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대문을 열고 문 밖에 나서 있었다. 인선이는 '힁허케'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주요섭, '구름을 잡으려고')

"하긴 당장 죽어 무슨 고통이 있겠소." 말을 마치자 그 길로 '힁허케' 바깥으로 나갔다.(김정산, '삼한지' 제1권)

앞 문장은 '사랑손님과 어머니'로 잘 알려진 주요섭의 1930년 작품이다. 뒤의 것은 소설가 김정산의 2003년작 속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힁허케' 가고,'힁허케' 나갔다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번엔 그 자리에 '휭하니'를 넣어 보자.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빨리'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란 게 금방 드러난다. 그러면 '힁허케'는 방언인가? 아니면 옛날 말인가? 유감스럽게도 누구나 알고 쓰는 '휭하니'가 틀린 말이고 '힁허케'는 당당히 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이다.

사전에서는 '휭하니'를 '힁허케의 잘못,힁허케의 북한어라고 풀어놓고 있다. '힁허케'는 '중도에서 지체하지 아니하고 곧장 빠르게 가는 모양'으로 풀이된다. 그러면 주요섭이나 김정산은 표준어인 '힁허케'를 알고 골라 썼다는 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두 사람의 원작은 모두 '휭하니'를 쓰고 있다. 예문의 '힁허케'는 이 글에서 일부러 바꿔본 것이다. 그만큼 '휭하니'는 오래 전부터 흔하게 듣고 써오던 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표준어'라는 굴레는 '휭하니'를 '힁허케의 잘못'이라 해 변방으로 내쫓고 말았다.

"휭하니 다녀오너라." 이런 말을 많이 쓰지만 표준어의 세계에서는 틀린 것이고,"힁허케 다녀오너라"라고 해야 맞는다는 것은 일상의 언어감각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휭하니' 대신에 '횅하니''휑하니' 등도 쓰이지만 이들 역시 사전적으로는 틀린 말일 뿐이다. '휭하니'는 의성어 '휭'에 접미사 '-하다'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단순히 '(무엇의) 잘못'으로 처리한 현재의 표준어 사정 방식은 우리말을 스스로 경직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게 아닐까.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