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지 저건지 불분명할 때 우리는 '헷갈린다'고 한다.

그럼 이 말을 일본어로 하면? '아리까리'. 프랑스어로는 '알숑달숑', 독일어로는 '애매모흐(애매모호)', 아프리카어로는 '깅가밍가(긴가민가)'다.

물론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이 가운데 '아리까리'는 실제로 일본에서 온 말인 줄 착각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모두 우리말이지만 그 의미 영역이 서로 미세하게 다를 뿐 쓰임새는 거의 비슷한 말들이다.

'긴가민가하다'는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기연가미연가하다'의 준말이다.

여기서 '기연가미연가'는 한자로 '其然가 未然가'이다.

직역하면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이다.

줄여서 '기연미연'이라고도 한다.

'-가'는 의문을 나타내는 어미 '-ㄴ가'에서 'ㄴ'이 탈락한 형태. 본래 말 '기연가미연가'는 '긴가민가'로도 줄어 널리 쓰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쓰임새의 빈도와 단어로서의 자격 부여에 차이가 있다.

'기연가미연가'나 그 준말 '기연미연'은 자체로 부사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가장 흔하게 쓰이는 '긴가민가'는 단어의 자격을 받지 못했다.

사전에서는 이 말을 '긴가민가하다의 어근'으로 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단독으로 부사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반드시 접미사 '-하다'와 결합해야 비로소 단어가 되는 셈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긴가민가'를 단독으로 쓰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그가 하는 말은 도대체 긴가민가 믿을 수가 없다"라고 하면 아쉽지만 온전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단어의 지위를 얻지 못했으므로 '긴가민가해서' 식으로 '-하다'를 붙여 써야 된다.

하지만 이 말은 현실 언어에선 '긴가민가 헷갈린다' '긴가민가 답을 모를 경우' '긴가민가 의심은 했지만' 식으로 흔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이미 단어로서의 구실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긴지 아닌지 분명히 대답해." "사람이 말이야 도대체 기다 아니다 무슨 말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때 쓰인 '기다' 역시 '아니다'와 대비적으로 쓰여 어떤 사실에 대한 긍정이나 수긍을 나타낼 때 많이 쓰는 말이지만 사전적으로는 전라·충청 방언으로 처리돼 있다.

'그(其)이다' 또는 '그렇다', '그것이다'가 줄어든 말이다.

'아리까리하다'도 매우 흔하게,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지만 유감스럽게 사전적으론 '알쏭달쏭하다의 잘못', '아리송하다의 잘못' 등으로 올라 있을 뿐이다.

'알쏭달쏭'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 얼른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태도가 알쏭달쏭하다." "그의 진의가 무엇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이 같은 표현에 '긴가민가하다'를 넣으면 무리 없이 뜻이 통한다는 데서도 '알쏭달쏭하다'와 '긴가민가하다'는 거의 같이 쓰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또 '알쏭달쏭 고운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빛깔로 된 점이나 줄이 고르지 않게 뒤섞여 무늬를 이룬 모양'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북한에선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몹시 희미하고 아리송하다'란 의미로 '아리까리하다'란 말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까리까리하다'도 같은 말로 함께 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