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과 함께 한경ㆍ인송장학금을 지급하는 인송문화재단은 고(故)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가 설립한 재단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과 기초 과학분야 학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인송재단은 설경동 창업주의 아들인 설원량 전 대한전선 고문이 2004년 3월 타계한 후 미망인인 양귀애 대한전선 고문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7년도 한경ㆍ인송장학금 지급을 앞두고 양 이사장(60)은 장학금이 비록 작은 금액이지만 학생들에게 희망의 촛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 이사장은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어떻게 키워 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확 달라질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결코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양 이사장은 2004년 3월 인송문화재단을 맡은 후 사재 130억원을 추가 출연해 150억원 규모의 장학사업을 본격 시작하고 설 회장의 뜻을 기려 설원량 문화재단도 별도 설립했다. 이들 재단은 학생 과학자 문화예술 분야 지원 사업을 펴는 한편,아기를 갖기 힘든 난임부부를 위한 지원 사업과 가족 사랑 그림 사진 공모전도 매년 열고 있다.

"남편이 떠나간 후 한동안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재단 기금도 늘리고 회사를 위해 정성을 다하게 됐지요." 양 이사장이 기억하는 설 회장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바른 길을 결코 비켜가는 법이 없고 검소하고 솔선수범하는 경영인이었다. 양 이사장은 그런 남편이 같이 있을 때는 못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옳은 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양 이사장은 '그룹' 회장과 평생 살면서도 평범한 가정주부에 더 가까웠다. 항상 회사일이 먼저였던 남편이 가끔 남산 길을 데이트하며 경영에 대해 들려 주었으나 그것으로 그룹을 이끌기에는 부족함을 느꼈다. 이에 양 이사장은 대한전선 고문으로서 낮에는 회사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대학과 연구기관을 다니며 3년째 경영 교육을 받고 있다. 세계경영원 등에서 지금까지 거쳐온 교육 과정만 대략 10개나 된다. "일주일에 평균 이틀 꼴로 나간 셈입니다. 항상 맨 앞에 앉아요. 가끔 질문도 받기 때문에 집중해서 들어야 하거든요.(웃음)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리를 통해 재계의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양 고문은 회사 일과가 끝난 후 계열사 임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거나 남산 길을 함께 오르며 산책 회의도 한다. 6km를 걸으며 계열사 임원들끼리 화합을 다지는 남산길 산책회의는 데이트 경영으로 알려져 있다. "한동안은 남산에 오를 수가 없었어요. 길가 나무 하나 하나에 남아 있는 남편의 잔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가끔씩 회사 사람들과 그 길을 걸으며 회사일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지요. 책상에서 못하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고요."

7부 길이의 짧은 진홍색 재킷을 입고 나온 양 고문은 환갑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활기차 보였다. 그러나 설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애틋한 감정이 되살아 나는지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울적할 때는 쇼팽의 왈츠 등을 연주하며 마음을 추스린다는 양 고문은 회사 직원들에게 스스로 일을 찾는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한다고 말했다. 박주병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