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전'(4월1일까지)이 미술평론가,화가 등 미술전문가 54명이 선정한 '1월의 좋은 전시' 종합부문 1위에 올랐다.

개막 40일째인 지난달 28일엔 누적 관람객 수 10만명을 돌파했다.

이 전시회는 다른 유명화가 전시회와 달리 마그리트의 대표작을 총망라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입소문을 타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람객이 늘어나고 있으며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찾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서울 은평천사원 원생 35명이 고(故) 설원량 전 대한전선 회장의 뜻을 기려 설립한 설원량문화재단의 초청을 받아 마그리트전을 관람했다. 생글생글 학생기자 14명도 이날 마그리트전을 단체 관람하고 감상문을 썼다.


'기어(奇魚) 발견.' 1960년대 초 어느 일간지가 상반신은 고등어 같고 하반신은 여자의 몸 같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해외토픽난에 실으면서 붙인 제목이다.

며칠 후 그 신문에 '괴상한 물고기가 아니고 사진작업을 통해 조작한 포토 몽타주였다'는 웃지 못할 정정기사가 났다.

당시로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마그리트는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한국진입에 성공한 셈이었고,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고 있다.

2002년 가을 파리의 주드 폼므 미술관에서 마그리트 걸작 회고전이 열렸을 때 미술관측은 입구와 출구에 가건물을 짓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급조된 건물에서는 화집·포스터·엽서·머플러·티셔츠 등 온갖 아트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유럽인들이 이처럼 열광하는 것은 마그리트를 '문화스타'로 여기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마그리트 작품이 상식의 세계를 뒤집는 '기상천외한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었다.

마그리트는 서로 다른 개념의 사물이나 풍경을 나란히 놓으면 또 하나의 다른 개념의 기이한 풍경으로 바뀐다는 변증법적 방법론을 지켜온 작가였기 때문이다.

마그리트는 무능한 지식인들을 '초현실적'으로 꼬집었다.

프랑스 지식층을 통칭해 '카르테지앙(Cartesian)'이라고 한다.

이성과 합리성의 표상인 데카르트의 자손이라는 긍지도 되고 꽉 막힌 답답한 친구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당시 답답한 이성의 아성을 훨훨 넘나드는 '초현실주의의 곡예'를 통해 지식인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 마그리트로선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그리트에게는 답답한 이성의 성(城)도 없었고,종교의 구속도 느슨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학에서는 소설가 겸 시인 이상이라는 '거물'이 나왔으나 미술계에서는 이만한 초현실주의 작가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교육 받아온 서양미술에서 초현실주의는 일종의 혁명에 속하는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근엄하고 단정한 모습의 마그리트는 시인이요,철학자로 변증법적 방법론을 냉철하게 구사해 온 당대의 거장이다.

'기어 발견'이라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 기회에 전시장을 찾아 마그리트의 작품을 제대로 접해보아야 할 일이다.


■ 생글 기자가 본 전시회

"그래,대한민국은 어젯밤에 냉장고였어!" 이런 문장을 두고 논술 채점위원들은 말한다.

"철저히 비문(非文)이군,불합격!" 하지만 그림에서는 이런 '비문'을 능가하는 다양한 형식들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시도해 볼 수 있다.

와인잔에 구름 올려놓기,머리 대신 다리 붙여놓기,낮과 밤이 공존하는 세상 등등…. 이런 방법을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적용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내겐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들'투성이였다.

그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도저히 알 수 없는 그림 자체의 의도는,이를 꼭 해석해 보려는 내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관계가 없는 듯하면서도 몇 가지 모티브들을 구심점으로 정리되는 그림들의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이면서,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채워진 동화책,당시엔 그냥 '그림책'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한글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그림책은 온갖 상상을 펼치는 데 안성맞춤이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재미는 정말 쏠쏠했다.

어떤 면에선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어릴 적 그림책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림을 어떻게든 '해석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어릴 적 '제목과 상관없이' 그림책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차피 마그리트의 그림 제목은 그가 작품을 그린 진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림의 제목은 마그리트가 따로 문학을 하는 친구들에게 의뢰해,그들이 그림에서 받은 영감을 옮겨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제목을 통해 마그리트를 분석하려 했던 나의 노력은 헛수고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사고의 족쇄가 풀리자 마그리트 그림에 대한 감상이 한결 편하고 즐거워졌다.

물고기를 모티브로 그린 작품을 보며 "앗,저 그림엔 내 친구 '고기'(물고기를 닮은 친구의 별명이다)가 있다!"며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고유한 생각지도를 가지고 있는 나,즉 관람객 자신의 관점과 제목을 붙인 마그리트 친구들의 관점,그리고 마그리트 본인의 관점이 서로 공존하며 3자 간 대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스스로 말했듯이 '평생 처음 보는 것들이라 눈앞에 없더라도 자꾸만 생각날 수밖에 없는 그림'으로서 절대 잊을 수 없다.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의 공간 어딘가 깊숙이 박힌 마그리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맛은 오래 묵혀야 제맛이라고 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머릿속에 장독대를 만들어 보관해야 할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언제나 즉각적인 답만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서 빨리 답이 나오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우리들에게,오래오래 두고 이미지를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각자 나름의 사고틀을 적용해 풀어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워낙 특이하고 난생 처음 보는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전시회를 보고 나서도 저게 무슨 의미일까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의 잔상들을 이어가면서 더없이 소중한 '나만의 그림책'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게 해준 전시회였다.

김새롬 생글기자(춘천여고 1년) a_bomb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