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 때면 어김 없이 거리에 등장해 세밑을 훈훈하게 하는 게 있다.

구세군 '자선 냄비'다.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구세군 사관이 빈민들을 위해 거리에 커다란 쇠솥을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호소한 게 자선 냄비의 효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28년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나무 막대기로 만든 지지대에 가마솥을 매단 형태였다.

그 후 78년이 흐른 2006년 올해는 모금 수단도 최첨단으로 진화했다.

바로 디지털 자선 냄비다.

디지털 자선 냄비는 지금까지의 빨간색 철제 냄비 대신에 교통카드를 댈 수 있게 단말기 형태로 만들어졌다.

성금을 내는 사람들은 이제 교통카드만 갖다 대면 '삑' 소리와 함께 1000원이 빠져 나간다.

'IT강국 코리아'다운 발상이긴 하지만, 어린 자녀 손에 1000원짜리 한 장 쥐어 주고 냄비 안에 넣게 하는 정감 어린 모습이 보기에는 더 좋은 것 같다.

'냄비'는 순 우리말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일본말 '나베(なべ, 鍋)'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오랫동안 '남비'가 표준어였던 까닭도 그 어원 의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9년 새로운 표준어 사정 원칙이 나오면서 '냄비'를 표준으로 했다.

'남비'가 '냄비'로 바뀐 것을 '이'모음 역행동화(또는 전설모음화, 움라우트라고도 한다)라고 한다.

'이'모음 역행동화란 후설 모음인 '아, 어, 오, 우, 으' 발음이 뒤 음절의 전설 모음 '이'의 영향으로 같은 전설 모음인 '애, 에, 외, 위, 이'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뒤에 있는 '이'모음의 영향을 받아 앞음절의 발음까지 '이'음이 첨가돼 나오는 것이다.

입말에서 이렇게 발음되는 단어들이 꽤 많다.

가령 '지팡이→지팽이,아비→애비,싸라기→싸래기,앞잡이→앞잽이,정강이→정갱이,가랑이→가랭이,곰팡이→곰팽이,방망이→방맹이,지푸라기→지푸래기,오라비→오래비,잡히다→잽히다,막히다→맥히다,아지랑이→아지랭이,호랑이→호랭이,어미→에미,누더기→누데기,구더기→구데기,웅덩이→웅뎅이,두드러기→두드레기,부스러기→부스레기,먹이다→멕이다,벗기다→벳기다,죽이다→쥑이다,고기→괴기' 따위가 모두 그런 것들이다.

헷갈리지 않게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단어들은 모두 앞의 것이 맞는 표기이다.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는 '이'모음 역행동화 현상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나기 전의 형태를 표준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대개 발음할 때는 설령 '지팽이' 식으로 하더라도 표기는 '지팡이'로 바르게 적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아지랑이, 아기, 아비, 쓰르라미, 노랑이' 등 일부 단어는 혼동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들을 아지랭이,애기,애비,쓰르래미,노랭이로 적는 것은 틀린 표기이다.

단어를 일일이 외우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과 예외 몇 가지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 틀에 집어넣으면 된다.

우선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 '이'모음 역행동화 현상은 인정되지 않으므로 모든 단어를 원래의 형태로 적는 것에서 출발하자.그 다음 예외는 물론 알아둬야 한다.

예외로는 접미사 '-내기'와 '-쟁이'를 비롯해 일부 단어가 있다.

이들은 본래 '-나기' '-장이'였으나 관용을 인정해 '이'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난 형태를 표준으로 정했다.

예컨대 '서울내기,시골내기,신출내기,풋내기'라 적는 게 맞고 '-나기'라고 하지 않는다.

또 '냄비,동댕이치다'도 표준어로 인정됐으며 '남비,동당이치다'는 버렸다.

'-장이'와 '-쟁이'는 의미 용법에 따라 구별해 쓴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요령은 '미장이,유기장이,칠장이' 등 '기술'을 이용하는 작업을 가리킬 때는 '-장이'를 붙이고 그 외에는 '-쟁이'를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쟁이,침쟁이'는 기술자로 보지 않으므로 '-쟁이'로 적는다.

'봉급쟁이 멋쟁이 안경쟁이 코쟁이 소금쟁이 겁쟁이 난쟁이 빚쟁이 요술쟁이' 등이 '-쟁이'에 포함되는 말들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