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여러 유형 중에는 한자어에서 유래해 고유어처럼 변한 말들이 꽤 많다.

물론 반대로 고유어를 한자로 나타낸 말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염치가 없다' 할 때의 한자어 염치(廉恥)도 여러 변형된 말을 만들어 냈다.

예부터 우리네 조상들은 이 염치를 중요시했다.

'염치'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염치를 조금 가볍고 편하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어형을 살짝 바꿔 '얌치'를 만들었다.

'얌치'에서 한 걸음 나아가 좀 더 속되게 이르는 말이 '얌치머리'이다.

이 말은 또 '얌통머리'로 쓰이기도 한다.

결국 어원적으로 '염치>얌치>얌치머리>얌통머리' 순으로 생겨나면서 그 쓰임새도 점점 비하적 의미를 많이 담게 된다.

여기서 '-머리'는 '채신머리'나 '소갈머리,인정머리,주변머리'처럼 쓰이는 접미사로서 어떤 명사 밑에 붙어 낮잡아 보는 뜻을 더하는 말이다.

따라서 '-머리'가 붙은 얌치머리나 얌통머리는 비록 뜻은 '염치'와 비슷한 것이지만 긍정적인 상황에는 쓰이지 않는다.

가령 '사람은 염치를 알아야 한다' 같은 문맥에서 얌치머리나 얌통머리를 대체해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신 부정어 '-없다'와 어울려 반대의 의미를 더 강하게 나타내는 데 쓰인다.

즉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에겐 '-없다'를 붙여 '얌치머리없다,얌통머리없다'고 한다.

물론 이때는 '염치없다,얌치없다'도 가능하지만 '얌통머리'나 '얌치머리'를 쓰면 그 의미가 훨씬 강조된다.

'염치 좋다'란 말은 관용구로 굳은 표현으로,'염치가 없다'란 뜻이다.

염치에서 얌치가 왔듯이 여기서 한 번 더 변형된 게 '얌체'다.

얌체란 바로 '얌치가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한자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고유어처럼 굳어 한글로만 적는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사람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이 '염치불구하고'란 표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에)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함'을 뜻하는 '~을 불구(不拘)하다'란 말이 연상돼 잘못 입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불구'는 '몸살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왔다'처럼 쓰인다.

그 앞에는 항상 '~에도/~음에도/~ㄴ데도'와 같은 말이 온다.

따라서 '염치불구'란 말은 없고 본래는 '불고(不顧)염치'다.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함'이란 뜻이다.

'불고염치'가 하나의 말이고 동사인 '불고염치하다'도 한 단어다.

이를 굳이 어순을 바꿔 쓰더라도 '염치(를) 불고하고'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문어적,의례적 표현이고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어법은 '염치없지만' '염치없는 줄 압니다만'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