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1: "노 대통령이 '토론의 달인'이라는 얘기가 있다.

토론을 통해 검사들을 제압하려 한다면 이 토론은 무의미하다."

대통령: "잔재주로 여러분을 제압하려는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낀다."

검사2: "대통령이 되기 전에 부산 ××지청장에게 뇌물사건을 잘 봐달라고 했다는데,검찰의 중립을 훼손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느냐."

대통령: "이쯤 가면 막가자는 거죠?"

참여정부 출범 초에 마련된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 대화의 자리에서 초유의 진풍경이 벌어졌다.

검사들의 걸러지지 않은 질문에 대통령이 격앙된 목소리로 답변하는 장면들이 TV로 생중계됐다.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우리 네티즌들이 이를 보고 곧바로 신조어를 유포시켰다.

'검사스럽다.'

2003년은 '~스럽다'가 위력을 보인 해다.

인터넷상에서 다양한 '말의 실험'을 하며 세태의 흐름을 짚어내던 네티즌들은 이 해 접미사 '~스럽다'에 주목했다.

'검사스럽다'란 말은 '논리도 없이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며 윗사람에게 대드는 버릇없는 행태'를 빗댄 것이다.

인터넷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 말의 용법이 나열됐다.

첫째 '아버지에게 대드는 싸가지 없는 자식을 빗댄 말', 둘째 '고생만 한다고 푸념하면서 정작 뒤로는 룸살롱 찾는 사람을 일컫는 말', 셋째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짜증날 때까지 말하는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쓰임새가 대표성을 지닌다.

이 말은 순식간에 세력을 얻어 그 해 내내 언중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단어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말의 쓰임새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풍자적인 의미를 담음으로써 단번에 인기는 끌었지만 한시적인 용어로 그친다면 그것은 유행어일 뿐이다.

'검사스럽다'를 뒤이어 '부시스럽다' '놈현스럽다'란 말이 탄생했다.

'부시스럽다'는 당시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고압적으로 자기 주장만 고집한다'고 평가한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놈현스럽다'는 우리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싸고 나타났다.

'노무현스럽다'를 인터넷 특유의 줄임말로 만든 이 말은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주는 데가 있다'란 뜻으로 유포됐다.

'치사하다,뒤통수친다'란 의미와 비슷하면서도 신조어답게 좀더 강렬한 어감을 담고 있는 말이다.

어쨌든 접미사 '~스럽다'가 파생시킨 이런 말들은 한때를 풍미하긴 했지만 유행어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언중 사이에 지속적으로,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까닭에 단어로 격상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된 데는 '~스럽다'의 결합이 자연스럽지 않은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스럽다'는 '평화스럽다,복스럽다,보람스럽다,사랑스럽다' 따위에서 볼 수 있듯이 추상적인 말과 잘 어울린다.

이에 비해 구체적인 대상에는 '~답다'가 자연스럽다.

'검사스러운'보다는 '검사다운'이,'부시스러운'보단 '부시다운'이 자연스러운 게 본래 우리 어법이다.

'~스럽다'나 '~답다'는 사전적인 풀이로는 구별이 잘 가지 않지만 쓰임새는 확연히 다르다.

'형답다''아버지다운'이란 말은 써도 '형스럽다' '아버지스러운'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

물론 '검사스럽다'를 비롯한 신조어는 단순히 문법적 잣대로만 따질 대상은 아니다.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 '검사스럽다'란 말은 '검사답다'라는 기존의 표현이 담지 못하는 미세한 의미상 차이를 나타내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의 어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함으로써 그 부작용으로 '~스럽다'와 '~답다'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뒤섞여 쓰이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