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월1일자

불법 체류자가 포함된 국내 최초의 외국인 노동자 노조가 제출한 노조설립신고서를 정부가 반려했으나 이를 취소하라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특별11부(김수형 부장판사)는 1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불법 체류자가 포함된 외국인 노조 설립을 인정해 달라"며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깨고 "설립신고서 반려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외국인 노동자 91명으로 결성된 국내 첫 외국인 노조에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다수 포함돼 있어 노동계에서 '적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되며 대법원 상고시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불법 체류자 노조 허용 바람직하나요?
서울고등법원이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포함된 외국인노조 설립을 불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불법 체류자는 노조설립 자격이 없다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다수의 불법 체류자들이 포함된 서울·인천·경기 이주노동자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청이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하자 지난해 소송을 냈으며,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원고 구성원의 일부가 불법 체류자이므로 노조설립 자격이 있는 근로자라 볼 수 없다'고 판결했었다.

사실 불법 체류 외국인은 현행법상 명백한 추방 대상자로 노동 3권 등 법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법적·사회적 통념이었다.

하지만 고법 재판부가 출입국관리법이 불법 체류자의 고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근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근로자단체를 결성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규정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이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불법 체류자의 노조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불법체류 외국인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측,"불법체류자도 '노동 3권' 원칙 존중돼야"

"노동 3권은 근로자가 노사관계에서 실질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으면 노조설립 자격이 있다"는 고법의 해석은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이주노동자 노조측은 주장한다.

'많은 나라가 불법 체류자의 노조설립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불법을 저지른 이들도 보호하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일부의 주장은 보편적 권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나라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보편적 권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불법 체류 문제는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불법 체류를 방치하거나 조장할 수는 없지만,이 문제는 별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노동청이 조합원의 체류 자격이 있는지 심사할 권한이 없는 데도 법령상 근거 없이 조합원 명부 제출을 요구했다는 서울고법의 지적을 새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부의 임무는 노동자에 대한 관리·통제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노동부 등,"불법 체류자 노조 허용은 사회 혼란 우려"

이에 대해 노동부 등은 불법 체류 외국인의 취업 자체가 명백한 불법임에도 이를 근거로 이뤄지는 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불법 체류자의 노조는 물론 그들의 근로계약 효력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고용계약이 당연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는 법원 판결은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는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사회질서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수긍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불법 체류자도 인권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도적 차원에 그쳐야 하며,불법행위 자체를 용인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불법 체류자의 노조 설립이 허용되더라도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불법 체류자들이 추방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신분이 노출되는 노조 활동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더러,이들의 노조 활동이 중소기업에 큰 부담을 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노동 3권 허용 여부는 신중히 결정해야

불법 체류자의 대부분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며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해결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법 체류로 인해 제도적 보호는 말할 것도 없고, 인격적 대우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실정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은 시급히 해결돼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국내 외국인 노동자 43만여명 가운데 18만9000여명이 불법체류자로 추정되고 있는 실정에 비춰볼 때 고법의 판결대로 최종 결론이 난다면 불법체류 근로자로 구성된 노조 설립이 러시를 이룰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은 불법 체류자 단속과 강제출국 반대운동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정상적으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마저 불법 체류자로 만들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추방 대상자인 불법 체류자에게 노동 3권까지 주었다가는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불법 체류자에 대한 노동 3권 허용 여부는 이러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보다 신중히 결정돼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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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노동(근로) 3권

근로자들이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우리나라 헌법에 규정돼 있다.


◆이주노동자

다른 곳이나 다른 나라로 옮겨가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나라에 와서 노동을 하는 외국인을 말하지만 이주노동자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에게 국내 근로자와 동등한 고용조건을 보장해 주는 제도. 외국인력을 고용하려는 사업자가 직종과 목적 등을 제시할 경우 노동부 장관이 그 타당성을 검토하여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외국인력 도입 정책이다.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제도로 이원화돼 있던 외국인력 도입이 올 1월부터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됨에 따라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대행 업무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3D 업종

어렵고(Difficult),더럽고(Dirty),위험한(Dangerous) 분야의 산업을 일컫는 것으로 주로 제조업·광업·건축업 등이 꼽힌다. 근래 들어선 D램 반도체,디지털(정보통신),디스플레이(Display) 혹은 정보통신(Digital),바이오(DNA),디자인(Design) 분야를 일컫는 ‘신 3D업종’이란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