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거나 비밀로 추진해선 안되지만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국익엔 도움

[뉴스로 읽는 경제학] FTA협상 중단 요구해도 되나요?
⇒한국경제신문 3월17일자 A5면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이 16일 현 정부와 각을 세우며 대선행보를 재개했다.

2·14 전당대회 후 칩거 한 달여 만이다.

김 전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 "이대로 가서는 안되며 다음 정부에 체결과 비준동의를 넘겨야 한다"며 "참여정부가 3월 말까지 한·미 FTA를 타결할 생각이라면 김근태를 밟고 가야 될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의장은 이어 "참여정부가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던 때처럼 낡은 방식으로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한덕수 총리 지명자가 한·미 FTA에 적극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게 확인되면 (인준에)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앞서 천정배 권오을 김효석 권영길 의원 등 국회의원 38명은 한·미 FTA 협상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등 한·미 FTA 협상 중단론이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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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회의원 38명이 한·미 FTA 협상은 국익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과거 여당의 의장 또한 "다음 정부에 체결과 비준 동의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농산물·섬유·자동차·무역구제·개성공단제품 처리 등 주요 쟁점을 놓고 막바지 힘겨루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물론 한·미 FTA가 우리나라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반대가 아니더라도 협상을 당장 중단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대외 의존도가 70%를 넘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문제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대 사안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일본의 총리 자문기구가 미국이 한국과 일본 중 한국하고만 FTA를 체결할 경우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장기적으로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분석한 데서도 확인됐듯이 한·미 FTA는 국익에 직결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FTA 문제로 우리 내부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일부 정치권, "시한에 쫓겨 서두르거나 비밀로 추진해선 안돼"

일부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국익을 위해 FTA를 추진하고 있다면 시간이 없다거나 협상 비밀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등의 핑계를 대서는 안 되며 지금이라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 명확해야 하고, 양보할 수 없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사전에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대책도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FTA 체결은 시한에 쫓겨 서두를 일이 아니며 정부관료 몇 사람이 비밀로 추진할 사안은 더더욱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또 그간의 협상과정에서 미국 측 전략에 말려 내줄 것은 거의 다 내준 반면, 우리의 목표로 제시됐던 무역구제나 개성공단 문제 등에서마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미국이 정한 협상타결 시한을 앞두고 우리 측이 이 일정에 쫓겨 일을 그르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FTA를 지지하는 쪽에서 반대론을 반미주의이자 쇄국주의로 몰아붙이고 '개방만이 살 길'이란 논리를 펼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반발한다.

◆경제계, "눈앞의 정치적 이익보다는 국가 장래 감안해야"

경제계는 세계 각국이 FTA를 통해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는 게 일반적인 추세인데도 정치권에서 이를 반대하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국가간 협상과정에서 모든 내용을 공개하기 어려운 점에 비춰볼 때 '대폭 양보''밀실에서 독단적인 진행'이라는 비판 또한 억지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정치권은 막연히 '국익 훼손'이라든가 '불평등한 협상'이니 '졸속 협상'이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 협상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뒤 구체적 득실을 비교해 반대 논리를 펴는 게 순리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만약 협상시한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과연 다음 정부에 넘겨도 협상을 계속할 수는 있는지, 그렇게 했다가 FTA가 영영 물 건너가면 어떻게 되는지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권 일부의 FTA 반대는 국익이야 어찌되든 한쪽의 주장을 대변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며 이는 국론 분열을 몰고올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철저한 준비 통해 협상 조기타결에 온힘 다해야

미국 같은 세계 최고 부자 나라와 FTA를 맺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번 잘못되면 엄청난 국가적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 시한에 쫓겨 졸속 협상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시한을 넘길 경우 미국 내 이해집단의 요구를 반영한 의회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협상이 훨씬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작업을 거쳐 가능한 한 조기에 타결짓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FTA를 통해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 정치권은 농산물·섬유·자동차·무역구제·개성공단제품 처리 등 주요 쟁점을 놓고 막바지 한·미 고위급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FTA 협상에 부담을 줄 게 아니라 우리 쪽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협상 당국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무역촉진권한(TPA·Trade Promotion Authority)=국제협상을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무역협상권한을 위임한 미국의 제도.예전의 ‘신속협상권(Fast Track)’과 같은 것으로, 의회가 행정부에 협상 전권을 부여한 채 협상 내용에는 일일이 관여하지 않고 나중에 합의문에 대해 찬반 투표만 실시하게 된다.

한·미 FTA 협상의 TPA 시한은 올 7월초이며 TPA에 따른 인준절차 등을 감안하면 올 3월말까지는 협상이 끝나야 한다.

◆무역구제(Trade Remedy)=특정물품의 수입으로 인해 국내산업이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을 경우 당해 수입물품에 대해 관세 및 비관세조치 등 구제조치를 취하여 산업을 보호하는 것으로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조치 불공정무역행위조사제도 등이 있다.

◆포퓰리즘(populism)=일반 대중을 동원하여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고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행태로 대중주의,인기영합주의,대중영합주의라고도 한다.

소수의 지배집단이 통치하는 엘리트주의(elitism)와 반대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