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1]
제시문 (가)와 (나)는 역사를 정의하는 데 있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의 관련성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가)에 의하면 역사적 사실은 단지 그 자체로서만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의 주관적 의미를 통해서만 비로소 '역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을 용인하며 이러한 해석까지도 역사로 정의한다. 반면 (나)는 객관적 사실과 창조적 허구,즉 역사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투영된 해석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역사학을 허구나 해석이 아닌 사실을 밝히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두 입장은 모두 역사인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사실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지만,(가)는 과거와 현재의 해석 모두를,(나)는 과거 사실만을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논제2]
제시문 (다)의 네 도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경제적 실상과 변화 추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으로 농민생활의 빈곤이 극심해졌다는 제시문 (라)와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먼저 표A는 (라)에서 중점적으로 서술한 미곡 수탈의 실상을 수치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1920년대부터 일본으로 수출되는 미곡량은 1928년 약 740만섬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증가했으며,이에 따라 한국인의 연간 쌀 소비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쌀 소비 측면에서만 보면 조선인의 생활 수준이 악화되었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표B를 보면 1912~39년 당시 조선인의 소비액은 명목적으로,실질적으로도 주변국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조선인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C와 D에 나타난 식생활의 변화에 기인한다. 당시 어패류 채소 과일의 1인당 소비량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증가했으며,육류나 장류 등의 소비량 또한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연간 곡물 소비는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해마다 변동이 커서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를 통해 볼 때 제시문 (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 바탕하여 산미증식계획을 통한 일제의 농민 수탈이라는 측면으로만 전체 농민의 경제 생활 수준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 오류가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의 수탈에도 불구하고 농민경제는 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으며,농민의 생활 수준 또한 향상되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즉,미곡 수탈이라는 어느 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전체적인 맥락까지도 무시하게 되면 그 당시의 시대적 현실까지도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논제3]
한국은 예부터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의 잦은 침략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역사 서술에 있어 민족주의적 태도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으며 일본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는 반드시 후대 사람들의 해석이 따르기 마련이며,각각의 관점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과 시대적 요구가 투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역사나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관한 민족주의적 관점 또한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의 입장에서만 바라본 편파적이거나 단정적인 해석을 역사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시문(다)와 (라)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의 사실과 해석에 근거한 확대 해석은 과거사 자체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우리나라'라는 점만을 내세운 해석과 반박은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오해를 불러와 세계 각국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인정하고,이러한 여러 관점을 수용한 균형 잡힌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의 농민 경제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면 일본의 미곡 수탈만이 아닌,실질소비액과 식생활 변화 등의 여러 측면에서의 해석을 통해 경제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중립성과 객관성은 단지 사실만을 기술하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해석과 관점의 공존을 통해서도 역사는 균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타당하고 균형 잡힌 입장을 견지한다면 한국은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역사 왜곡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가)와 (나)는 역사를 정의하는 데 있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의 관련성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가)에 의하면 역사적 사실은 단지 그 자체로서만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의 주관적 의미를 통해서만 비로소 '역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을 용인하며 이러한 해석까지도 역사로 정의한다. 반면 (나)는 객관적 사실과 창조적 허구,즉 역사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투영된 해석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역사학을 허구나 해석이 아닌 사실을 밝히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두 입장은 모두 역사인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사실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지만,(가)는 과거와 현재의 해석 모두를,(나)는 과거 사실만을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논제2]
제시문 (다)의 네 도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경제적 실상과 변화 추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으로 농민생활의 빈곤이 극심해졌다는 제시문 (라)와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먼저 표A는 (라)에서 중점적으로 서술한 미곡 수탈의 실상을 수치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1920년대부터 일본으로 수출되는 미곡량은 1928년 약 740만섬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증가했으며,이에 따라 한국인의 연간 쌀 소비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쌀 소비 측면에서만 보면 조선인의 생활 수준이 악화되었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표B를 보면 1912~39년 당시 조선인의 소비액은 명목적으로,실질적으로도 주변국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조선인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C와 D에 나타난 식생활의 변화에 기인한다. 당시 어패류 채소 과일의 1인당 소비량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증가했으며,육류나 장류 등의 소비량 또한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연간 곡물 소비는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해마다 변동이 커서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를 통해 볼 때 제시문 (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 바탕하여 산미증식계획을 통한 일제의 농민 수탈이라는 측면으로만 전체 농민의 경제 생활 수준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 오류가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의 수탈에도 불구하고 농민경제는 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으며,농민의 생활 수준 또한 향상되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즉,미곡 수탈이라는 어느 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전체적인 맥락까지도 무시하게 되면 그 당시의 시대적 현실까지도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논제3]
한국은 예부터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의 잦은 침략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역사 서술에 있어 민족주의적 태도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으며 일본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는 반드시 후대 사람들의 해석이 따르기 마련이며,각각의 관점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과 시대적 요구가 투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역사나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관한 민족주의적 관점 또한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의 입장에서만 바라본 편파적이거나 단정적인 해석을 역사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시문(다)와 (라)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의 사실과 해석에 근거한 확대 해석은 과거사 자체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우리나라'라는 점만을 내세운 해석과 반박은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오해를 불러와 세계 각국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인정하고,이러한 여러 관점을 수용한 균형 잡힌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의 농민 경제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면 일본의 미곡 수탈만이 아닌,실질소비액과 식생활 변화 등의 여러 측면에서의 해석을 통해 경제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중립성과 객관성은 단지 사실만을 기술하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해석과 관점의 공존을 통해서도 역사는 균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타당하고 균형 잡힌 입장을 견지한다면 한국은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역사 왜곡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