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어퍼머티브 액션은 역차별인가…
"개천에서 용도 나고 잉어도 나오고 하는 코스를 만들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152개 대학 총장들과의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한 후 가난한 학생들이 대학에 손쉽게 입학할 수 있는 '기회균등할당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대학 입학 정원의 11%가량을 정원 외로 할당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대학들은 법적으로 9%까지 해외교포,전문계고생(실업고생) 등을 정원 외로 뽑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 실제 선발한 인원은 3.9%에 불과했다.하지만 기회균등할당제를 도입함으로써 저소득층을 포함한 소외계층으로만 11%까지의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게 됐다.소외계층 자녀들은 같은 처지에 속한 수험생들과의 낮은 경쟁률만 뚫으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등록금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기회균등 할당제로 입학한 학생 중 기초생활수급자 자녀(2만6500명·최빈계층)에게는 입학 후 2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3·4학년 학생들도 평균 B학점 이상을 획득한 경우에는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기초수급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 저소득층도 정부의 무이자 학자금 대출,대학의 저소득층 장학금(전체 정원의 3% 의무 지급) 등의 혜택을 받는다.정부는 이들에 대한 지원 예산으로 4308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까지 마련한 상태다.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그러나 입학 자체를 능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결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회균등할당제는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여러 차례 "가난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저소득층 대상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달동네와 농어촌 낙후 지역을 교육복지 투자우선 지역으로 선정해 매년 5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것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목적이었다.

기회균등할당제는 미국에서 시작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과 같은 맥락이다.어퍼머티브 액션은 여성,흑인,히스패닉과 같은 미국 내 사회적 소수자에게 대학 입학,취업,진급 등에 일정한 쿼터를 인정해 주는 정책으로.인권운동이 활발하던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때 도입됐다.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이 제도의 대표적 수혜자다.자메이카 이민자 가정 출신의 흑인이지만 이 제도 덕분에 뉴욕시립대에 들어갔고 국무장관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어퍼머티브 액션은 늘 '역차별' 이라는 논란이 따라다닌다.미국의 경우 어퍼머티브 액션이 추진된 후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고 입사 시험을 치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지자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백인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벌어졌다.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제기된 위헌소송만도 두 차례다.실력으로 입학한 흑인 학생들이 어퍼머티브로 우회입학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도 큰 문제다.흑인이면 으례 특례입학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력 있는 흑인들도 이 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의 기회균등할당제 또한 역차별 논란의 도마위에 올라 있다.실제로 정부가 방침을 표명한 직후 한 대학 관계자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농어촌지역 특별전형(정원외 4% 이내)도 도시에서 인문계고를 졸업하고 정원내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 입장에서는 심한 '차별'"이라며 "저소득층 등이 11%까지 추가로 특혜를 받을 경우 역차별 논란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지적했다."학력을 통한 신분상승을 도우려면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게 더 중요한데 일시적인 혜택만 주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역차별을 우려하는 측의 주장이다.가난하고 우수한 학생에게는 과외를 무한정 조장하는 평준화가 독이라는 원론적인 비판도 있다.

실력이 아닌 가난의 정도에 따라 학생을 뽑을 경우 대학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박유성 고려대 입학처장은 "저소득층 자녀 등 사회적 배려에 의해 선발한 학생들은 학력이 일반 학생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교육부의 정책 방향대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을 11%까지 뽑으면 그들을 따로 모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계고 졸업생들의 몫을 뺏어 저소득층에게 주는 셈'이라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정원외 모집 인원의 한도가 11%로 정해져 있는 만큼 저소득층이나 다문화가정 출신 학생을 정원외로 많이 뽑을 경우 전문계고 졸업생의 몫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미국에서는 히스패닉이나 흑인 학생을 위해 대학 입학생 정원을 할당하는 정책 때문에 또다른 사회 내의 소수자이지만 성적이 높은 한국 등 아시아권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데 이 같은 부작용이 기회균등할당제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기회균등할당제 이외에도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어퍼머티브 액션 성격을 띤 정책들이 많다.서울시교육청이 심각한 교사 '여초(女超) 현상'을 이유로 추진했던 양성균형 임용제(일명 '남교사 할당제')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교육부에 의해 거부당했다.똑같은 소수자 우대 정책이라고 해도 명분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시교육청의 주장에 대해 교육부는 "교육대가 신입생 선발정원의 25~40%를 한쪽 성(性)에 할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임용시험마저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이중 특혜"라며 "여교사가 많다고 해서 학생들이 올바른 성역할을 배우지 못하거나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