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보다 빠른 미국 야구

올해 미국 야구계는 재키 로빈슨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했다. 로빈슨은 20세기 최초의 메이저리그 흑인 선수다. 그는 데뷔 첫 해에 신인왕에 선출되었고 1949년 MVP,1962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의 등번호 42번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영구 결번이다.

처음에 동료들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상대팀은 경기를 거부하기도 했으며,심판은 편파적이었고,관중은 야유를 퍼부었다. 로빈슨의 무기는 오직 침묵과 실력뿐이었다. 또 하나 있다. 그를 영입한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의 단장 브랜치 리키가 바로 그의 강력한 후견인이었다. 리키는 치밀한 계획을 갖고 로빈슨을 영입했다.

마틴 루터 킹이 활약하던 민권운동은 로빈슨보다 20년이나 뒤늦다. 로빈슨은 한 명의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 그 의미를 로빈슨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모든 흑인의 명예를 걸고 뛰었다. 그러나 리키 구단주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킹의 캠페인보다 20년이나 앞선 시점에 흑인 선수를 영입하도록 했던 것일까?

◆시장에서의 구입은 일종의 투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4~5년마다 투표를 하지만 시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의사표현을 한다. 식당을 고르는 것,문구를 사는 것,영화를 선택하는 행위는 일종의 의사표현이다.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상품이나 회사는 번영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로빈슨을 발탁한 리키 단장은 현대 야구의 새 시대를 연 위대한 야구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를 위대하게 한 것은 숭고한 사명감보다는 통찰력이었다. 그는 야구시장의 변화를 정확하게 내다봤다. 당시 유례없는 경제성장으로 흑인들도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등을 돌릴 백인 팬보다 훨씬 더 많은 흑인 팬을 갖게 될 것이라고 계산했고 이 계산은 적중했다. 다저스는 흑인이 모인 곳에서는 홈팀이 되었다. 우리에게 LA 다저스로 알려진 이 팀은 1990년대 일본인 투수 노모와 한국인 박찬호를 영입한다. 일본과 한국의 국민들이 한동안 다저스의 홈팬이 되어주었다.

◆차별을 싫어하는 기업가들

흑백 차별이 기승을 부리던 20세 초 미국 남부에서 전차는 아예 유색인종과 백인 칸을 분리했다. 그러나 이 차별은 법 때문이었다. 전차회사 사장들은 이 차별을 싫어했다. 콩과 좁쌀을 섞어야 더 많이 담을 수 있듯이 칸을 분리하면 공간의 낭비가 많았다. (그레고리 맨큐,'맨큐의 경제학' 참조)

사장이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회사는 그 편견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능한 여사원을 차별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훨씬 무능한 남자사원에게 권한과 월급을 더 주게 된다. 이는 회사가 잃어버린 비용이다. 그렇다고 기업가들이 편견이 없거나 차별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의 편견에는 비용이 따르고 누구보다도 기업가 자신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경쟁은 자기부정의 자유도 허용한다

할리우드는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피난처였다. 반공(反共)이 맹위를 떨칠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공직이나 대학으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이들을 받아들였다. 유명한 공산주의자들이 필명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것은 당시 비밀 축에도 끼지 못했다. 한 영화제작자는 "우리는 회사의 주주들에게 가능한 한 제일 좋은 각본을 사들여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해명했다. (밀튼 프리드만,'자본주의와 자유')

공직이나 대학 혹은 방송과 달리 영화는 관객들의 투표에 훨씬 민감하다. 완전경쟁에 가깝기 때문이다. 관객의 호응만 받을 수 있다면 작가가 흑인이건 공산주의자건 혹은 범죄자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가치에 집착하면 개방적인 경쟁자에게 밀리게 된다.

한국의 사교육시장은 이상적인 완전경쟁에 가깝다. 학생의 성적만 오른다면 학부모들은 강사의 전력을 문제 삼지 않는다. 어떤 사상을 갖고 있건,대학 때의 성적이 얼마건,심지어는 대학교를 나왔는지 조차도 중요한 선택기준이 아니다. 성과 중심의 평가는 낮은 진입장벽과 실력(?)에 기초한 보상이라는 사교육 시장의 특성을 만들었다.

경제적 투표행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택에 따르는 비용과 이익이 비교적 뚜렷하다는 것이다. 강사의 세계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교체하게 되면 자녀의 성적을 희생해야 한다. 선택이 미치는 영향을 측량하기 어려운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때보다 사람들은 훨씬 개방적이고 진지하며 심지어는 겸허하다.

◆윔블던의 남녀평등

영국의 윔블던 테니스대회가 130년 만에 남녀평등을 선언했다고 언론들은 전한다.

올해부터 남녀 단식 우승자에게 똑같은 액수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자 선수들은 드디어 성차별이 사라졌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어떤 남자 선수들은 이게 과연 평등이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남자는 5세트를 뛰어야 하지만 여자는 3세트만으로 승부를 가르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무엇을 공평하다고 해야 할까? 정답 없는 질문이지만 남녀공학이라면 이 주제를 놓고 토론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김명훈 학생은 평등이라는 의미를 따져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공평함이라는 관점에서 이 학생의 대안을 평가해 보자.

slowforest@eduhankyung.com


▶학생 글

김명훈 명지외고 2학년


평등에는 합리적인 차별이 존재하는데 남녀의 경우에는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여자가 남자보다 체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많은 논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남자 선수들이 자신들이 5세트를 뛰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많은 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편,여자 선수들이 '결과적으로 상금만 같으면 평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상금도 남자 정도여야 함'이라는 말이다.

상금의 평등을 주장하는 여자 선수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입지를 낮추는 것이다. 윔블던이 상금액을 같게 한 것은 평등한 것이 아니다. 관중이 늘어나면 대회 수입이 늘어나고 이는 상금에 반영된다.

샤라포바와 같은 선수들이 엄청난 인기를 불러일으켜 관중몰이를 하고 있는 지금,여자 선수들이 특정한 액수가 같다고 평등을 말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만약 대회 상금을 각 대회에서 벌어들인 관중 수입에 비례한 액수와 각 대회의 게임에서 활약으로 멋진 모습을 관중에 보여준 것을 수치화하여 액수로 매겨 더한 것으로 한다면 어떨까? 선수들은 자신이 보여주는 멋진 모습에 따라 상금 액수도 결정되기 때문에 더욱 경기에 열중할 것이고 남녀에 따른 차이가 없기 때문에 공정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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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대통령의 논술실력

"보수는 강자의 사상,기득권의 사상입니다. 진보란 무엇인가. 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권력을 약자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힘없는 사람의 연대와 참여를 중시하는 생각입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논술에서는 대통령식의 어법을 따라해서는 안 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도 식상하지만 '닫힌' 수식어의 빈번한 사용이 더 큰 문제다. 모든 언어는 어느 정도 생각을 속박할 수밖에 없지만 정치언어는 유난하다. 우리와 그들, 좋고 나쁨을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의 정반대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대 2008학년도 논술 예시문항 제시문 중)

논술에서는 단정적인 수식보다는 개방적인 술어를 애용해야 한다. '유승준은 약속을 어겼다'라는 술어적 표현이 '거짓말쟁이 유승준'이라는 단정적 수식보다 훨씬 깨끗하다. 닫힌 수식은 답답하고 지식이 피상적인 수준이라는 신호도 된다. '현대 사회는 효율 위주의 선택을 선호한다'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효율이 우선되고 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채점자는 학생이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정말 알고 있는지를 의심하기 마련이다. 단정적인 수식어는 사용자의 무지를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