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 한국경제신문 4월30일자 A38면
3불(不)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의 이해당사자는 학생과 대학만이 아니다.
대졸자를 채용하는 기업도 주요 당사자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재를 제대로 발굴해서 잘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우리 기업이 언제부터인가 대졸자 신규 채용에 거는 기대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대졸자를 채용한 뒤 키우는 데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경력자 채용을 중시하기도 한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예전에는 대학과 전공 그리고 학점을 보고 채용하면 크게 실패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불만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동안 기업들은 출신 대학을 통해 두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하나는 고교 졸업 당시 해당 학생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대학이 갖고 있는 인재 양성 능력이다.
학생이 고교 졸업 당시 갖고 있는 지적(知的) 능력과 함께 이 능력이 대학 4년간 어느 정도 향상됐는가를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출신 대학이나 전공보다는 영어성적과 면접을 중시하고 있다.
외국대학 출신이나 자격증을 선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출신 대학을 보고 지적 능력 수준을 판단하기 힘들어졌고 또 대학교육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각 대학이 적성에 맞는 학생을 잘 선발해서 경쟁력 있고 특성화된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의 신뢰가 깨지게 된 데에는 3불정책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대학은 좋은 학생을 뽑아 잘 가르쳐 배출함으로써 기업과 국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자 한다.
그런데 수능(修能)과 내신(內申)으로만 획일적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고, 더구나 출신 고교에 대한 차별성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은 한마디로 대충 뽑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잘 뽑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잘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다.
전공에 대한 적성도 열정도 없는 학생들을 모아 전공교육을 잘해서 기업과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 역시 힘들어 한다.
수능에서 한두 문제 실수 여부가 대학을 결정짓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와서도 전공 공부보다는 영어공부에, 그리고 면접준비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정도로 취업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3불정책은 학생·대학·기업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폐지돼야 한다.
첫째 대학으로 하여금 학생을 뽑는 자유를 갖도록 하자. 대학이 선발에서 자유를 갖게 되면 굳이 본고사를 부활할 필요가 없어진다.
몇몇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본고사를 보기보다는 학과별로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해 학과에 최대한 적성이 맞는 학생을 선발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대졸자를 뽑는 기업과 국가도 적성에 맞는 학생을 잘 선발해 잘 가르치는 대학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대졸자를 대상으로 하는 표준화된 전공능력시험을 실시해 기업들이 이 시험성적을 전공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게 하자. 이 시험은 일류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도 그리고 지방대학 졸업자라도 원하는 기업에 채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대학으로 하여금 전공교육을 내실화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나아가 고교시절 학업에 소홀했던 학생들에게는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셋째 입학 전형을 전면 자유화하게 되면 고교등급제 금지는 의미가 없어진다.
대학 당국의 다양한 선발 기준 중에서 출신 고교도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교별 등급을 책정하지 않더라도 대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교별 차별화를 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축적된다.
다만 일률적으로 고교별 수능성적을 갖고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교정보와 그 고교 출신 학생실적 정보들을 갖고 차별화할 것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고교교육도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3불정책이 학생 간 그리고 대학 간 평등을 보장한다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학생 대학 그리고 기업을 3불정책의 덫에서 구해내자. 그래야 비로소 새로운 성장동력이 가동되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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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사교육비 매년 급증…3不정책 재고해볼 시점
3불(不)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동안 교육계 안팎에서 다양한 찬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 정책을 둘러싼 공방의 주역은 주로 대학과 교육 당국 그리고 정치권이었다.
정작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몸을 담는 기업쪽에서는 3불정책에 대한 견해를 직접 밝힌 적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대졸자라는 상품에 대한 최대 수요처인 기업들이 이 정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이 정책의 지속 여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최종 소비자(기업)들의 견해가 제품(대졸자)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자재(고졸학생)의 선택과 이의 가공 과정(대학교육)에 매우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이제는 출신 대학만을 보고는 채용 대상자의 지적 능력 수준을 판단하기 힘들어졌다"고 넋두리를 한다.
기업들은 이제 자격 미달의 신입사원들을 또 다시 교육시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이느니 차라리 능력이 입증된 경력사원 채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채용시에도 출신 학교보다는 영어성적과 면접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한마디로 기업들이 대학이라는 인재양성 공장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능력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은 학생들 대로 고생이다.
'내신-수능-논술'로 이어지는 소위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헤치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이번에는 취직을 위해 전공보다는 영어와 면접 준비에 더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공에 대한 실력은 형편 없어지고 기업들의 대학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결국 대학 입학자들과 이들에 대한 수요자인 기업들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3불정책은 그 취지가 무엇이었든 어떤 형태로든 손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3불정책에는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이끌어 냈던 이석연 변호사는 3불정책 가운데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부분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추진 중이다.
그는 3불정책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하고 있는 헌법 31조 제4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3불정책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폐지한다고 해서 대학 입시제도를 비롯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교육비 증가를 막자며 도입된 3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가 매년 급증하는 현실을 보면 더 이상 이 정책이 존재 가치를 잃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해마다 늘어나는 교육이민 역시 교육의 '수월성'을 무시한 평준화 정책이 낳은 또 다른 부작용이다.
3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명문대에는 가난한 집 출신의 수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집중적인 '찍기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만이 높은 수능점수를 통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의 높은 부동산가격의 이면에도 평준화교육이 가져온 사교육 열풍이 자리잡고 있다.
강남 집값 안정의 열쇠는 각종 부동산 대책이나 종부세보다는 어쩌면 3불정책의 폐지 내지 수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kst@hankyung.com
⇒ 한국경제신문 4월30일자 A38면
3불(不)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의 이해당사자는 학생과 대학만이 아니다.
대졸자를 채용하는 기업도 주요 당사자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재를 제대로 발굴해서 잘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우리 기업이 언제부터인가 대졸자 신규 채용에 거는 기대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대졸자를 채용한 뒤 키우는 데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경력자 채용을 중시하기도 한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예전에는 대학과 전공 그리고 학점을 보고 채용하면 크게 실패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불만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동안 기업들은 출신 대학을 통해 두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하나는 고교 졸업 당시 해당 학생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대학이 갖고 있는 인재 양성 능력이다.
학생이 고교 졸업 당시 갖고 있는 지적(知的) 능력과 함께 이 능력이 대학 4년간 어느 정도 향상됐는가를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출신 대학이나 전공보다는 영어성적과 면접을 중시하고 있다.
외국대학 출신이나 자격증을 선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출신 대학을 보고 지적 능력 수준을 판단하기 힘들어졌고 또 대학교육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각 대학이 적성에 맞는 학생을 잘 선발해서 경쟁력 있고 특성화된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의 신뢰가 깨지게 된 데에는 3불정책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대학은 좋은 학생을 뽑아 잘 가르쳐 배출함으로써 기업과 국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자 한다.
그런데 수능(修能)과 내신(內申)으로만 획일적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고, 더구나 출신 고교에 대한 차별성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은 한마디로 대충 뽑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잘 뽑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잘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다.
전공에 대한 적성도 열정도 없는 학생들을 모아 전공교육을 잘해서 기업과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 역시 힘들어 한다.
수능에서 한두 문제 실수 여부가 대학을 결정짓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와서도 전공 공부보다는 영어공부에, 그리고 면접준비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정도로 취업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3불정책은 학생·대학·기업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폐지돼야 한다.
첫째 대학으로 하여금 학생을 뽑는 자유를 갖도록 하자. 대학이 선발에서 자유를 갖게 되면 굳이 본고사를 부활할 필요가 없어진다.
몇몇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본고사를 보기보다는 학과별로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해 학과에 최대한 적성이 맞는 학생을 선발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대졸자를 뽑는 기업과 국가도 적성에 맞는 학생을 잘 선발해 잘 가르치는 대학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대졸자를 대상으로 하는 표준화된 전공능력시험을 실시해 기업들이 이 시험성적을 전공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게 하자. 이 시험은 일류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도 그리고 지방대학 졸업자라도 원하는 기업에 채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대학으로 하여금 전공교육을 내실화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나아가 고교시절 학업에 소홀했던 학생들에게는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셋째 입학 전형을 전면 자유화하게 되면 고교등급제 금지는 의미가 없어진다.
대학 당국의 다양한 선발 기준 중에서 출신 고교도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교별 등급을 책정하지 않더라도 대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교별 차별화를 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축적된다.
다만 일률적으로 고교별 수능성적을 갖고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교정보와 그 고교 출신 학생실적 정보들을 갖고 차별화할 것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고교교육도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3불정책이 학생 간 그리고 대학 간 평등을 보장한다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학생 대학 그리고 기업을 3불정책의 덫에서 구해내자. 그래야 비로소 새로운 성장동력이 가동되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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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사교육비 매년 급증…3不정책 재고해볼 시점
3불(不)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동안 교육계 안팎에서 다양한 찬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 정책을 둘러싼 공방의 주역은 주로 대학과 교육 당국 그리고 정치권이었다.
정작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몸을 담는 기업쪽에서는 3불정책에 대한 견해를 직접 밝힌 적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대졸자라는 상품에 대한 최대 수요처인 기업들이 이 정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이 정책의 지속 여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최종 소비자(기업)들의 견해가 제품(대졸자)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자재(고졸학생)의 선택과 이의 가공 과정(대학교육)에 매우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이제는 출신 대학만을 보고는 채용 대상자의 지적 능력 수준을 판단하기 힘들어졌다"고 넋두리를 한다.
기업들은 이제 자격 미달의 신입사원들을 또 다시 교육시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이느니 차라리 능력이 입증된 경력사원 채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채용시에도 출신 학교보다는 영어성적과 면접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한마디로 기업들이 대학이라는 인재양성 공장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능력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은 학생들 대로 고생이다.
'내신-수능-논술'로 이어지는 소위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헤치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이번에는 취직을 위해 전공보다는 영어와 면접 준비에 더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공에 대한 실력은 형편 없어지고 기업들의 대학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결국 대학 입학자들과 이들에 대한 수요자인 기업들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3불정책은 그 취지가 무엇이었든 어떤 형태로든 손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3불정책에는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이끌어 냈던 이석연 변호사는 3불정책 가운데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부분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추진 중이다.
그는 3불정책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하고 있는 헌법 31조 제4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3불정책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폐지한다고 해서 대학 입시제도를 비롯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교육비 증가를 막자며 도입된 3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가 매년 급증하는 현실을 보면 더 이상 이 정책이 존재 가치를 잃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해마다 늘어나는 교육이민 역시 교육의 '수월성'을 무시한 평준화 정책이 낳은 또 다른 부작용이다.
3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명문대에는 가난한 집 출신의 수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집중적인 '찍기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만이 높은 수능점수를 통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의 높은 부동산가격의 이면에도 평준화교육이 가져온 사교육 열풍이 자리잡고 있다.
강남 집값 안정의 열쇠는 각종 부동산 대책이나 종부세보다는 어쩌면 3불정책의 폐지 내지 수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