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충실한 것이 내일을 준비하는 것"

[한국의 CEO-나의 성공 나의 삶] 허영호 LG이노텍 사장
허영호 LG이노텍 사장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회사를 두 번이나 살려냈다. 어깨에 힘을 줄 만한데도 그는 여전히 겸손하다. "최고경영자(CEO)는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만 할 뿐"이라며 몸을 낮춘다. 대학졸업 후 LG전자에서 TV사업부장을 하다 LG마이크론으로, LG이노텍으로 옮긴 뒤 대표이사직에 오른 것이 2002년의 일.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매출은 사장 취임 5년 만에 1조5000억원대로 불어났다.

◆성공의 비결은 '소통'

그가 처음으로 회사를 구한 이야기는 이렇다. LG전자에서 근무하던 그에게 TV 브라운관 부품인 섀도 마스크를 만드는 LG마이크론 대표이사 자리가 떨어졌다. 사장 자리에 올라 회사에 가보니 재무상황이 '엉망'이었다. 컨설팅 회사에 의뢰를 해서 회사진단을 받았다. 진단결과를 가지고 직원들에게 물었다. "우리끼리 우리 힘으로 회사를 살려보겠는가, 아니면 돈을 들여 컨설팅 회사 사람들의 말을 따르겠는가." 직원들은 "우리가 해보자"며 나섰고 다들 열심히 일한 덕택에 1년 만에 회사는 코스닥 상장까지 했다.

LG마이크론의 숨통이 트이자 허 사장은 바로 LG이노텍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가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로 느꼈던 것은 직원들의 저하된 사기. 만성적자를 겪어온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을 붙들고 "우리가 왜 이렇게 헤매는 것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경영층이 자주 바뀌고, 직원교육이 없으며,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꼽았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사장이 바뀌어도 제대로 굴러가는 회사를 만들어 보자. 교육과 투자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직원들이 작은 데서부터 성공을 체험하면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후로 LG이노텍은 매년 30~40%씩 매출이 늘고 있다.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성공비결로 꼽는다. 허 사장은 LG이노텍 광주 공장에 처음 가던 날 바로 5ㆍ18 묘역을 찾았다. 공장 사람들과 정서를 같이하는 동료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발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이기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개인별, 부서별로 목표를 정해 하나씩 달성해 가는 재미를 직원들이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제품이나 사람은 바뀌지 않았는데 2~3년이 지나자 성과가 나타났다. 최근에는 창조적인 문화를 강조하면서 신제품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일이 있으면 내가 간다

그는 1992년 LG전자 구미공장에 공장장으로 발탁돼 내려갔다. 당시 구미공장은 자체 개발한 부품이 품질사고를 일으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었다. 공장 근로자 중에는 허 사장보다 10년 이상된 '선배'들도 많았다. "어린 사람이 서울에서 내려와 설친다"는 불평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일이 먼저였다. 그는 광주공장 시절을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배운 시기"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 곳에서 해결사 역할을 한 데 대해 그는 '차려진 밥상에서 먹기만 하는 것보다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게 체질에 맞다'고 말했다. LG전자에서 LG마이크론으로 옮기고, 또 다시 LG이노텍으로 자리를 바꿨을 때도 누굴 원망하지 않았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그는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젊은 사람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듯이 환경을 선택할 순 없습니다. 이럴 땐 중심을 잡고 길게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 나이는 만 한 살"

그는 "지난해 6월10일 다시 태어났다"고 말을 꺼냈다. 곤지암에 있는 한 골프장에 들렀다가 '벼락'을 맞았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갔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집주소며 이름을 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배꼽 밑으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 사장은 "그땐 앉을 수만 있으면 고맙겠다고 생각했고 4시간 만에 엄지발가락 끝에 감각이 돌아왔을 땐 일어설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행복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사고 이후로 "세상을 다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허 사장은 '대한민국 독종 CEO'라고 불릴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낙뢰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일주일 만에 일터로 복귀했을 정도다. 그는 "스스로에게는 매우 독한 편"이라며 일례로 그만의 불면증 치료법을 소개했다. "한때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어느날 생각해보니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스트레스의 균형이 깨져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기는 어려우니 새벽부터 걷고 뛰면서 육체적 스트레스 강도를 높였죠. 그래서 불면증을 없앴습니다."

학창시절에도 그는 '독종'에 속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고무신을 신은 채 친구들과 놀러다닐 정도로 '말 안 듣는 학생'이었지만 욕심이 많아 공부도 잘했다. 오전 4시에 깨워주지 않으면 어머니를 닦달할 정도로 '독하게' 공부했다.

◆떠날 때 박수받아야 행복한 월급쟁이

허 사장은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올 때마다 두 시간가량의 강의를 한다. "신입사원을 보면 내가 이 사람들에게 어떤 꿈을 줄 수 있나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대기업이라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해 우리 회사를 선택했다면 지금이라도 바꾸라는 거죠." 열정과 도전정신이 없는 사람은 조직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의 좌우명은 '현실에 충실한 것이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이다. 벼락을 맞은 일이 있은 뒤 한 사찰에서 4박5일간 머물며 머리를 비웠던 적이 있다. "한 노스님께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늘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내일을 대비하는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허 사장은 월급쟁이로서의 기쁨을 '떠날 때 박수를 받는 것'이라고 꼽았다. 그는 "제가 떠나는 날 후배들이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주면 행복할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김현예 한국경제신문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