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한 침대회사에서 만든 광고."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한국광고대상을 받기도 한 이 광고 문구는 광고로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일반 언어생활에 끼친 부작용도 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초등학생들이 시험 때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란 질문에 줄줄이 '침대'를 골랐다는 웃지 못할 얘기다.

대중매체 못지 않게 노랫말도 언중의 말글살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면~ (…)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가수 박미경이 1985년 강변가요제에서 불러 크게 히트한 이 노래는 '민들레 홀씨 되어'다.

아름다운 노랫말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로 인해 '민들레 홀씨'란 말이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하지만 '민들레 홀씨'란 것은 없다.

민들레는 홀씨식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홀씨는 고사리나 이끼식물과 곰팡이,버섯 등의 균류같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무성(無性)생식 식물이 생식을 하기 위해 만드는 세포를 말한다.

한자어로는 포자(胞子)라고도 한다.

이들은 홀씨를 만들어 바람에 흩날려 이동함으로써 번식을 한다.

그런데 민들레는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유성(有性)생식 식물로서 홀씨라고 하지 않고 씨앗(한자어로는 종자)이라고 한다.

다만 씨앗을 감싸고 있는 솜털째 바람에 날리는 점이 홀씨식물과 비슷해 이로 인해 민들레 씨앗을 홀씨라 부른 듯하다.

말은 언중이 수용하고 사용하는 정도에 따라 본래의 형태와 달라졌어도 단어로 인정되곤 한다.

과거에 쓰던 강남콩이나 삭월세,미류나무,미싯가루 등이 시간이 흐르면서 강낭콩,사글세,미루나무,미숫가루로 형태를 바꿔 자리잡은 게 그런 경우다.

하지만 '민들레 홀씨'가 잘못된 표현임은 학술적·과학적 분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해도 여전히 틀린 말로 남을 뿐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