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칼럼 김중수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


->한국경제신문 12월21일자 A39면

우리 경제의 미래에 관해 낙관적 소식을 접한 기억이 희미하다.

부동산가격 폭등문제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정작 중요한 성장률 하락,가계부채 급증,중소기업 경영난에는 대처할 겨를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이런 근본적 경제문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고,정부 역시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경제위기가 또다시 찾아오느냐고 걱정하지만 정작 경제운영을 책임진 지도자들한테서는 이에 대한 경계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위기는 어떻게 오는가? 1970년부터 1997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50회가 넘는 외환위기와 90회 정도의 금융(은행)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위기라는 표현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공적자금 등 각종 형태의 정부 지원이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외환·금융위기의 요인들은 물론 다양하다.

정부의 과다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1980년대 남미 국가),주택·복지 관련 정책금융을 개혁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금융자유화 추진이 야기한 금융위기(1990년대 초 북유럽 국가),재정균형은 유지했으나 비대화(肥大化)된 공공부문의 비효율이 제조업 등 교역재(交易財) 부문에 전가됨으로써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데서 기인한 외환위기(1994년 멕시코),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복합적 형태(1997년 아시아 국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글로벌 추세와 시장원칙에 부응하지 못한 제도나 정책의 부작용이 누적된 결과라는 점이다.

둘째 급격한 신용팽창에 따라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에 버블이 형성된 후 실물경기가 위축된 가운데 버블 제어를 위해 금리인상을 시도하고,금리자유화 환경에서 금리인상은 고수익을 좇는 고위험투자를 횡행하게 만들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리더십이 약하게 되는 상황에서 위기관리를 등한시해 위기가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넷째 위기극복을 위한 경제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외부 충격에 의해 추진된 경우 개혁이 내부적으로 체질화되지 못해 다른 형태의 위기가 재발할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특징들이 아닌가?

경제는 어려운데 온 나라의 시선이 부동산정책에 쏠리고 있다.

무주택자는 주택소유 희망이 사라져 좌절하고,주택소유자는 집값상승에 따른 자본이득(투기소득)이 남보다 적을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다주택자나 고가주택 소유자는 종부세 중과(重課)에 혈압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이 문제 해결이 먹고 사는 문제나 젊은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더라도,지금은 이 문제가 더 악화돼 경제위기를 불러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경제위기란 사고(事故)에 비유된다.

한눈 팔거나 과속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사고다.

예방조치도 하고 보험도 들어야 한다.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버블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착륙을 하게 되면 부동산위기가 금융과 실물경제 위기로 금세 번지기 때문에 경제안정을 전제로 한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종합적이고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한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이 문제가 해결된 후의 상황을 설득력 있게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안정을 회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가격상한제 또는 원가공개 같은 경제규제로 해결하고자 시도할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다.

한 번의 규제는 끝없이 다른 규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시작하지만 뜨거운 머리로 귀착되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경험해 왔다. 차가운 머리의 대안(代案)을 정치지도자가 용인하지 않고 흥분한 군중이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만능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적의 대안이라는 신념을 정책당국자들이 갖고 있을 경우에만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활력 잃은 경제는 나라의 노화 조짐 … 경제위기는 규제로 못막는다 >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국민들이 미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리는 사라진 대신 팍팍한 삶의 현실을 한탄하는 소리만 드높아지고 있다.

남들(개발도상국들)이 그토록 부러워하고 배우고 싶어하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5년, 10년 뒤 청사진을 그려보긴 커녕, 당장 내년이 걱정스럽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부동산값 폭등에서부터 성장 둔화, 환율 불안, 가계빚 사태, 일자리 부진과 청년실업에 이르기까지 온통 우울한 뉴스들 홍수다.

피부가 까칠해지면 탄력을 잃고 쉽게 노화되듯이, 활력을 잃은 경제야말로 나라의 노화조짐이 아닐까 싶다.

김중수 교수는 이 칼럼에서 1970년 이후 세계 각국의 240여회에 달하는 금융·외환위기의 원인 분석 결과, 네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고 소개했다.

즉 세계의 흐름과 시장원칙에 따르지 않는 정책의 부작용, 제어능력을 넘어선 경제 거품과 이에 대한 잘못된 대응. 정치적 리더십 약화속에 빚어지는 위기관리 소홀, 외부로부터의 개혁과 내부 대응의 엇박자 등이다.

이런 요인들이 1997년 외환위기와 그 이후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한눈 팔거나 과속하다가 눈 깜짝할 새 일어나는 교통사고처럼, 경제위기도 '설마, 어어!'하는 사이에 들이닥친다.

경제란 마치 날계란 같아서 조심스레 다루지 않고 던지거나 누르다간 깨지기 십상이다.

위기 이전에 예방책이, 그럼에도 위기가 닥친 뒤엔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예방책이든 해결책이든 규제로는 풀리지 않는 게 복잡미묘한 경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최근 논란을 빚은 가격상한제, 원가공개 등을 예로 들면서 "한번의 규제는 끝없이 다른 규제를 불러온다"고 강조한다.

돌 던지기식 규제 만들기는 또다른 부작용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다중의 의견(여론)은 늘 옳을 수 없거니와, 만능의 열쇠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표가 아쉬운 정치인은 흥분한 다중의 비위를 맞추려 온갖 현상을 '마녀'로 규정하고 화형에 처하라고 외칠 것이다.

그래서 "정치꾼은 항상 다음 선거만을 생각하지만 올바른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한명숙 총리의 말이 새삼스럽다.

위기에 대한 예방책인 동시에 해결책으로써 인류는 최선은 아니어도 가장 덜 나쁜 대안을 발견해냈다.

바로 시장경제다.

시장경제는 몸에 좋은 한약과 비슷해서, 오래 정성들여 달이고 공들여 먹어야 효험이 있다.

규제를 쏟아내는 '큰 정부'와는 철저히 상극이고 대중들에겐 입에 쓴 약이다.

그래서 인기도 없고, 표도 안 나오지만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최고의 해법이었음은 1980년대 영국, 최근의 일본 등 많은 선진국들이 입증하고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