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룡,백채,고초,해정,차양….'

알 듯 말 듯한 이 말들의 정체는 뭘까. '지렁이,배추,고추,해장,챙'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 순우리말 같은 이들의 원말은 각각 '地龍,白寀,苦草,解酉呈,遮陽'이다.

이처럼 우리말 가운데는 한자어에서 변한 말이 꽤 많다. 지렁이는 '지룡'에 사람이나 동물,사물을 나타내는 말을 만드는 접미사 '~이'가 붙으면서 발음까지 변해 생긴 말이다. 배추나 고추도 원말에서 음운 변화를 일으키며 우리말화한 것이다.

'해장술.해장국'과 함께 흔히 '해장한다'란 말도 많이 쓴다. '해장'은 '해정(解酉呈)'에서 온 말이다. 이때의 '정(酉呈)'은 '숙취하다',즉 '술에 취해 있음'을 뜻한다. 결국 변한말 '해장'이란 것은 '술에 취한 것을 풀다'란 뜻이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서 '해정'이 음운변화를 거쳐 지금의 '해장'이란 말로 굳은 것이다.

이를 술을 많이 먹은 다음 날 해장한다고 하면서 '장을 푼다(解腸)'란 뜻의 해장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차양(遮陽)-챙'의 관계도 본말인 한자어 '차양'이 '챙'으로 줄어들어 우리말화한 경우다. 차양은 '모자 끝에 대서 햇빛을 가리는 부분'이기도 하고 '처마 끝에 덧붙여 햇빛이나 비바람을 막는 좁은 지붕'을 가리키기도 한다.

"네 말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할 때의 '당최' 역시 한자어 '당초(當初)에'가 줄어서 된 말이다. '도대체''도무지'와 비슷한 뜻인 이 말은 주로 부정적 서술어와 어울려 그 서술어의 부정적 의미를 강조할 때 쓰인다.

'언행이 경솔해 남을 대하는 위신이 없다'란 뜻으로 쓰는 '채신없다'란 말도 마찬가지다. '채신머리없다'는 이 '채신없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 '채신사납다''채신머리사납다'라는 말도 함께 쓴다. '채신'은 '처신(處身)'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처신'이란 '세상살이나 대인관계에서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뜻한다. '처신을 잘해야 남의 원망을 듣지 않는다'처럼 쓰인다.

'처신'은 한자어이지만 여기서 변한 말 '채신'은 고유어처럼 굳었으므로 한글로만 쓴다.

또 이는 단독으론 잘 쓰이지 않고 주로 '~없다,~사납다'란 말과 어울려 부정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를 자칫 '체신없다,체신머리없다,체신사납다'라고 쓰기 쉬운데 이는 틀린 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주착(主着)이 변한 '주책',초생(初生)달이 변한 '초승달',음(陰)달이 변한 '응달'도 무두 같은 경우로 뒤의 바뀐 말이 어법이고 앞의 것은 비표준이다. 특히 '주책'의 경우 '주책없다'와 '주책이다'란 표현이 두루 같이 쓰이곤 하지만 규범으로 인정된 것은 '주책없다' 하나 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