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취지는 좋지만 노동자에 도움될지 의문

시장서 통하지 않는 포퓰리즘 정책 그만둬야

☞한국경제신문 6월16일자

[뉴스로 읽는 경제학] 특수고용직보호법 실효성 있을까요?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은 앞으로 노동조합이 아닌 단체를 결성해 사업주와 계약 조건 등을 협의할 수 있게 된다. 또 사업주의 지휘, 감독을 받는 등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일부 골프장의 캐디들은 근로자로 간주돼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보장받게 된다. 그러나 캐디 등에 비해 개인사업자 성격이 강한 화물차 기사,덤프트럭 기사 등은 특수고용직으로 인정받지 못해 단체 결성 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노동부는 이런 내용의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제출, 의원 입법 형식으로 입법화를 추진하겠다고 15일 밝혔다. 그러나 노사 양측이 모두 반발하고 있어 입법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근로자와 개인사업자의 중간 영역에 있는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에게 노동법에 의한 노동조합이 아닌 단체결성권과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는 노동조합법상의 단결권, 단체교섭권과는 다르지만 단체결성권을 보유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 가운데 사업주로부터 직·간접적인 지휘 감독을 받고 노무 제공 시간과 장소 및 업무 내용이 사업주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 노동조합법상 '간주근로자'로 인정돼 노동 3권을 모두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골프장 캐디가 간주근로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가 특정 사업장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의 과반수 이상으로 단체를 결성할 경우 해당 사업주는 그 단체의 협상 요청에 의무적으로 응해야 한다.정부는 또 특수 근로 형태 종사자의 범위를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며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 보수를 받으며 △노무를 제공할 때 다른 사람을 사용하지 않는 자로 규정했다. 특수 근로 형태 종사자는 보험설계사(19만5000명)와 학습지 교사(10만명), 골프장 경기보조원(1만4000명), 레미콘 기사(2만3000명), 화물차 기사(35만명) 등 총 91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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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캐디,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직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특수고용직 보호법' 제정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민주노총이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쟁취 결의대회'를 열고 이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투쟁에 나섰는가 하면,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노동부가 의원 입법 형식으로 제출한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상임위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6년간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 보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절충에 나서 어렵사리 법제화의 물꼬를 터놓고도 정작 법안 처리는 오는 9월 정기국회로 넘겨버린 것이다.

특수고용직 보호법은 근로자이면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영업자로서의 지위도 인정받을 수 없었던 골프장 캐디 등 수많은 상시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에게 특수고용직 종사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부여해 단체결성권을 주고,사업주에게는 단체 대표자와 근로계약 조건을 협의할 의무를 부과한 것이 그 핵심이다. 말하자면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에 '준근로자'라는 새로운 영역을 설정해 노무 제공 형태 등을 감안해 노동 3권 또는 단결권과 협의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법안이 과연 특수 형태 근로자의 일자리 안정과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노총, "단체행동권 보장 없는 노동권은 기만행위"

민주노총은 특수 형태 근로자 법안 마련은 비정규직법과 마찬가지로 '보호'를 내세운 또 하나의 기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법안은 특수 고용 노동자를 노동자와 자영인의 중간 영역으로 설정하여 단체결성권과 교섭권은 허용하되,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집단행동(파업 등 쟁의행위)은 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으로,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단체결성권과 교섭권은 현실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단체행동권을 배제한 상태에서 문제 해결을 직권중재에만 의존할 경우 사용자 입장만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인건비를 절감하고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특수 고용 형태를 선호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이미 정식 설립 절차를 거쳐 단체협약까지 체결해 활동 중인 특수고용직 노조마저 불법단체로 몰릴 게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의 핵심은 노동자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적 보호대책 외에는 어떤 방식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경제계, "캐디 등 대량 해직 사태 불러올 것"

경제계는 이번 법안이 시행에 들어가면 기업 부담이 늘어나 고용을 감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며 입법 추진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로 보험업계는 이번 법안으로 떠안아야 할 추가비용이 연간 3조2000여억원에 달해 설계사 대량 해직사태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대부분 골프장들도 캐디가 월급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선택 캐디제'나 '노(no) 캐디제'를 도입하겠다는 움직임이다. 한마디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실질적 복지 향상을 위해선 특수고용자 보호법의 장단점과 장·단기 효과를 분명히 알려주고 당사자 의견을 경청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러한 법이 도입됐을 때 기업 생존 능력과 경쟁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노동자의 심각한 인권 피해를 막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방안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효성 없는 특수고용직 보호법안 재검토 서둘러야

언뜻 보면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이 바람직한 정책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비록 법안의 취지는 좋더라도 시장에서 통하지 않거나,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면 이는 탁상행정의 전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캐디들이 법을 앞세워 집단파업을 하면 골프장 경영이 엉망이 되고 내장객도 덩달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경영자가 이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이처럼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 보호법안은 정작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등 실효성이나 추진 방식 등에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정치권과 정부 당국은 재계,노동계와 함께 하루빨리 이번 법안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나서야 한다. 특히 정부 당국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놓고도 실제로는 노동자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포퓰리즘 정책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