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4일 속초 국제여객항에서 러시아로 출발할 때만 해도 전형적인 9월 날씨로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뱃길로 19시간을 달려 자루비노항에 도착한 후 다시 8시간 이상 비포장 도로를 덜커덕거리며 간 곳은 파르티잔스크시. 속초와 달리 현지에는 벌써 삭막한 초겨울 바람이 불고 있었다.

파르티잔스크는 구한말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들이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다시 돌아와 정착하고 있는 곳. 정착 고려인들은 5000여명으로 이 지역이 독립운동 근거지여서 항일 독립 투사들의 후예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카카야 브리야트나야 보스트레차"(만나서 반갑습니다),파르티잔스크 시장의 환영사와 함께 자원봉사단들은 러시아 공립학교인 시콜라 29번 학교에서 여장을 풀었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학교 이름 뒤에 번호를 붙인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멀미와 여독으로 모두 지쳐 있었으나 "프리비옛"(안녕) "프리비옛" 하며 반갑게 맞는 고려인들을 보니 한시도 봉사활동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번에 함께 간 봉사단은 전국의 고교생 대학생 공무원 등 모두 174명. 글로벌 리더십 함양을 위한 인도주의 정신과 공동체적 삶의 의미와 책임의식을 배우고 사회참여 현장을 해외로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봉사활동이다.

봉사단은 현지에서 6일7일간 머물며 회관을 수리하고 문화행사를 여는 등 각종 활동을 했다. 한국전통체험관을 만들 때는 손도 다치고 못질 한 번 해보지 않던 손에 굳은 살이 배겨 힘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역사 체험부스를 만들고 러시아 청소년들과 고려인 후세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대화하는 시간에는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던 그들의 눈빛을 보면서 동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현지의 고려인 문화회관은 경제 사정의 여러움을 보여주듯 낡고 부서져 사용하기에 부적절했다. 우리는 민족의 정서가 물씬 넘쳐나는 조선시대 민화를 기본 구상으로 해 벽화를 그리고 개보수 작업을 했다. 작업을 맡았던 경기지역 단장 서재범 국장은 "마을 주민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우리 청소년들이 대견스럽고 뿌듯하다"며 칭찬해 주었다.

9월12일,고려인 문화회관 개·보수를 완료한 날,기념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을 찾은 92세 고려인 할머니께서는 손자,손녀 같은 우리의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먼 이국땅에서 반세기 이상 떠돌며 잊어버렸던 고향이 다시 생각나시는지 우리의 눈을 쳐다보며 오랫동안 손을 놓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눈물 속에서 동족애를 보는 듯 분위기는 숙연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해외로 도약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이곳 고려인에게는 과거의 세월이 멈춘 듯 공허했다.

지새봄 생글기자(군포 수리고 2년) saebomj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