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4월9일자 A2면

[뉴스로 읽는 경제학] '3불(不)'정책 그대로 유지해야 하나요
노무현 대통령은 8일 교육방송(EBS) 특강을 통해 "3불(不) 정책이 무너지면 한국 교육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 주요 사립대학 총장들이 시작한 3불 정책과 관련된 논쟁이 정치권으로 확산되자 대통령이 직접 사태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특강을 계기로 정치인들과 대학들이 3불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잇달아 표명하고 있어 3불과 관련된 논란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3불 정책은 대입에서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것을 뜻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EBS로 방영된 '본고사가 대학 자율인가'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한국 교육은 그동안에도 성공해 왔고 그리고 지금도 성공하고 있다.

만일 한국의 교육이 성공적이지 않았다면 오늘 한국의 성공은 없는 것"이라고 전제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실제로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위기의 원인을 (3불 정책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위기"라고 말했다.

대학별 본고사 부활 주장과 관련,노 대통령은 "대학들이 본고사를 보려고 하는 이유는 변별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학교마다 각기 어려운 시험을 내면 학교에서 교육 수요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꾸만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게 되고 공교육이 완전히 붕괴해 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click@hank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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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한 이른바 교육 '3불(不)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과 교육인적자원부는 물론 대학교육협의회 등 관련 기관에 정치권과 언론까지 가세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어 국론분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한 방송에 출연해 "3불 정책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있는데,이것을 방어하지 못하면 교육의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이에 대해 한 언론은 "3불 정책은 입시가 아니라 제비 뽑기"라고 반박하고 나서는가 하면,또 다른 언론은 "3불 정책으로 상징되는 간섭 만능의 대입제도 아래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시대를 이끌 인재들이 길러질지 의문"이라며 '인재 구국론'까지 들먹이기도 했다.

이 와중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KEDI)까지 내신 강화와 수능 9등급제를 골자로 한 '2008학년도 대입제도'를 비판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면서 논쟁에 기름을 붓고 나섰다.

3불 정책 문제는 그대로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더 이상 온 나라가 찬반으로 갈려 논쟁만 벌이고 있어서는 안 되며,이제는 시시비비를 가려 존폐여부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그 판단의 잣대는 3불 정책이 과연 우리 공교육을 살렸느냐,아니면 위기로 내몰았느냐 하는 데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찬성쪽 "공교육 회생과 사회통합 위해 3불 유지해야"

대통령은 "3불 정책은 공교육을 살리자는 것"이라며 "한국 교육은 성공했고 지금도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특수목적고인 외국어고의 경우 외국어 전문가를 양성하기보다는 입시학원처럼 운영하면서 본고사 실시를 주장,우리 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대학의 본고사 부활 주장에 대해서는 "세계 일류 대학 중 본고사를 보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며 "본고사로 가버리면 많이 배우고 돈 많은 사람은 대학에 들어가고,그렇게 해서 몇몇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만이 한국 내 모든 요직을 독점한다"고 비판한다.

열린우리당도 "명문대들이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특목고에 유리한 입학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3불 정책은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해 유지돼야 할 최소한의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도 "최근 일부 총장들이 '3불'을 폐지하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해 학교를 흔드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며 이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 반대쪽 "FTA 시대 인재양성 위해 3불 폐지해야"

한나라당은 "3불 정책이 존속하고 있음에도 공교육은 죽어가고 사교육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의 전면적인 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 교육은 이제 FTA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며 3불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교육기관에 대한 △국가통제를 불허하고(불통제) △학생선발권에 대한 정부간섭을 불허하며(불간섭) △학교 운영에 대한 자율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불침해) 내용의 '신 3불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대 한승주 총장서리도 기여입학제를 제외한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금지 정책에 대해서는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여입학제는 실제로 제안하는 사람도 없는 나쁜 정책이지만,2008학년도부터 수능과 내신이 등급제로 바뀌면서 변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본고사가 능력 검증의 대안이 될 수 있으며,고교등급제 또한 평준화의 역효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장무 총장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차분히 장기적으로 접근해 대학입시 자율권 문제를 개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공교육 위기 막을 근본 해결책 마련 서둘러야

지난 30여년간 평등주의에 입각한 교육정책이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평등 이념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게 교육의 미래와 국가의 생존을 위해 과연 바람직한지는 한마디로 의문이다.

실제로 학교교육이 붕괴되다시피 하면서 학생들이 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가 하면,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한국인수가 1위를 차지하는 등 '교육 엑소더스'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나마 고교평준화의 폐해를 일부나마 보완해 온 외고에 대해서도 정부 당국이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세력으로 폄하하는 등 수월성 교육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3불 정책이 각 대학의 학생 선발권까지 직·간접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대학의 경쟁력을 훼손한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중등교육까지 일그러지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3불 정책을 폐지하는 게 공교육 위기를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3불 정책을 전면 해제할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는 만큼 대입 자율권을 확대하고 수월성 교육을 강화하는 등 단계적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교육 ‘3불’정책=대학입시와 관련해 정부가 규제하고 있는 3가지 정책,즉 본고사 금지,고교등급제 금지,기여입학제 금지를 말한다.

본고사는 대학이 자체 출제한 문제로 학생들에게 점수를 매겨서 선발하는 제도다.

고교등급제는 학교에 등급을 매겨서 대입에서 점수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동일한 점수라도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것이다.

기여입학제도란 대학에 돈을 주고 입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엑소더스(Exodus)=원래는 구약성서 출애굽기(出埃及記,Exodus)에서 모세가 이집트(애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현재는 어떤 지역이나 상황에서 탈출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자녀를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기 위해 무작정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교육 엑소더스’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