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명품시장 140조원 규모…럭셔리 펀드ㆍ럭셔리 지수 주목

[Global Issue] 명품, 이젠 소비가 아니라 투자대상이다
'명품은 이제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투자하는 대상이다.'

명품 브랜드가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 떠오르는 투자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모펀드와 투자은행 관계자들이 유명 브랜드의 투자 전망을 살피러 패션쇼와 의상 전시회를 방문하는 일이 많아지는가 하면,명품 브랜드로 이뤄진 '럭셔리 펀드'와 '럭셔리 지수' 등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경제국에서 명품 소비가 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 컨설팅 회사인 텔시그룹은 명품 판매량이 연간 8% 늘고 있으며,명품 시장은 현재 1500억달러(약 140조원) 수준까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명품 소비 붐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은 중국과 같은 신흥경제국이다.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세계 3위의 명품시장으로 부상했다. 메릴린치는 중국의 백만장자가 총 32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들은 사치품 소비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연간 8%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인도에서도 고급차 벤틀리가 두자릿수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호화 요트 비즈니스도 호황이다.

물론 선진국의 명품 구매력도 여전히 강하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전년보다 18.5% 늘어난 9억5600만달러(약 8900억원)어치를 팔았다. 보스턴컨설팅은 과거 명품은 소득 상위 2%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중상류층이 명품 소비량의 70%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현상으로 '럭셔리 펀드'와 '럭셔리 지수'도 주목받고 있다. 소시에떼제네럴 등 발빠른 곳은 유망 사치품 기업에 투자하는 6500만달러(약 600억원)짜리 럭셔리 펀드를 선보였다. 지난 4월 메릴린치는 명품 브랜드 50개로 구성된 'ML 라이프스타일 지수'를 선보였다. 프랑스의 BNP파리바 등도 이 같은 '럭셔리 지수'를 구성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펀드나 지수는 지역별,업종별로 투자를 분산시켜 위험을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예컨대 스위스회사 도미니언이 내놓은 럭셔리 펀드 '시크'는 유럽 명품 주식에 50.68%,미국 주식에 37.47%,아시아 주식에 11.67%를 투자한다.

사모펀드도 럭셔리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 한 유럽의 사모펀드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의 지분 30%를 10억달러에 사들였고,지난 2월에는 타워브룩캐피털이 고급 신발 제조회사인 지미추를 3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어팩스는 토미힐피거 인수에 16억달러를 쏟아붓기도 했다.

그동안 명품 산업은 유행에 따른 높은 위험 때문에 투자자로부터 외면을 받아왔지만 사모펀드들이 과감한 전략 변경으로 명품 기업 투자에서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 지미추를 인수한 타워브룩캐피털은 유능한 경영자인 벤소산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 뒤 지미추의 디자인을 유행에 타지 않도록 다양화했다. 글로벌리치캐피털의 윌리엄 스미스는 "사모펀드는 5000만달러를 버는 기업이 2억5000만달러를 벌게 해준다"며 "자본과 경영 전략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명품 투자 위험도 무시할 순 없다. 미국 사모펀드 TPG는 스위스 신발 제조회사인 발리를 1999년 인수했다가 5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씨티그룹에서 재정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카말 타베트는 "사치품 분야에서는 손익이 분명하다"며 "투자 시점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명품 투자에선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지켜가느냐도 중요하다. 단기 투자에 치중하는 사모펀드들이 이를 등한시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 고급 의류 회사 세인트존을 인수한 베스탈캐피털은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를 모델로 기용해 젊은 여성 공략에 적극 나섰지만 기존 소비자인 중년층이 이탈하면서 브랜드 가치가 크게 망가졌다. 베어스턴스의 하워드 분석가는 "모두 구찌처럼 되길 바라지만 성공은 쉽지 않다"며 럭셔리 투자 붐을 경계했다.

안정락 한국경제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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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ㆍ베르사체ㆍ페라가모 증권시장에 눈독

명품 투자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명품 기업 스스로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특히 사치품 시장의 36%를 차지하는 프랑스 기업들이 선진 경영 체제를 도입,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루이비통,지방시 등을 보유한 LVMH나 구찌,발렌시아가 등을 소유한 PPR 등은 유명 브랜드들을 잇따라 흡수함으로서 세계적인 소매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명품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인도,말레이시아,태국 등 아시아 시장을 선점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명품업체들은 증권시장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로베르토 베도보토 명품 담당자는 "명품 업체 대부분 실적이 좋고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 상장을 추진하는 명품 회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패션그룹 에페도 다음 달 상장할 예정이다. 에페의 마시모 페레티 회장은 "최근 늘어나는 수요는 우리에게 더 없는 기회"라며 "이를 놓치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새로운 매장을 열고 공급망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고급 가죽 브랜드인 페라가모도 1~2년 안에 상장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얼마 전 처음으로 가족 출신이 아닌 전문 경영인을 CEO로 영입했다. 프라다와 베르사체도 기업 공개를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베르사체는 최근 1800여명에 이르는 감원,기업주와 경영자 분리를 통해 폐쇄적인 가족 경영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명품 기업들은 정보기술(IT) 기법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구찌는 인터넷 판매를 통해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 판매량은 전년보다 65% 늘었다. 가상 현실 사이트인 세컨드라이프에 3차원 전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기업도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같은 회사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사업 규모를 늘릴 수 있는 방법으로 호텔체인 사업을 선택,두바이 부동산 개발업체인 에마르와 손을 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