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혹은 가족들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에서부터 공적인 문서를 작성하거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연설문을 쓰는 일들도 긴장되고 설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글의 종류에 따라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서늘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글이든 원고지를 마주하고 앉으면 가슴은 조용히 떨려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점에 있어서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나 아마추어들이나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논술경시대회에 참가해 글을 쓰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우선 까다로운 논제를 독해해야 하고 논제들을 일관되게 꿰뚫고 있는 주제어를 찾아내야 하며 정해진 시간 안에 지시된 분량을 써내야 합니다. 그것도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학생이 실력을 겨루는 경시대회입니다.

그러니 글을 써내려가면서 가슴도 떨릴 것이고 때로는 마음대로 글이 풀리지 않아 답답하기도 할 것입니다. 더구나 시간이 모자라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가슴이 아니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겠지요.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학생들이 시험문제에 첫 눈길을 주는 바로 그 순간이면 논제를 출제했던 선생님들 또한 가슴을 졸이게 됩니다. "내가 낸 문제를 수험생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또 얼마나 좋은 글을 써 줄 것인가" 하는 설레는 순간을 동시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글이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즐거운 고통 속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답안지를 모아서 정리한 다음 빨간 사인펜을 들고 채점을 시작하는 순간은 어떨까요? 사실 채점 과정만큼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일도 없습니다. 정말 지루하고 짜증나고 괴로운 일입니다. 비슷비슷한 답안이지만 무언가 꼬투리를 찾아 각기 다른 점수를 주어야 하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입니다.

그러나 잘 쓴 한 장의 답안을 마주하게 될 때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합니다. "이것 좀 봐! 이 학생 정말 잘 썼어"라고 채점 선생님들끼리 돌려 읽으며 즐거워합니다. 이번에 수상한 학생들의 답안도 그렇지만 수상작에 들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정말 좋은 글이 많았습니다.

제3회 생글 논술경시대회에 참가한 6500여명의 응시자에 대한 채점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개인별로 첨삭된 답안지와 채점표,총평을 보내드립니다. 기대했던 점수를 받은 학생보다는 실망스러운 점수를 받은 학생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시험의 속성상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논술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학교들마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또 선생님들의 노력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생글 논술경시대회는 고3 유형과 고1,2 유형으로 나누어 실시되었습니다. 인문계 고3 유형은 사람들의 인식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류들에 대해 물었고,고1·2 유형은 역사기술에 대한 전통적인 주장들과 함께 식민지근대화론의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한 제법 익숙한 문제들이 출제되었습니다. 자연계 문제들은 수학과 과학이 적절히 조합된 것이지만 눈에 띄는 답안이 썩 많지는 않았습니다.

인문계 고1,2 유형은 주제는 어렵지만 서술하기는 비교적 쉬운 문제였고,고3 유형은 내용은 쉬웠지만 글로 정리하기는 꽤 까다로운 문제였습니다. 출제자들이 기대했던 답안보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던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논술은 단순한 글쓰기는 아닙니다. 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역시 생각하는 힘에서 오는 것이고 논제를 서술하는 것 역시 논리적 구성력에서 오는 것입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학원 논술'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학생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칸트와 데카르트를 물고 들어가는 식의 논술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철학적 용어들을 주워 삼키면서 그럴듯하게 주제 강의를 펼쳐 보이는 학원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사실은 유감입니다.

정확한 논술은 사고하는 과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고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그런 과정을 거쳐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학교건 학원이건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사상이 과도하게 주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사나 강사들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것보다는 특정한 사상을 주입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번에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는 다소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역시 논술공부는 즐거운 일이고 5지선다형의 외우는 공부에서 벗어나 생각의 날개를 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논술이 없다면 공부란 단지 시험 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생글 논술경시대회에 응시한 모든 학생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학생들을 지도해주신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생글생글은 다음 제4회 경시대회에서는 더욱 좋은 문제로 여러분을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생글생글 편집인 겸 경제교육연구소장 정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