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시장은 이른바 '펀드 자본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펀드 전성시대다.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어 권력의 4부,5부라는 언론,시민단체 못지 않게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 운용자금이 한 해 나라살림(예산)보다 많은 225조원에 달해 이젠 펀드가 권력의 6부로 떠올랐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펀드(특히 주식형 펀드)는 고객의 돈을 모아 각종 주식에 투자해 얻어지는 수익을 고객에 나눠주는 간접투자상품이다.

정부도 개인이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를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펀드들이 최근에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기치로 내거는가 하면,기업의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삼기까지 한다.

펀드가 경제의 핵심 주체인 기업들보다 우위에 서서 경영에 시시콜콜 간섭해 기업 활동을 좌지우지할 정도다.

언제 펀드들의 공격 대상이 될지 모르는 기업의 오너나 경영진은 펀드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펀드들이 과연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 애쓰는 존재인가,아니면 단순히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인가에 대한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펀드 전성시대

최근 가장 관심을 끈 펀드가 '장하성 펀드'다.

과거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주도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이 펀드는 미국 등지에서 익명의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향후 주가 상승 가능성이 있는 기업 주식에 투자한 뒤 이를 팔아 차익을 실현한다는 점에서는 일반 펀드와 다를 바 없다.

다만 펀드 스스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기업 지배구조 관련 펀드로 분류된다.

장하성 펀드가 먼저 타깃으로 삼은 기업이 대한화섬이다.

장하성 펀드는 대한화섬 주식을 사들인 뒤 주주명부 열람을 요구하는가 하면,언론을 통해 대한화섬 대주주인 태광측의 경영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장하성 펀드가 주식 매입에 나선 이후 6만원대였던 대한화섬 주가는 한때 2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증권사들도 가세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옛 LG증권+우리증권)이 만든 펀드 '마르스1호'는 간장으로 유명한 샘표식품 지분 24%를 사들였다.

경영을 잘하면 주가를 더 올릴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현 경영진에게 조언을 하겠다며 이사회에 자사가 추천하는 이사를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펀드가 경영에 관여한다는 이야기다.

이같이 대주주와 협의 없이 해당 기업의 주식을 대거 사들인 뒤 이사회 참여 등을 요구하는 펀드 외에도,기업 인수·합병(M&A)에 주체로 나서는 펀드도 있다.

매각대금이 6조원대에 이르는 대우건설의 인수자는 금호산업이지만 미래에셋 계열의 맵스자산운용이 8000억~1조원의 대규모 펀드를 조성해 금호산업과 함께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외국계 펀드로는 2003년 SK에 대한 적대적 M&A에 나섰던 소버린과 올해 상반기 중 KT&G(옛 담배인삼공사) 지분을 확보한 후 이사 선임,자산 매각 등을 요구했던 칼아이칸 등이 유명하다.

또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매각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론스타도 우리 귀에 익숙한 펀드다.

◆끊임없이 확대되는 펀드들

펀드는 국내 펀드이건 외국계 펀드이건 돈을 맡긴 투자자들을 위해 최대한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자금 모집 방식과 투자 패턴에 따라 일반적으로 뮤추얼펀드와 사모펀드,헤지펀드 등으로 나뉜다.

뮤추얼펀드는 일종의 간접투자 상품이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회사여서,돈을 맡긴 다수의 투자자들은 뮤추얼펀드의 주주가 된다.

뮤추얼펀드의 운용 수익은 주주(투자자)에게 이익 배당 형태로 분배된다.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으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용을 하는 게 특징이다.

또 금융감독당국에 보고 의무도 갖고 있다.

템플턴,피델리티 등이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는 뮤추얼펀드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는 고수익을 노리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지만 소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점에서 뮤추얼펀드와 차이가 있다.

사모투자전문회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외 PEF는 주로 이익에 대해 세금을 면제받는 조세피난처(tax haven)에 설립한 뒤 이를 통해 다른 국가에 투자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에서는 20여개의 사모펀드가 설립됐고 운용자산은 5조원대에 이른다.

조지 소로스로 인해 일반인에게도 유명해진 헤지펀드도 사모펀드처럼 소수의 특정인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투자한다.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거나 경영에 개입해 주가를 올린 뒤 주식을 되팔아 이익을 얻는 것과 달리,헤지펀드는 통상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고 단기간에 주식을 사고팔아 차익을 남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이 같은 구분이 모호해졌다.

또한 헤지펀드는 투자 대상이 주식 채권은 물론 금 원유 선물 통화 등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전 세계 헤지펀드 규모는 1조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며 갈수록 투자기간이 단기화하는 추세다.

이 밖에 최근 국내 주식 투자를 결정한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캘퍼스)과 같이 연기금이 중심이 된 펀드를 펜션펀드라 부른다.

또 펀드의 목적에 따라 기업지배구조펀드,사회책임펀드(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등으로 별도 구분하기도 한다.

김용준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unyk@hankyung.com


< 펀드부터 지배구조 투명해져야 >

'펀드 권력'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게 장하성 펀드다.

당초 장하성 펀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장기 투자하는 일종의 사회책임펀드로 분류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장하성 펀드의 투자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데다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일종의 헤지펀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자금 모집과 투자 주체가 미국 라자드라는 점도 헤지펀드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

라자드는 과거 SK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했던 소버린과 KT&G를 노렸던 칼아이칸을 자문한 회사다.

금융감독원도 일단 장하성 펀드를 헤지펀드적 성격이 있다고 보고 있다.

헤지펀드는 언제든 기대한 수익을 올리면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장하성 펀드가 만약 헤지펀드의 속성을 갖는다면 장기 투자를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과 충돌하게 된다.

이에 대해 장하성 펀드 관계자들은 "대한화섬 투자는 10년이 갈 수도 있다"며 헤지펀드로 보는 시각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장하성 펀드의 행보는 향후 증시에서 두고두고 주목을 끌 전망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목적이라 해도 결국에는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펀드인 만큼 과연 수년씩 주식을 보유하는 장기 투자가 가능할지도 관심거리다.

하지만 치고 빠지는 식의 행보를 보인다면 헤지펀드에 대한 국내 산업계와 국민들의 불신만 더 키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펀드의 등록·공시제도를 갖춘 미국처럼 기업의 지배구조 못지 않게 펀드의 지배구조도 투명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