 세태를 한탄한다.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외모나 학력은 그 사람에 대한 별 다른 정보가 없을 때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단서로 쓰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낯선 사람의 매력을 평가할 때는 평균적인 윤곽을 선호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고를 때는 이 원칙이 깨진다고 한다.(주디스 리치 해리스,'개성의 탄생') 접촉 빈도가 많을수록, 보다 깊이 알게 될수록 외모나 학력이 주는 정보의 비중은 낮아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성형 수술은 외모보다는 다른 정보로 평가할 수 있는 가치가 중요해질수록 그 필요성이 커진다. 학력은 별로이지만 정말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강사일수록 학력 사기의 유혹이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학에서는 한계를 이용해 설명한다. 한계 효용은 추가로 얻는 이익이며 한계 비용은 추가로 지불하는 비용이다. 한계 효용에서 한계 비용을 뺀 값이 (+)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의사 결정에서 한계 비용과 한계 효용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성형 수술로 얻는 한계 효용이 큰 사람이 성형 수술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외모 이외의 다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성형 수술의 한계 효용이 커진다. 즉, 성형 수술의 유행은 외모만이 전부가 아닌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의 지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로스쿨이 놓칠 수 있는 것

법학 전문 대학원,일명 로스쿨은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 있어 보다 체계적이며 선진적인 방식으로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사법시험 제도와는 명백하게 다른 제도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을 졸업할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법시험을 통과하면 법률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다는 뜻이다.(생글생글 106호 커버스토리 참조) 이는 로스쿨 제도의 논리적 취약점으로 지적받을 수 있다. 아래 학생의 글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의 대안은 무엇일까?

slowforest@eduhankyung.com


▶학생 글

김명훈 명지외고 2학년

로스쿨을 나와야만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조건은 조건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소지가 크다. 로스쿨은 지금도 고비용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히고 있는데 아무리 융자 지원을 해 준다 해도 학비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로스쿨이 사법시험을 통한 사회적 지위 상승, 조건의 불평등 해소를 막는다는 주장은 이 때문이다. 태어날 때 조건이 열악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로스쿨에 지원하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법대마저 폐지된다면 로스쿨만이 남는데 결국 선택권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중략)이 경우 로스쿨은 조건이 나은 사람들만을 위한 장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