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문제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논술은 주어진 논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는 것이 아니라,논제와 제시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해서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시문에 나타난 문제 상황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그것의 의미를 나름대로 전개할 수 있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특히 제시문은 무의미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문제 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우선되어야 하는데,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치환시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논제] 아래 제시문에서 자베르가 처한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2003학년도 건국대 변형)

몇 시간 전부터 자베르는 아주 간단한 일도 뚜렷하게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곤란한 일에 부딪혀도 그토록 단순하고 명쾌하던 그의 두뇌가 혼란에 빠진 것이다.

수정과 같은 맑은 머리에 먹구름이 낀 것이다.

자베르는 자신의 확고한 의무감이 산산조각이 난 것을 느꼈고,자기 자신한테 이 사실을 속일 수 없었다.

뜻밖에도 센 강변에서 장 발장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그의 마음은 사냥감을 찾은 늑대와 같은 기분과 주인과 다시 만난 사냥개와 같은 기분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의 입장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악인에게 목숨을 구출받고,그 빚을 갚는다.

본의 아니게도 범죄자와 동등한 입장이 되어서,"가라!"고 말해 주었던 자에게 이번에는 자기 쪽에서 그 은혜에 대한 답례로 "도망쳐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자기의 양심에 충실하려고 한 것이 사회를 배신해 버린 것이다.

이런 부조리한 일이 모두 현실이 되어 그를 내리눌렀다.

이제 방금 자기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서 그는 몸서리쳤다.

명색이 자베르라는 이름의 그가 경찰의 모든 법규와 모든 사회적 및 법률적인 조직과 법률 조항을 완전히 어기고,한 죄인을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석방해 버린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남은 해결책은 단 한 가지,급히 롬 아르메 거리로 되돌아가서 장 발장을 체포하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그의 길을 가로막고 서서 방해했다.

장 발장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의 일생의 지주(支柱)가 되어 있던 공리(公理)가 하나도 남김 없이 이 사나이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여러 가지 다른 사실을 상기해 보니,전에는 거짓말이나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지금은 진실같이만 생각되었다.

마들렌씨의 모습이 다시 장 발장의 등 뒤에 나타나,두 모습이 서로 겹쳐져 단 하나의 존경해야 할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자베르는 무언가 무서운 것이 영혼 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범죄자를 존경하는 감정이었다.

범죄자에 대한 존경,그런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되자 몸이 떨렸다.

그의 가장 큰 괴로움은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 일이었다.

왠지 모르게 뿌리째 뽑혀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의존해 왔던 법전(法典)도 이제 산산조각 난 파편이 되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껴 본 적이 없는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단 하나의 척도였던 법률적인 확신과는 전혀 다른 감정적인 계시가 마음 속에 끓어올랐다.

하나의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 훤히 그의 영혼에 보였다.

즉 그가 받은 자비를 갚아야 한다는 것,헌신·연민·관용·동정이 미치는 격렬한 힘에는 위엄조차도 무너져 버린다는 것,인간을 존중하는 것,결정적으로 사람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간의 정의(正義)와는 반대로 나아가는 신(神)의 정의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미지의 도덕이라는 무서운 해돋이를 보았다.

그 해돋이가 무서워져서 눈이 아찔했다.

억지로 독수리의 눈을 갖게 된 올빼미처럼.(중략)

자베르는 암흑의 입구를 뚫어지게 응시하면서,얼마 동안 꼼짝도 않고 있었다.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처럼,뚫어지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은 찰싹 찰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모자를 벗어 난간 언저리에 놓았다.

다음 순간 검고 키 큰 사람 그림자가 난간 위에 똑바로 서서,강물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가 이내 다시 일어난 후에 어둠을 향해 똑바로 떨어졌다.

이어 희미하게 물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물 속으로 사라진 이 희미한 그림자의 충동적인 행위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암흑뿐이었다.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에서


이 제시문에는 서로 다른 소중한 가치가 맞부딪치는 상황이 나타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종 대면할 수 있는,그러면서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 상황이다.

이 상황에 대한 제시문 주인공의 대응방식을 읽어내고 그 적절성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수험생들의 문제에 대한 통찰력과 논리적·주체적 판단 능력이 드러나게 된다.

주인공이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데 대하여 또 다른 대안을 찾는 등의 과정에서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

제시문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뽑은 것이다.

많이 알려진 작품이지만,자베르의 고민에 얽힌 의미는 새롭게 음미해 볼만하다.

자베르는 법이라는 가치와 양심이라는 인간적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그 양심이란 자기가 입은 은혜의 보답이라는 사적 요소처럼 보이지만,제시문 후반부에 나타나는 것처럼 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근원적인 도덕적 가치라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작가는 이를 '신의 정의'라고 표현하고 있다).자베르는 남모르는 죽음을 택함으로써 문제의 정면적 해결을 피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양심에 따른 결단이라는 의의를 부여할 수 있지만,문제를 헤쳐나가는 더 나은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이렇게 제시문에는 다양한 논의의 실마리들이 얽혀 있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 다음 그 중 본질적이고 중요한 요소를 찾아내서 논점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의 핵심은 제시문에 담겨 있는 문제의식이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을 제시해야 한다.

stonelee@megastud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