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표준 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2008년부터 인터넷사전(웹사전)으로만 편찬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한글날을 기해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종이사전의 종말을 고했다.
'표준 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인터넷사전으로 펴내겠다는 말은 더 이상 종이사전을 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한 달 뒤 K출판사.국어사전을 담당하고 있던 팀에 더 깊고 암울한 통보가 전해졌다.
"국어사전 편찬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사전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국어사전팀은 이달 말로 해체합니다."
K출판사는 그동안 대사전을 비롯해 각종 중사전류를 발간해 오면서 '표준 국어대사전'의 오류나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사전업계에서는 나름대로 성가를 쌓아 오던 중견 출판사다.
가령 '맞장'과 '맞짱'이 뒤섞여 쓰일 때 앞장서 '맞짱'을 제시했고,'버벅거리다'란 말을 써도 괜찮을지 고민스러울 때 이곳 사전을 보면 올림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영상의 이유로 아예 사전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다(이 출판사는 최근 방침을 바꿔 조직을 대폭 축소한 채로나마 사전팀을 부활시켰다).
근대 이후 우리의 사전 역사는 벌써 120여 성상을 쌓았다.
초기에는 주로 기독교 포교를 목적으로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불자전'(1880년) 등의 사전이 만들어졌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어사전'을 편찬한 것 역시 식민 지배를 위한 문화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진정한 우리 사전이 아닌 셈이다.
한국인에 의해 탄생한 최초의 국어사전은 1938년에 나온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라는 것이 최근까지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에는 1930년에 발행된 것으로 알려진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이 발견되는 등 우리 사전의 효시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한 규명이 덜 돼 있다.
그동안 소사전에서 대사전에 이르기까지 수만은 종류의 국어사전이 편찬됐지만 사전사(史)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것으로는 1957년 한글학회에 의해 완간된 '큰사전'과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표준 국어대사전'을 들 수 있다.
'큰사전'은 암울한 일제 치하이던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구성돼 거의 30년이 흐른 1957년 제6권 간행으로 전질이 마무리됐다.
'큰사전'의 편찬 과정에는 우리 민족의 수난과 굴곡진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조선어 사전 편찬작업은 1942년 극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원고 대부분을 완성해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든다.
그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가 조선어학회를 급습해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국어학자들을 투옥하고 사전원고 일체를 압수해간 것이다.
바로 조선어학회사건이다.
문제는 이 와중에 증거물로 압수된 사전 편찬용 원고가 사라진 것이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뒤진 끝에 서울역 운송부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원고뭉치를 찾아 1947년 '큰사전' 첫째 권을 펴냈다.
이후 1957년 10월9일 제6권을 끝으로 완간하게 되기까지에는 미국 록펠러재단의 원조가 결정적인 후원이 됐다.
이 또한 민족적인 대사전 작업이 당시 외국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굴곡진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9년 간행된 '표준 국어대사전'은 정부가 나서서 1992년부터 8년여에 걸쳐 120여억원을 투입한 대사업이었다.
상·중·하 세 권에 7000여쪽이 넘고 올림말 역시 표준어를 비롯해 북한어 방언 옛말 등 50여만 단어를 수록한 방대한 책이다.
이 사전이 나오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게 국가에서 주도했다는 점에서 국내 여타 출판사의 사전보다 높은 권위를 부여받았다.
이후 대부분의 시중 출판사들이 '표준 국어대사전'을 바탕으로 사전을 펴낸 것은 물론이다.
국가 주도의 사전 편찬작업은 동시에 민간 출판사들의 사전 편찬 의욕(시장성은 물론이고)에 치명타를 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당시에도 있었다.
이런 우려는 종이사전뿐만 아니라 종이출판 자체가 디지털출판에 점차 자리를 내주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종이사전의 '퇴출'을 재촉하고 있다.
국어사전이 지나온 시절은 종이사전에 우리의 역사가 담겨 있고 문화가 스며 있음을 말해준다.
터치스크린으로 들여다보는 전자사전이나 인터넷사전이 과거 책장을 넘기고 밑줄 그어가며 찾아보던,그리고 때론 씹어 먹기도 하던 종이사전만큼 우리에게 사고(思考)의 장(場)이 돼 줄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
지난해 한글날을 기해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종이사전의 종말을 고했다.
'표준 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인터넷사전으로 펴내겠다는 말은 더 이상 종이사전을 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한 달 뒤 K출판사.국어사전을 담당하고 있던 팀에 더 깊고 암울한 통보가 전해졌다.
"국어사전 편찬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사전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국어사전팀은 이달 말로 해체합니다."
K출판사는 그동안 대사전을 비롯해 각종 중사전류를 발간해 오면서 '표준 국어대사전'의 오류나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사전업계에서는 나름대로 성가를 쌓아 오던 중견 출판사다.
가령 '맞장'과 '맞짱'이 뒤섞여 쓰일 때 앞장서 '맞짱'을 제시했고,'버벅거리다'란 말을 써도 괜찮을지 고민스러울 때 이곳 사전을 보면 올림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영상의 이유로 아예 사전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다(이 출판사는 최근 방침을 바꿔 조직을 대폭 축소한 채로나마 사전팀을 부활시켰다).
근대 이후 우리의 사전 역사는 벌써 120여 성상을 쌓았다.
초기에는 주로 기독교 포교를 목적으로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불자전'(1880년) 등의 사전이 만들어졌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어사전'을 편찬한 것 역시 식민 지배를 위한 문화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진정한 우리 사전이 아닌 셈이다.
한국인에 의해 탄생한 최초의 국어사전은 1938년에 나온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라는 것이 최근까지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에는 1930년에 발행된 것으로 알려진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이 발견되는 등 우리 사전의 효시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한 규명이 덜 돼 있다.
그동안 소사전에서 대사전에 이르기까지 수만은 종류의 국어사전이 편찬됐지만 사전사(史)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것으로는 1957년 한글학회에 의해 완간된 '큰사전'과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표준 국어대사전'을 들 수 있다.
'큰사전'은 암울한 일제 치하이던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구성돼 거의 30년이 흐른 1957년 제6권 간행으로 전질이 마무리됐다.
'큰사전'의 편찬 과정에는 우리 민족의 수난과 굴곡진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조선어 사전 편찬작업은 1942년 극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원고 대부분을 완성해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든다.
그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가 조선어학회를 급습해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국어학자들을 투옥하고 사전원고 일체를 압수해간 것이다.
바로 조선어학회사건이다.
문제는 이 와중에 증거물로 압수된 사전 편찬용 원고가 사라진 것이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뒤진 끝에 서울역 운송부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원고뭉치를 찾아 1947년 '큰사전' 첫째 권을 펴냈다.
이후 1957년 10월9일 제6권을 끝으로 완간하게 되기까지에는 미국 록펠러재단의 원조가 결정적인 후원이 됐다.
이 또한 민족적인 대사전 작업이 당시 외국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굴곡진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9년 간행된 '표준 국어대사전'은 정부가 나서서 1992년부터 8년여에 걸쳐 120여억원을 투입한 대사업이었다.
상·중·하 세 권에 7000여쪽이 넘고 올림말 역시 표준어를 비롯해 북한어 방언 옛말 등 50여만 단어를 수록한 방대한 책이다.
이 사전이 나오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게 국가에서 주도했다는 점에서 국내 여타 출판사의 사전보다 높은 권위를 부여받았다.
이후 대부분의 시중 출판사들이 '표준 국어대사전'을 바탕으로 사전을 펴낸 것은 물론이다.
국가 주도의 사전 편찬작업은 동시에 민간 출판사들의 사전 편찬 의욕(시장성은 물론이고)에 치명타를 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당시에도 있었다.
이런 우려는 종이사전뿐만 아니라 종이출판 자체가 디지털출판에 점차 자리를 내주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종이사전의 '퇴출'을 재촉하고 있다.
국어사전이 지나온 시절은 종이사전에 우리의 역사가 담겨 있고 문화가 스며 있음을 말해준다.
터치스크린으로 들여다보는 전자사전이나 인터넷사전이 과거 책장을 넘기고 밑줄 그어가며 찾아보던,그리고 때론 씹어 먹기도 하던 종이사전만큼 우리에게 사고(思考)의 장(場)이 돼 줄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