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상식 유쾌하게 뒤집었다"

[르네 마그리트전 20만명 돌파]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본 마그리트전
국내 처음으로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전' 관람객이 2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에 잠시 머리를 식힐 겸 그와 만나기로 마음 먹었다.

봄의 운치가 넘치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도심 속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서울시립미술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잔잔한 '예향(藝香)'이 넘쳤다.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르네 마그리트의 예술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 그려졌다.

전시실에서 날 처음 반긴 건 바로 예술 세계를 담은 그의 고백이었다.

"나에게 있어 회화는 색채를 병렬하는 예술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색채는 실제적인 면을 상실하고 대신 영감을 받은 사유를 드러내게 한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영화를 만드는 것도 사실 그의 말처럼 보이는 것을 스크린에 담는 것이다.

실제 작년 여름 '왕의 남자'를 촬영하기 전에 화보로 봤던 마그리트에 대한 감흥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회화의 변형을 몸소 보여 준 마그리트의 파격적인 예술 세계가 진한 추억으로 가슴 한 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그리트의 걸작 '올마이어의 성'을 보는 순간 죽음과 현실, 과학과 주술,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상들이 일관되게 변형되고 재창조된 데다 뒤틀리고 기이한 상상력이 내마음 깊숙이 누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영화를 꿈꾸는 할리우드의 이방인 팀 버튼이 감독한 영화 '가위손'에도 마그리트의 상상력이 마술처럼 번져 있음을 느꼈다.

팀 버튼이 제작을 맡았던 '크리스마스의 악몽''유령신부' 같은 영화들에서의 일관되게 변형된 독특한 영상 이미지가 마그리트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마그리트는 타고난 화가이자 시인,철학자였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는 미술을 철학과 언어의 또 다른 방식으로 봤다.

그의 회화는 일상 세계의 흔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지만, 논리와 상식을 유쾌하게 뒤집음으로써 회화 내에서 재미있는 결합을 시도한다.

영화 역시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면에 결합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다.

관객 1300만 명을 불러 모은 '왕의 남자' 역시 '말이 안 되는' 설정을 통해 '말이 되게' 함으로써 '대박'을 잡은 작품이다.

동양화를 전공했던 나는 20세기 전체를 관통한 그의 미술 세계를 못내 흠모해 왔다.

전시실은 마그리트의 생애, 나이의 흐름에 따라 작품이 10개 섹션으로 배열돼 있어 그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금세 체험할 수 있었다.

2층과 3층으로 이어지면서 7개의 시기별 대표작 270여 점이 전시된 이번 마그리트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마그리트 회고전'이란 말을 실감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