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 1999년 9월. 미국 우주항공국(NASA)이 1200억원을 들여 쏘아올린 무인 화성기후탐사선이 화성궤도에 이르러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어이없게도 '단위법 혼동'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탐사선 제작을 맡은 회사가 킬로그램(㎏) 단위로 계산한 로켓 추진력 수치를 NASA 측이 항법프로그램에 파운드(lb) 단위로 잘못 입력,탐사선이 화성에 너무 가까이 접근했던 것. 킬로그램,미터(m) 등 국제 표준단위와 파운드,야드(yd) 등 영국식 단위를 혼용해 온 NASA 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NASA는 이 사고 이후 단위법 통일 작업에 착수,앞으로 실시할 달 탐사 작업에서 미터법만을 사용키로 지난 1월 결정했다.
한국에서도 NASA와 같은 단위법 통일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오는 7월부터 제곱미터(㎡),킬로그램 등 법정 계량단위가 아닌 평(坪),근(斤),척(尺) 등 비(非)법정 계량단위를 쓰는 기업들을 단속해 처벌키로 한 것이다. 위반하는 기업에는 5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는 단위 혼용에 따른 혼동을 막고 계량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이 산자부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용돼 국민들에게 익숙한 단위들을 사용 금지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단위 통일을 통한 사회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과 오랜 관행을 바꾸는 데 따른 비용과 불편이란 현실 사이에서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이다.
◆척관법 원조인 중국도 평 사용 안해
단위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나라나 문명권별로 각기 다르게 사용돼 왔다. 대표적인 단위로는 영국과 미국의 야드-파운드법과 프랑스 중심의 미터법,중국 중심의 척관법 등 세 가지가 꼽힌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국가 간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단위 통일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1875년 17개국이 모여 국제적으로 미터협약을 체결하고 가장 과학적으로 정의되고 체계가 잡힌 미터법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을 따라 척관법을 사용해 오다 1905년 대한제국 당시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을 척관법과 혼용하도록 했다. 이어 1959년에 미터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계량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미터법을 법정 계량단위로 확정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그 이후에도 비법정 계량단위들이 일생 생활에 널리 사용돼 왔다. 지난해 6월 산자부가 7개 대도시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동산중개업체의 88%가 평을,귀금속판매업체의 71%가 돈을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비법정 계량단위를 사용하거나 표기를 잘못한 사례가 2478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반해 척관법의 원조인 중국이나 일본은 실생활에서도 미터법만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중국은 1985년 국제단위계를 도입해 2000년부터 면적을 표시할 때 평 대신 제곱미터만을 쓰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평이나 척,근 등 척관법 단위를 쓰다 적발되면 50만엔(약 4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비(非)법정 계량단위는 기준도 제각각
산자부는 법정 계량단위 사용이 필요한 이유로 무엇보다 다수의 단위 사용에 따른 혼돈 방지를 꼽는다. NASA 화성기후탐사선 폭발 사고와 비슷한 사례가 한국인들에게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1999년 중국 상하이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화물기 추락사고는 조종사가 고도 1500m를 1500피트(ft,약 490m)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또 하나의 이유는 비법정 계량단위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비법정 계량단위는 지역이나 품목에 따라 기준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논밭의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인 마지기는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일부 경기도 주민은 150평(495㎡)을 1마지기로 정의하고 있지만 충청도에서는 200평(660㎡)이,강원도에서는 300평(990㎡)이 1마지기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평도 마찬가지다. 토지는 한 평이 3.3㎡이지만 유리의 면적을 계산할 때는 0.09㎡다. 근은 품목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쇠고기는 600g,과일은 400g,야채는 375g,과자는 150g이다. 인삼은 300~600g을 1근이라고 한다.
법정 계량단위는 이해하기도 쉽다는 게 산자부의 설명이다. 예컨대 아파트 면적을 30평이라고 하면 쉽게 면적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100㎡라고 하면 가로 10m에 세로 10m 정도의 넓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 국유지 면적을 69억평 대신 2만3000㎢라고 표현하면 서울에서 전주 정도까지 거리(230km)에 100km를 곱한 넓이라고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일정 기간 병행 표기도 검토해 볼만"
법정 계량단위 사용을 강제하는 데 따른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불만의 요지는 "척관법은 우리 전통 단위인데 왜 서구식 기준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산자부는 이에 대해 현재 국내에서 쓰이고 있는 척이나 돈은 엄밀하게 말하면 전통 단위가 아니라 1900년대 초에 도입된 일본식 단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한제국이 1905년 도량형법을 공포할 때 1척을 30.303cm라고 정했는데,이는 일본 곡척(曲尺)의 기준이었다. 금의 무게를 나타내는 돈 역시 일제 때 진주 양식업자들이 사용하던 단위로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금은방을 운영하면서 사용된 단어라고 산자부는 설명했다.
법정 계량단위 사용이 효율적이라고 해도 이를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산자부는 법정 계량단위 정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2001년 법정 계량단위 사용이 뿌리내리도록 대대적인 계도활동을 벌였으나 실패했다"며 "홍보 위주의 소극적인 대책에서 단속 위주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건설업체들은 산자부의 단속 방침에 대해 아파트 광고에 '00평형'이라고 쓰는 대신 평이라는 말을 빼고 '00형'으로 표기하는 등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마련 중이다. 이와 관련,건설업계 관계자는 "국민들이 바뀌는 사용단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일정 기간 병행 표기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임도원 한국경제 기자 van7691@hankyung.com
한국에서도 NASA와 같은 단위법 통일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오는 7월부터 제곱미터(㎡),킬로그램 등 법정 계량단위가 아닌 평(坪),근(斤),척(尺) 등 비(非)법정 계량단위를 쓰는 기업들을 단속해 처벌키로 한 것이다. 위반하는 기업에는 5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는 단위 혼용에 따른 혼동을 막고 계량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이 산자부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용돼 국민들에게 익숙한 단위들을 사용 금지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단위 통일을 통한 사회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과 오랜 관행을 바꾸는 데 따른 비용과 불편이란 현실 사이에서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이다.
◆척관법 원조인 중국도 평 사용 안해
단위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나라나 문명권별로 각기 다르게 사용돼 왔다. 대표적인 단위로는 영국과 미국의 야드-파운드법과 프랑스 중심의 미터법,중국 중심의 척관법 등 세 가지가 꼽힌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국가 간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단위 통일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1875년 17개국이 모여 국제적으로 미터협약을 체결하고 가장 과학적으로 정의되고 체계가 잡힌 미터법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을 따라 척관법을 사용해 오다 1905년 대한제국 당시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을 척관법과 혼용하도록 했다. 이어 1959년에 미터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계량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미터법을 법정 계량단위로 확정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그 이후에도 비법정 계량단위들이 일생 생활에 널리 사용돼 왔다. 지난해 6월 산자부가 7개 대도시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동산중개업체의 88%가 평을,귀금속판매업체의 71%가 돈을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비법정 계량단위를 사용하거나 표기를 잘못한 사례가 2478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반해 척관법의 원조인 중국이나 일본은 실생활에서도 미터법만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중국은 1985년 국제단위계를 도입해 2000년부터 면적을 표시할 때 평 대신 제곱미터만을 쓰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평이나 척,근 등 척관법 단위를 쓰다 적발되면 50만엔(약 4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비(非)법정 계량단위는 기준도 제각각
산자부는 법정 계량단위 사용이 필요한 이유로 무엇보다 다수의 단위 사용에 따른 혼돈 방지를 꼽는다. NASA 화성기후탐사선 폭발 사고와 비슷한 사례가 한국인들에게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1999년 중국 상하이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화물기 추락사고는 조종사가 고도 1500m를 1500피트(ft,약 490m)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또 하나의 이유는 비법정 계량단위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비법정 계량단위는 지역이나 품목에 따라 기준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논밭의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인 마지기는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일부 경기도 주민은 150평(495㎡)을 1마지기로 정의하고 있지만 충청도에서는 200평(660㎡)이,강원도에서는 300평(990㎡)이 1마지기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평도 마찬가지다. 토지는 한 평이 3.3㎡이지만 유리의 면적을 계산할 때는 0.09㎡다. 근은 품목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쇠고기는 600g,과일은 400g,야채는 375g,과자는 150g이다. 인삼은 300~600g을 1근이라고 한다.
법정 계량단위는 이해하기도 쉽다는 게 산자부의 설명이다. 예컨대 아파트 면적을 30평이라고 하면 쉽게 면적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100㎡라고 하면 가로 10m에 세로 10m 정도의 넓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 국유지 면적을 69억평 대신 2만3000㎢라고 표현하면 서울에서 전주 정도까지 거리(230km)에 100km를 곱한 넓이라고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일정 기간 병행 표기도 검토해 볼만"
법정 계량단위 사용을 강제하는 데 따른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불만의 요지는 "척관법은 우리 전통 단위인데 왜 서구식 기준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산자부는 이에 대해 현재 국내에서 쓰이고 있는 척이나 돈은 엄밀하게 말하면 전통 단위가 아니라 1900년대 초에 도입된 일본식 단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한제국이 1905년 도량형법을 공포할 때 1척을 30.303cm라고 정했는데,이는 일본 곡척(曲尺)의 기준이었다. 금의 무게를 나타내는 돈 역시 일제 때 진주 양식업자들이 사용하던 단위로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금은방을 운영하면서 사용된 단어라고 산자부는 설명했다.
법정 계량단위 사용이 효율적이라고 해도 이를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산자부는 법정 계량단위 정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2001년 법정 계량단위 사용이 뿌리내리도록 대대적인 계도활동을 벌였으나 실패했다"며 "홍보 위주의 소극적인 대책에서 단속 위주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건설업체들은 산자부의 단속 방침에 대해 아파트 광고에 '00평형'이라고 쓰는 대신 평이라는 말을 빼고 '00형'으로 표기하는 등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마련 중이다. 이와 관련,건설업계 관계자는 "국민들이 바뀌는 사용단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일정 기간 병행 표기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임도원 한국경제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