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과학에서 배우는 논리의 구조 (1) 심층과 표층

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리려면 미리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주어야 하는데 이 물이 순 우리말로 마중물이다. 논술 공부의 목적은 학생 스스로의 생각을 퍼 올리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학생은 저마다 무한한 생각의 샘을 갖고 있다. 다만 이 샘에서 물을 길어 올리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상 문제를 찍어주거나 정답을 가르치거나 사상을 주입하는 논술교육도 이 물길을 틀어막고 있는 불순물이 되어버렸다. 마중물 논술은 학생의 생각을 퍼올리기 위한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다. '마중물 논술'의 저자이기도 한 오태민 선생님과 함께 역동적이며 풍성한 생각의 푸른 바다로 떠나보자.

도박의 광란 바다이야기냐고? 아니다. 진짜 바다 속 이야기다. 그것도 깊은 바다 속…. 깊은 바다 속에는 전 세계 강물을 다 합친 것보다 30배나 더 큰 해류가 흐르고 있다. 깊은 바다 해류(deep sea water current)라고도 하고 심층순환(Deep Circulation)이라고도 한다. 이 심층순환은 속도가 아주 느려서 관측이 매우 어렵지만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영화 '투모로우'를 보면,심층해류가 흐르지 않을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를 상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적도지방의 열이 북부로 가는 걸 멈추자 북부지역에는 빙하기가 찾아온다. 반대로 적도 지방의 온도는 극단적으로 과열된다. 심층순환은 마치 태풍처럼 적도의 온기를 북부로 보냄으로써 지구표면 에너지 분포의 균형을 잡아준다.

극지방의 차갑고 소금 농도가 짙은 물은 무겁다. 이 물이 가라앉으면서 심층순환이 시작된다. 그런데 바다 속에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 태양에너지는 대부분 대기와 바다의 표면에서 흡수된다. 그래서 바다 속의 찬물은 위의 따듯한 물과 잘 섞이지 않은 채 독자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바다가 대기에 비해 매우 안정적인 이유다.

대기는 일반적으로 지표면에 가까울수록 온도가 높고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다. 공기도 물과 마찬가지로 온도가 낮을수록 무겁다. 대기 상층부의 차가운 공기가 무거워 자꾸 내려오려 하기 때문에 지표면 근처의 따듯한 공기는 밀려 올라간다. 따라서 대기는 끊임없이 수직운동(연직운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바다는 표면이 가볍고 따듯하고 깊을수록 차갑고 무겁다. 이 균형이 잘 깨지지 않기 때문에 심층해류의 흐름은 느리지만 매우 일정하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1)

심층해류는 극지방에서 저위도 지역으로의 흐름이기 때문에 표층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압력을 받게 된다. 따듯한 표층수는 그린란드의 빙상과 만나 온도가 낮아지면 밑으로 가라앉는데 이를 메우기 위해 적도에서 달궈진 표층수는 극지방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심층해류라는 도도한 흐름 때문에 같은 위도라도 캐나다의 동해안보다 북유럽의 기후가 훨씬 온화할 수 있다. 따듯하게 달궈진 멕시코 만류가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인데 이 흐름의 배후에는 바다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정 반대 방향의 심층순환이 있다는 것이다.

◆ 과학은 인문계 논술의 전략적 기초다

과학과는 담을 쌓고 지내도 된다고 착각해온 문과생들은 이쯤에서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과학은 통합논술을 위한 중요한 전략적 접근이다. '통합논술'이기 때문에 과학적 주제가 문제로 나올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문과생들은 무슨 문제가 주어지든지 딱 두 개의 도구만을 쥐어 잡고 덤비는 경향이 있다. 옳고 그름이거나 좋고 나쁨이다. 그래서 글들이 똑같다. 이 진부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비결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게 바로 과학이다. 과학도 철학에서 나왔다. 과학적 상상력도 따지고 보면 인문학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과학적 상상력은 인문학의 지나친 관념화를 막아 주면서도 명쾌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과학에 강한 인문학도의 글은 단순 명쾌하면서도 폭이 넓고 깊이가 있다. 한마디로 입체적이다. 일반적으로 채점관은 입체적인 글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 심층과 표층

바다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심층과 표층'이라는 유용한 도구 하나를 연마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훨씬 근본적인 흐름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이 흐름은 단순하면서도 일관성이 있다. 눈앞의 복잡한 현상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심층의 단순하고 일관된 흐름을 읽어내야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꼭 심층순환이라는 자연과학의 개념을 이해해야만 이런 안목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현상은 상상력의 원천(源泉)이다. 근대과학의 도움으로 새롭게 알게 된 바다 밑바닥의 도도한 흐름. 게다가 표면의 흐름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결국 표면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동력. 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사용한다면 그대는 소크라테스도,노자도,공자도 몰랐던 상상력의 원천 하나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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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논술은 스위스 칼을 준비하는것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과학에서 배우는 논리의 구조 (1) 심층과 표층
스위스 아미나이프(일명 맥가이버 칼)를 잘 알 것이다. 굵은 손가락만한 칼집을 펼치면 십여 가지의 다양한 기구가 등장한다. 혹자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쓸모 있는 물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큰 칼,작은 칼,가위,집게,십자드라이버,와인병 따개까지. 무인도에 갇히면 모를까 평소에는 거의 쓸모가 없는 이 물건에 흥분하는 것은 오로지 그 풍성한 가능성과 기발한 아이디어 때문이다.

논술시험은 무슨 재료가 나올지 모르는 요리 경연대회와 같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이 대회에 완성된 요리 한 접시를 들고 들어가겠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준비해간 요리가 문제로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 따라서 글쓰기 연습이라면 모를까 기출문제 따위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설혹 같은 요리가 또 문제로 주어진다 해도 모범답안대로 만들었다가는 스타일과 향신료까지 똑같은 무수한 붕어빵 답안 속에 묻혀버릴 가능성만 높다. 더구나 나온 문제가 또 나와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상대해 주는 게 출제자와 채점자에 대한 예의다.

무슨 재료가 나오건 만져줄 수 있는 도구가 10개는 넘어야 한다. 재료의 특성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가 달라야 한다. 칼이나 가위의 용도는 참으로 폭넓다. 이런 쓸모 있는 도구 몇 개를 스위스 칼처럼 작게 접어 시험장에 갖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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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제: "요코이야기를 해부하라"

마중물 노눌 문제와 해제 동영상 강의는 생글생글i(
www.sgsgi.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과학에서 배우는 논리의 구조 (1) 심층과 표층
미국 중학교의 권장도서 하나에 일본인이 쓴 자전적 소설이 들어있다.

'대나무 숲을 떠나 머나먼 고국으로'가 원제인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빌린 수기다.

1945년 7월 29일 주인공 요코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함경북도 나남(청진)을 탈출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한국인의 상처를 건드린 것은 조선인들이 피란 행렬의 일본 여자를 겁탈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때문에 미국의 한국 동포들은 이 소설이 한국인을 파렴치범으로 매도했다고 분노하였고 몇몇 동포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작가는 한국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겪은 대로 썼다는 해명에 한국인들은 또다시 분노한다.

인터넷의 댓글은 요코를 사기꾼으로 단정한다.

언제나 그렇듯 또 하나의 음모론이 집단 창작되어가고 있다.

요코 아버지는 만주에서 생체실험을 일삼던 731부대의 부대원인데 요코씨는 아버지의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 소설을 창작했고 일본은 이 소설을 이용해 정신대 문제에 대한 비난을 교모하게 피해보려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심층순환 개념을 익히게 한 다음 요코이야기에 대해 글을 쓰라고 하였다.

심층과 표층이라는 과학적 개념이 글쓰기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심산이다.

오태민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lowforest@naver.com


◆학생 글: "기반에 대한 이해가 없는 3자가 읽었을 때가 문제"

광복 전후의 시기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잔혹한 통치를 했다'는 뿌리 깊은 '기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기반은 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깊은 기반이 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사람을 겁탈'했다는 사실이 일어날 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코 씨는 사실을 기록했으며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요코 씨는 그 시대의 흐름 중 한 부분만을 기록하는 잘못을 했다.

우리나라나 중국 사람처럼 그 전의 변수와 기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국민이라면 몰라도, 과거사에 대한 잘못된 교육을 받는 일본 국민이나 과거 한일 관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국가의 국민에게 잘못된 역사를 심어줄 가능성이 큰 소설을 썼다.

이는 요코 씨가 명백히 잘못한 점이며, 일본은 오히려 피해자고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어조로까지 비친다.

요코 씨가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면, 혹은 일본이 정말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면, 그런 책이 나와서는 안 된다.

나오더라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 깃들은 소설을 써야한다.

지금의 요코 이야기처럼, 일본이 피해자인 듯, 전혀 잘못이 없는 듯이 쓰는 것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그다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명지외고 2학년 한진우)

많은 남학생들은 글은 길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진우 학생의 글도 길지 않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명쾌하고 글의 얼개도 한 눈에 들어온다.

문제가 됐던 요코이야기의 장면은 사실일 수도 있다.

표층의 흐름은 변덕스럽고 복잡하다.

당시 조선인들이 다 천사도 아니었을 텐데 절대로 저런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게다가 때는 일본이 전쟁에 패한 직후다.

치안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던 격변이었다.

진우가 문제 삼는 것은 겁탈 자체가 아니라 제3자가 이 소설을 읽었을 경우다.

일본이 한국인에게 주었던 피해에 무지한 제3자들의 눈에는 한국이 가해자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아프리카나 혹은 미국 남부의 농장에서 백인에 대한 흑인의 끔찍한 범죄가 전혀 없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야만적인 식민통치나 노예제라는 심층흐름 때문에 흑인들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사례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이 향하는 곳을 중시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요코의 소설은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표층의 한 지류에만 시선을 쏠리게 할 뿐 그 밑에 흐르는 일관되고 도도한 흐름을 읽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 진우의 생각이다.

◆학생 글: "소설을 통해 저자가 의도한 심층에 주목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사실은 왜곡되기 쉽다.

온 세상을 휩쓸던 전쟁이라는 광풍을 무시한 채,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지를 뒤로 한 채, '우리만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진정한 이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사관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는 편협한 사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요코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국 땅에서 땀을 흘리며 사실을 전하려는 우리 동포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장면에 집착한 바람에 저자가 그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에 대한 이해는 이뤄지지 않았다.

책의 많은 부분에 일본인이 '악하게' 그려지고 한국인이 '선하게' 그려졌다는 사실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전쟁 앞에서 우린 모두 피해자였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한국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한국민은 민족주의의 바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자국 중심적 사관'을 통해 세상에 호소해선 안 된다.

일본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편협된 사관으로 사실을 아무리 왜곡하려고 해도 세상은 속지 않는다.

우리가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더 넓은 아량을 가지고 '일본의 폭력에 의한 피해자'라는 관점이 아니라 '다 같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과거를 이해하려고 할 때, 한국민은 비로소 그 낡은 민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명지외고 2학년 김명훈)

김명훈 학생은 고등학생답지 않게 어려운 말을 곧잘 사용한다.

학원 논술의 흔적이라고 의심해보지만 본인은 다독(多讀)의 결과라고 항변한다.

그의 글은 통찰력이 돋보인다.

명훈이가 발견한 요코이야기의 심층은 진우의 그것과는 다르다.

일본의 제국주의나 한국의 수탈 같은 책의 배경이 되는 역사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책 그 자체에서 심층과 표층을 구별하고 있다.

요코이야기라는 작품의 심층흐름은 전쟁의 광폭함에 대한 고발이라는 것이다.

이 분석은 작가의 주장과 일치하며 책을 직접 읽은 한국인들 중에도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

책의 전반적인 흐름(심층흐름)이 실제로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표층에 해당한다.

글이나 말의 한 단면만을 추출해 문제 삼는 것은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화자나 작가의 의도를 정 반대로 전달 할 수도 있다.

명훈이의 글을 읽고 나면 책을 직접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책을 읽지도 않고 책이나 저자에 대해 발끈하는 일이 무책임하거나 위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표층과 심층이라는 관점은 요코이야기의 저자를 비판하는데도 혹은 옹호하는데도 사용할 수 있다.

어쨌건 앞뒤 가리지 않는 편 가르기나 웅변조 보다는 훨씬 품격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돕는다.

논술교육은 예상문제를 쪽 집어 주거나 사상을 심어주거나 올바른 결론을 내려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 스스로의 생각과 개성이 묻어나는 글을 쓰도록 돕는 것이다.

다만 보다 과학적이며 입체적이고 품위 있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좀더 엄격해져야 한다.

표층과 심층은 그런 유용한 개념의 도구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