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아테네.조개껍질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없어져야 할 '적(敵)'의 이름이다.

시민들은 이름이 많이 적힌 자를 추방한다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이름을 적었다.

어떤 사람들이 추방됐을까?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자 했던 행정가,새롭게 정복한 식민지 주민을 모두 노예화하는 것을 반대한 외교관,신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논증하려 한 철학자 등.

옳고 그르고를 떠나 시민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 추방됐고 그런 인재들이 줄어드는 만큼 아테네의 민주주의 그 자체도 차츰 쇄락해 갔다.

직접민주주의의 아테네에서 횡행하던 중우정치,그 그림자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포퓰리즘'이란 이름으로.

◆1933년 독일:악마에 생명을 준 포퓰리즘

1차 세계대전 패배로 황제가 물러나고 세워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당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가진 국가였다.

직접민주제를 가미하고 사상 최초로 교육권,노동권 등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은 현대 민주주의의 효시가 됐다.

하지만 이처럼 민주화한 정치제도는 역설적으로 나치(Nazis,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가 발아하는 토양이 됐다.

1928년 의회 의석 수가 12석에 불과했던 나치는 1930년 중간선거에서 102석을 가진 거대 정당으로 부상했다.

1929년에 터진 세계 대공황이 원인이었다.

실업자들과 경제적 지위가 낮아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힌 중산층,그리고 사회 혼란에 따른 좌파의 발호를 두려워한 부유층이 당면 문제 해결에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나치에 표를 던졌다.

잇따른 선거 승리로 1933년 총리에 취임한 나치의 당수 히틀러는 이듬해 총통 자리에 올랐으며 의회와 국민들은 이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인류에 지울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고 독재권력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나치와 히틀러는 이처럼 선동과 단기적인 성과에 눈이 먼 대중들의 포퓰리즘에 의해 그 생명을 얻었다.

◆1946년 아르헨티나:포퓰리즘의 이름을 찾다

포퓰리즘의 기원은 1940년대 아르헨티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2차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에 물자를 수출해 엄청난 무역흑자를 보고 있었다.

노동자와 빈민들은 축적된 부가 자신들을 위해 쓰이기 원했고,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1946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안 도밍고 페론은 '다수 대중(popular)'을 위한 정치(populism)를 시작한다.

이후 10년간 페론의 지지 기반인 노동자,빈민의 생활 수준은 높아졌다.

도시노동자 임금은 47% 인상됐고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은 줄었다.

하지만 1940년대 전반,막대한 무역흑자를 통해 축적한 부(富)도 대중의 환호성 속에 소진됐다.

아르헨티나는 그렇게 10년을,탄탄한 산업기반을 세우지도,강력한 정치제도를 육성하지도,생산성과 기술력을 향상시키지 못한 채 허비했다.

환상은 깨졌다.

유럽의 산업이 차츰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실각한 페론이 남기고 간 것은 텅빈 나라 곳간과 어느새 크게 뒤처진 국가 경쟁력,그리고 과거로 후퇴한 국민들의 삶의 질이었다.

◆1998년 베네수엘라:포퓰리즘은 석유를 타고

역사는 아르헨티나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었을까.

아니다.

포퓰리즘은 이상에 들뜬 정치가와 힘들여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누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극복하기 힘든 유혹이다.

1998년 이후 내리 세 번 대선에 승리하며 정권을 이어오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집권과 함께 토지의 무상 분배를 비롯한 49개 사회주의적 입법을 단행했고 의료·교육·식품 등 12개 분야에서 빈민 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전체 예산의 40% 이상이 전체 유권자의 60%에 달하는 빈민에 대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투입됐다.

선거 승리는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이러한 '퍼주기'를 하고 국가경제가 결단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수출의 75%를 차지하는 석유의 힘이다.

국제유가도 1999년과 비교해 4배 이상 뛰면서 지난해에는 9% 이상의 GDP 성장률을 보였다.

결국 차베스의 지상낙원은 국제유가와 베네수엘라의 산유량 위에 건설된 모래 위 누각인 것이다.

사회 기반시설과 산업 육성에 투자해야 할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중산층 이상 보수세력의 불만과 정부의 복지정책에만 의존하는 빈민층으로 오히려 깊어지고 있는 양극화 속에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 2006년 대한민국은 '디지털 포퓰리즘' ]

포퓰리즘은 정치가들로부터만 나오는 것일까? 아니다.

당신의 손가락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인터넷이 크게 발달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나타나고 있는 디지털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올해 우리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황우석 사건’을 생각해보자. 이 사건이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보도됐을 때 네티즌들은 방송사에 돌을 던지기에 바빴다.

냉정한 접근이나 이성적인 토론보다는 익명성에 숨어 다수의 폭력을 휘둘렀다.

네티즌들은 해당 프로그램에 광고를 낸 기업들에게까지 “불매운동을 펼치겠다”며 ‘협박’했고 프로그램은 문 닫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2006년의 막바지에 되돌아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 단막극의 주역은 네티즌과 이들을 여론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언론,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 폭발적으로 증식된 디지털 포퓰리즘이었다.

한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대중은 정치가를 포함한 기존 권력기구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신념을 관철시킨다.

자신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지 않을 만큼 익숙하고 쉬운 것을 쫓는 군중심리는 어느새 집단의지를 형성하고 이에 반대되는 것을 단죄한다.

이 와중에 정확한 사실관계는 묻힌다.

강력해 보이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허약성은 여기에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이미지와 수사를 구사할 줄 아는 정치집단의 선전에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익을 따지고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대중은 몇 개의 과장된 이미지만으로 판단하고 정치가는 그것을 여론이라며 결정을 한쪽으로 몰아갈 수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재개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다중의 여론이 미국 특정 농장의 불결한 모습을 비춘 동영상 한편에 의해 결론나고, 외환은행을 매입한 론스타의 위법성은 법정이 아닌 포털의 댓글 속에서 판가름난다.

하나하나가 우리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들임에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포퓰리즘에서 자유로운가.

지난 일주일 동안 당신은 어떤 댓글을 달고 어떤 글에 ‘붐업’을 했는가?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