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기업을 분석해 종목을 선택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전망하려면 정부정책,환율,원자재가격 등 국내외 경기동향 뿐만 아니라 해당 업종이 경기변화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 기업경영의 모든 변수를 고려해 미래가치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전문적인 투자자들도 어려움을 겪는 판에 개인투자자가 이런 분석을 혼자 도맡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식 시장에는 상장 기업들을 자세히 분석하고 주식을 살 것인가 팔 것인가 하는 투자 의견을 권하는 애널리스트(분석가라는 의미,줄여서 '애널')들이 존재한다.

최근 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갈수록 그 힘이 막강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애널 펜 끝에 주가가 움직인다'는 말조차 나돌 정도다.

실제로 애널리스트들이 발표하는 기업분석 보고서에 실린 코멘트 한 마디가 해당 기업의 주가를 출렁이게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들이 해당 기업의 경영 상태나 전망 등에 대해선 국내 최고 전문가라는 사실을 투자자들도 인정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애널리스트들도 자신이 분석하는 분야에선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 없이는 일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 애널리스트들은 무슨 수단을 활용해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파헤칠까.

기업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기업이 발표하는 연간 및 분기 실적과 손익계산서,대차대조표 등 재무제표,IR(기업설명회) 자료,시장 상황 등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기업의 미래를 진단할 수는 없다.

기업과 시장이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경영 실적과 재무 제표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기업 분석 때 실적 외에 무엇을 중시해 보는가'에 대해 물어보면 재미 있는 결과를 얻게 된다.

아주 사소할 수도 있는 것들이 투자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항목이 된다는 것이다.

○'화장실 깨끗한 기업이 미래도 밝다'

애널리스트가 분석 대상인 상장 기업을 방문했을 때 체크 포인트로는 기본적인 경영 현황 외에 △화장실 청결도 △복지 시설 △대표이사의 복장 △대표이사와 관계된 사진 형태 △책장 △점심식사 수준 △IR담당자 태도 △근로자들의 표정 △회의 시간 등까지 포함된다.

"기업을 분석하는데 웬 화장실?" 하고 반문할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애널리스트의 분석은 기업의 재무제표에 나타난 수치상의 성적 못지않게 일반인들의 상식을 과감히 깬 비경제적 요소들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는 것이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종을 맡고 있는 한승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기업 방문시 맨 처음 화장실부터 찾는다.

화장실 상태를 직접 눈으로 점검해 보기 위해서다.

그는 "과거 기업 분석의 경험상 화장실이 깨끗한 회사는 기강이 바로 서 있고 직원들의 근무 태도도 좋은 편"이라며 "이런 상장사는 대체로 미래가 밝다"고 강조했다.

○경영자가 한눈 파는지 점검

대신증권 기업분석부 강록희 연구원은 상장 기업 대표이사를 만날 때 사무실을 꼼꼼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강 연구원은 "중소기업의 사장실에는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각종 상패 등이 진열돼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며 "이는 정치인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어서 기업 본연의 경영에는 소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IR 담당자의 태도도 회사 평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강 연구원은 "2년 전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재무담당 최고책임자(CFO)를 만났는데 자신감 있는 어조로 경영 현황을 설명하는 데서 강한 소속감과 충성도를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근로자들 표정도 기업 분석의 체크 포인트

대우증권 신동민 연구원은 기업의 복지 수준을 중요한 체크 포인트로 꼽는다.

그는 "지난해 한 코스닥 상장사를 방문했는데 회사 입구에 유치원이 있었다"면서 "기혼 여직원들을 위한 회사측의 이런 배려가 경영 실적보다도 더 빛나 보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회사 마크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있는 대표이사나 환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간결하고 짧은 회의 시간 등에도 애널들은 높은 점수를 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서적들이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거나 구내 식당에서 제공되는 점심식사 수준이 높은 회사도 마찬가지다.

우리투자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NHN의 출근 시간을 오전 9~10시 사이로 알고 있었는데 직접 방문해 보니 많은 직원들이 그 이전에 나와 영어 공부 등 자기 계발에 열심이었다"며 "근로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기업일수록 믿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현영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hjy@hankyung.com

[ 분석대상 기업은 200~300개 불과 ]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유가증권 시장 735개사와 코스닥 시장 967개사를 합쳐 모두 1702개사이다.

그러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하고 있는 업체는 고작 200~300개에 불과하다.

전체 상장 기업수의 11~17% 수준이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코스닥 시장에서는 전문적인 분석이 없는 종목이 많아 불법 주식 거래가 성행하는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체로 위험도가 낮은 우량 기업들에 초점을 맞춰 경영 전망과 투자 의견 등의 정보를 내놓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기업들에 대한 감시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형편이다.

내부자 거래나 이른바 '작전 세력'의 주가조작 사례가 심심치 않게 적발되는 것도 많은 종목들이 애널리스트들의 시야 밖에 비켜 서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수합병(M&A),경영권 분쟁 등의 정보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기업의 내부자(대주주,경영진,임직원 등)에게 악용될 소지가 많다.

금융감독원이나 증권선물거래소가 시장 감시에 주력하고는 있지만 시시각각 벌어지는 이런 부정 행위를 잡아내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보를 내리기란 사실 쉽지 않다.

따라서 애널리스트들의 분석 대상 기업수를 점진적으로 늘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의 관심 이전에 상장기업 스스로 투명한 경영 철학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애널리스트들도 투자자들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분석 대상에 오른 회사의 주식은 보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