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증시가 지수 1600을 넘나들면서 사상 최고의 활황 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증시 속성이 그렇듯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어 잠재적 불안 요인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우량주 중간 배당 '감질맛'…배당률 1% 미만" "'코스닥 시황' 감질맛 나는 반등". 투자 심리가 얼어 있을 때 증시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들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감질맛 난다'는 말을 무심코 많이 쓰지만 이는 들여다보면 해괴한 말이다.

본래는 '무언가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으로 '감질 나다'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의미를 좀 더 강하게 해 '한꺼번에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찔끔찔끔 맛만 보아 안달이 나는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감질맛'이란 말을 만들어 쓰는 것 같다.

그런데 '감질'이란 말의 뜻을 살펴보면 '감질맛'이란 게 도대체 얼마나 황당하고 얼토당토 않은 표현인지 알 수 있다.

'감질(疳疾)'은 사전적으로는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어서 몹시 애타는 마음'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본래는 한의학에서 '감병(疳病)'이라 일컫는 병으로, 어린 아이들이 젖이나 음식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을 뜻하는 말이다.

질(疾)이 바로 치질,간질,안질 등에 쓰인 것과 같은 '병(病) 질'이다.

그래서 감질이 나면 속이 헛헛해 무언가 먹고는 싶은데 몸에 탈이 나 마음껏 먹지도 못해 안달하게 된다.

여기서 유래한 '감질 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가 일반화해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그러니 병 이름인 '감질'과 '맛'이 어울려 하나의 단어를 이룰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감질 나다'를 자주 '감질맛 나다'로 오인하는 것은 형태가 비슷한 다른 말 '감칠맛'에 이끌려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을 나타내는 '감칠맛'은 '감치다'의 관형형에 '맛'이 결합된 합성어다.

'감치다'는 '음식의 맛이 맛깔스러워 입에 당기다'란 뜻의 순 우리말이다.

'혀를 감치고 드는 알싸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한승원, <해신의 늪>)처럼 쓰인다.

'감칠맛'은 의미가 좀 더 확장돼 맛뿐만 아니라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란 뜻도 갖고 있다.

'목소리가 감칠맛 있게 곱다' '그는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잘한다'처럼 쓰인다.

따라서 '감질 나다'와 '감칠맛 나다'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말이므로 구별해야 한다.

이처럼 비록 어원은 부정적인 의미였지만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면서 그 쓰임새가 변형된 말들 중엔 '염병할'도 있다.

'염병(染病)'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염병(染病), 즉 전염병이란 뜻이다.

다른 하나는 특이하게 '장티푸스'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장티푸스 정도는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지만 예전엔 장티푸스가 전염병 가운데서도 가장 무서운 병이었기 때문에 '염병'이 장티푸스를 가리키게 됐다고 한다.

(조항범,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여기서 파생된 '염병할'은 '염병할, 날씨도 지독히 덥네' '염병할 ××'처럼 단독으로 감탄사나 관형사로도 쓰이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장티푸스를 앓을'이란 뜻인 셈이다.

비록 욕으로 하는 거지만 우리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은 말이다.

'장티푸스'는 '장(腸)+티푸스'의 합성어로, 예전엔 장질부사(腸窒扶斯)라고도 했는데 이는 차음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