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할 둘만의 시간을 기대하고 나는 평일 아침 미술관을 찾았다. 하지만 미술관 입구부터 소란스러운 유치원생들로 인해 조용한 대화는 완전히 물 건너 가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이번 관람은 꽤나 시끄럽겠구나'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가던 중 유치원 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 사람(마그리트)은 상상력이 참 풍부했대요. 우리 이 작품에 대한 제목을 우리가 지어 볼까요?"

이미 '폴누제의 초상화'에 대해 큐레이터로부터 설명까지 들은 나로서는 초상화라는 범주를 벗어나는 제목이 상상되지 않았다. 문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모습의 사람이 서 있는 그 그림에 대해 한 유치원생이 '그림에 비친 연주자요' 하고 대답했다. 유치원생의 대답으로 꽤나 그럴듯 해 나 또한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난 그 뒤로 유치원생이 되었다. 제목을 먼저 보고 그림을 이해하기보다 그림을 보고 제목을 맞추는 게임을 벌였다. 난해한 연극을 연출하는 르네 마그리트와의 신경전이 막을 올린 것이다.

그의 그림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 그림에 빨간 커튼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그림을 통해 연극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그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그의 연극'에서 나를 가장 당황스럽게 만든 작품은 관람 중간쯤에서였다. 강가에 서있는 사람들의 그림인데 목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 다리 모양과 캔 모양의 도구가 올려져 있어 얼핏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작품이었다.

내 옆에 있던 아이는 그 그림을 보고 '무섭다'며 도망가기도 했다. 머리가 없는 모습에 나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이름을 지어 보았다. 하지만 제목은 그저 '강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붙어 있었다.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큐레이터가 설명을 해주었다.

"르네 마그리트가 젊은 시절,그의 어머니가 마을 강가에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간 마그리트가 이 그림을 울면서 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연극은 비극으로 바뀌어 보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을 한 바퀴 다 돌 즈음 나는 신경전의 고삐를 늦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미지를 그리거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결국 같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사람 그림에서 '곤충들의 삶'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을 보았을 때는 그의 재치에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하기도 했다.

마지막 작품으로,르네 마그리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라는 사진을 보면서 난 그에게 인사했다. "당신의 연극은 최고였어요. 그리고 이번 신경전에선 제가 진 것 같군요." 르네 마그리트 당신의 재치와 상상력을 누르기 위해 앞으로 나는 더 노력해야할 것 같습니다.

오지혜 생글기자(서울 오류고 3년) jiheay3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