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살았던 처녀, 총각은 제대로 연애 한 번 못 하고 집안에서 맺어 준 사람과 혼인하여 살았을 거라 믿고 있다면 '금오신화'를 읽어 보자.김시습이 쓴 '금오신화'에 나오는 남녀는 연애의 고수들이다.
자기와 통하는 인연이 나타나면 서로 머뭇거리고 주저함 없이 열렬히 사랑한다.
그들의 사랑을 따라가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데는 어떤 장애도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금오신화'에는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해 속 태우는 남녀가 없다.
사랑하는 두 남녀 중 누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끌어가지도 않는다.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멋진 시에 담아 상대에게 표현할 줄 아는 격조와 풍류가 그들에게는 있다.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는 '금오신화'의 이야기 다섯 편 중 '이 서생이 담 안의 아가씨를 엿보다'를 읽어 보자.
1.연애의 시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원문 읽기
이 서생은 일찍부터 책을 끼고 학교에 갈 때는 언제나 최 처녀의 집 앞을 지나 다녔는데, (중략) 어느 날 이 서생이 그 나무 밑에서 쉬다가 문득 담 안을 엿보았더니 (중략) 한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고 있다가 손을 잠시 멈추어 아래턱을 괴더니 시를 읊는다.
저기 가는 저 총각은 누구 집 도련님고
푸른 깃 넓은 띠가 버들 새로 비쳐오네.
이몸이 화신(化身)하여 대청 안에 제비되면
주렴을 사뿐 걷어 담장 위를 넘어가리.
이 서생은 여인이 읊은 시를 듣고는 자기의 재주를 급히 시험하고자 안달이 났다.
(중략)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흰 종이 한 폭에다 시 3수를 써서 기와 쪽에 매달아 담 안으로 던져 보냈다.
예쁜 인연 되려는지 궂은 인연되려는지
부질없는 이내 하루가 삼추같네.
넘겨 보낸 시 한 수에 가약 이미 맺었나니
남교 어느 날에 고운 님 만나 질까
최 처녀는 그 시를 읽고 또 읽은 후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자기도 종이 쪽지에다 짤막한 글귀를 적어 담장 밖으로 던져 주었다.
'도련님은 의심을 마십시오.황혼에 뵙기로 합시다.'
▶해설=상상의 날개를 달아 보자.한 총각이 아름다운 한 처자의 집을 지나 다니며 늘 엿본다.
아름다운 여인은 그 총각이 자신을 늘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제비로 변해서라도 담장 위를 넘어가 총각에게 가고 싶다고 시 한 수로 고백한다.
그러자 총각은 노래로 이미 서로 인연을 맺었으니 언제 한 번 만나자고 데이트를 신청한다.
처자는 바로 그 날 저녁에 만나자는 내용이 담긴 쪽지를 총각이 있는 담장 밖으로 휙 던진다.
2.여자, 사랑 앞에서 망설이지 않다
◆원문 읽기
황혼이 되자 이 서생은 최 처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문득 복숭아 꽃나무 한 가지가 담 밖으로 휘어져 넘어오면서 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서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매달린 대광주리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 서생은 줄을 타고 담을 넘어갔다.
(중략) 여인은 이 서생을 보자 방긋 웃으며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도리(桃李)나무 얽힌 가지 꽃송이 탐스럽고
원앙새 베개 위엔 달빛도 곱고나.
서생도 곧 뒤를 이어서 시를 읊었다.
이다음 어쩌다가 봄소식이 샌다면
무정한 비바람에 또한 가련하리라.
이에 최 처녀가 낯빛이 변하면서 말했다.
"도련님, 저는 애당초 도련님을 끝내 남편으로 모셔 오래도록 즐겁게 지내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조금도 걱정함이 없는데 대장부의 의기를 가지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뒷날에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해설=여자는 남자가 담을 넘어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둔다.
그넷줄을 타고 담을 넘어온 남자를 본 여자는 '원앙새 베개' 위에 고운 달빛이 비친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남자는 혹시라도 소문이 나면 여자의 처지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여자는 의기 소침한 남자를 나무란다.
자신의 전적인 책임 아래 사랑 앞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여자는 남자를 이끈다.
3.야한 이야기는 야동에만 있지 않다
◆원문 읽기
말을 마친 후 여인은 향아를 시켜 방에 들어가서 술과 과일을 가져오게 했다.
(중략) 최 처녀가 말했다.
"오늘 일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도련님은 저를 따라 오셔서 두터운 정의를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인이 말을 마치고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 서생도 뒤를 따랐다.
(중략) 한 쪽에 따로 작은 방 하나가 있는데 그 안에 있는 휘장,요,이불,베개 등은 또한 매우 정결했고, 휘장 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난향의 촛불을 켜 놓았는데 환하게 밝아서 대낮과 같았다.
이 서생은 이곳에서 여인과 더불어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머물렀다.
▶해석=시 한 수와 종이 쪽지로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본격적인 연애는 어느덧 매우 정결한 방 하나에 함께 머물며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관계로 변화한다.
여기까지가 최 처녀와 이 서생이 나누는 연애의 끝은 아니다.
궁금하다면 매우 짧은 글이니 읽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 '금오신화'이며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 사건에 비분강개하여 그 울분을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고정된 생각들은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읽자.
롤랑 바르트라는 프랑스 사람은 '텍스트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텍스트란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구체적이고 관능적인 공간이고, 비로소 그 둘이 경이롭고도 소중한 욕망의 여행을 시작하는 빈 공간이다.' 우리 각자가 '금오신화'를 읽으며 만들어 내는 각자의 공간에서 어떤 여행을 할지 궁금해진다.
김옥란 S·논술 선임연구원 ybus030@nonsul.com
◆김시습(金時習·1435~1493)
조선 전기인 15세기 학자·문학가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호는 매월당.3세 때 한시를 짓고 5세엔 '대학''중용'에 통달해 세종의 총애를 받을 만큼 천재였다.
유교와 불교 정신을 두루 통합한 사상가로 한국 사상사에서 우주 만물의 본질과 현상에 대해 체계적 설명을 시도한 최초의 철학자로도 평가된다.
21세 때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통분해 10년간 전국을 방랑했다.
31세부터 경주의 남산(일명 금오산)에 정착,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으며 한시 작품만도 모두 15권 분량에 달한다.
후대에 더 존경받아 율곡 이이가 그의 전기와 '매월당집'을 발간했고, 정조는 '청간공(淸簡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자기와 통하는 인연이 나타나면 서로 머뭇거리고 주저함 없이 열렬히 사랑한다.
그들의 사랑을 따라가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데는 어떤 장애도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금오신화'에는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해 속 태우는 남녀가 없다.
사랑하는 두 남녀 중 누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끌어가지도 않는다.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멋진 시에 담아 상대에게 표현할 줄 아는 격조와 풍류가 그들에게는 있다.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는 '금오신화'의 이야기 다섯 편 중 '이 서생이 담 안의 아가씨를 엿보다'를 읽어 보자.
1.연애의 시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원문 읽기
이 서생은 일찍부터 책을 끼고 학교에 갈 때는 언제나 최 처녀의 집 앞을 지나 다녔는데, (중략) 어느 날 이 서생이 그 나무 밑에서 쉬다가 문득 담 안을 엿보았더니 (중략) 한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고 있다가 손을 잠시 멈추어 아래턱을 괴더니 시를 읊는다.
저기 가는 저 총각은 누구 집 도련님고
푸른 깃 넓은 띠가 버들 새로 비쳐오네.
이몸이 화신(化身)하여 대청 안에 제비되면
주렴을 사뿐 걷어 담장 위를 넘어가리.
이 서생은 여인이 읊은 시를 듣고는 자기의 재주를 급히 시험하고자 안달이 났다.
(중략)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흰 종이 한 폭에다 시 3수를 써서 기와 쪽에 매달아 담 안으로 던져 보냈다.
예쁜 인연 되려는지 궂은 인연되려는지
부질없는 이내 하루가 삼추같네.
넘겨 보낸 시 한 수에 가약 이미 맺었나니
남교 어느 날에 고운 님 만나 질까
최 처녀는 그 시를 읽고 또 읽은 후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자기도 종이 쪽지에다 짤막한 글귀를 적어 담장 밖으로 던져 주었다.
'도련님은 의심을 마십시오.황혼에 뵙기로 합시다.'
▶해설=상상의 날개를 달아 보자.한 총각이 아름다운 한 처자의 집을 지나 다니며 늘 엿본다.
아름다운 여인은 그 총각이 자신을 늘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제비로 변해서라도 담장 위를 넘어가 총각에게 가고 싶다고 시 한 수로 고백한다.
그러자 총각은 노래로 이미 서로 인연을 맺었으니 언제 한 번 만나자고 데이트를 신청한다.
처자는 바로 그 날 저녁에 만나자는 내용이 담긴 쪽지를 총각이 있는 담장 밖으로 휙 던진다.
2.여자, 사랑 앞에서 망설이지 않다
◆원문 읽기
황혼이 되자 이 서생은 최 처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문득 복숭아 꽃나무 한 가지가 담 밖으로 휘어져 넘어오면서 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서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매달린 대광주리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 서생은 줄을 타고 담을 넘어갔다.
(중략) 여인은 이 서생을 보자 방긋 웃으며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도리(桃李)나무 얽힌 가지 꽃송이 탐스럽고
원앙새 베개 위엔 달빛도 곱고나.
서생도 곧 뒤를 이어서 시를 읊었다.
이다음 어쩌다가 봄소식이 샌다면
무정한 비바람에 또한 가련하리라.
이에 최 처녀가 낯빛이 변하면서 말했다.
"도련님, 저는 애당초 도련님을 끝내 남편으로 모셔 오래도록 즐겁게 지내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조금도 걱정함이 없는데 대장부의 의기를 가지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뒷날에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해설=여자는 남자가 담을 넘어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둔다.
그넷줄을 타고 담을 넘어온 남자를 본 여자는 '원앙새 베개' 위에 고운 달빛이 비친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남자는 혹시라도 소문이 나면 여자의 처지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여자는 의기 소침한 남자를 나무란다.
자신의 전적인 책임 아래 사랑 앞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여자는 남자를 이끈다.
3.야한 이야기는 야동에만 있지 않다
◆원문 읽기
말을 마친 후 여인은 향아를 시켜 방에 들어가서 술과 과일을 가져오게 했다.
(중략) 최 처녀가 말했다.
"오늘 일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도련님은 저를 따라 오셔서 두터운 정의를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인이 말을 마치고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 서생도 뒤를 따랐다.
(중략) 한 쪽에 따로 작은 방 하나가 있는데 그 안에 있는 휘장,요,이불,베개 등은 또한 매우 정결했고, 휘장 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난향의 촛불을 켜 놓았는데 환하게 밝아서 대낮과 같았다.
이 서생은 이곳에서 여인과 더불어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머물렀다.
▶해석=시 한 수와 종이 쪽지로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본격적인 연애는 어느덧 매우 정결한 방 하나에 함께 머물며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관계로 변화한다.
여기까지가 최 처녀와 이 서생이 나누는 연애의 끝은 아니다.
궁금하다면 매우 짧은 글이니 읽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 '금오신화'이며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 사건에 비분강개하여 그 울분을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고정된 생각들은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읽자.
롤랑 바르트라는 프랑스 사람은 '텍스트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텍스트란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구체적이고 관능적인 공간이고, 비로소 그 둘이 경이롭고도 소중한 욕망의 여행을 시작하는 빈 공간이다.' 우리 각자가 '금오신화'를 읽으며 만들어 내는 각자의 공간에서 어떤 여행을 할지 궁금해진다.
김옥란 S·논술 선임연구원 ybus030@nonsul.com
◆김시습(金時習·1435~1493)
조선 전기인 15세기 학자·문학가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호는 매월당.3세 때 한시를 짓고 5세엔 '대학''중용'에 통달해 세종의 총애를 받을 만큼 천재였다.
유교와 불교 정신을 두루 통합한 사상가로 한국 사상사에서 우주 만물의 본질과 현상에 대해 체계적 설명을 시도한 최초의 철학자로도 평가된다.
21세 때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통분해 10년간 전국을 방랑했다.
31세부터 경주의 남산(일명 금오산)에 정착,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으며 한시 작품만도 모두 15권 분량에 달한다.
후대에 더 존경받아 율곡 이이가 그의 전기와 '매월당집'을 발간했고, 정조는 '청간공(淸簡公)'이란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