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의 점심시간.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왁자지껄한 수다소리와 함께 배식을 받은 학생은 친구들과 앉아 점심식사를 시작한다.

"너 이렇게 많이 먹으려고? 그러다간 5교시 수업 때 졸겠다."

"아니야.저녁을 안 먹으려면 점심 때 많이 먹어둬야 해."

'저녁식사 하지 않기', 대신 아침과 점심식사는 먹고 싶은 만큼 많이 먹기,'매점 안 가기' 운동 등이 요즘 여고생들의 '구호'이자 실제 생활상이다.

많은 여고생이 바로 다이어트 중이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굵은 글씨로 '올해 안에 5kg만 빼자!'라고 쓴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친구들끼리 '누가 먼저 더 많이 빼나' 등의 내기도 성행한다.

김선민양(18·상명사대부여고2)은 "다이어트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녁 6시 이후에는 먹지 않으려고 한다"며 "학생 때는 공부하면서 군것질하는 게 당연한데 살이 찔까봐 걱정하는 친구들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여고생 1044명 중 51.9%가 다이어트를 해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보건복지부에 조사에 의하면 11~18세 여자 청소년 중 71.6%가 마른 체형을 선호하며,이 가운데 날씬해져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학업과 음식물 섭취에 지장을 받고 있는 경우도 29%나 되었다.

여고생들이 이렇게 저녁식사를 거르면서까지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성되어온 외모 지상주의적 사회분위기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뚱뚱한' 여성들은 살을 빼야 한다는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TV에선 여자 연예인들의 깡마른 몸매를 부각시키는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또 유명 연예인들이 앞다퉈 다이어트 비디오를 출시하거나 비만관리 전문업체를 통해 단기간에 몇 ㎏을 뺏다는 식의 광고 홍수도 여성들의 다이어트 열풍을 부채질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여성의 능력보다 외모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기업체 입사 면접풍토 탓에 많은 여성이 성형외과를 찾거나 다이어트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과 류인균 교수팀이 전국 여대생 15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2.5%가 성형수술을 받았고,82.1%는 지방 흡입 등의 성형수술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주위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여고생들도 이러한 사회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여고생들이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이유는 대개 성인 여성들과 비슷하다.

'옷맵시를 내기 위해''사람들 앞에 당당해 지기 위해서''이성 친구에게 날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등의 이유다.

공부하느라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고3 때 살이 찔 테니 미리 빼둬야 한다는 이유를 드는 여고생들도 있다.

이와 함께 여고생들이 친구 간에 다이어트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교환하는 경우가 많아 부작용이 우려된다.

다이어트를 위해 '무조건 안 먹기'가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다혜양(18·이화여고 2)은 "또래 친구들이 다이어트하는 것을 보면 너무 단기간에 무조건 체중만 줄여 보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보통 다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자기 몸이 더 살쪄 보이면 열등감이 생겨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사를 거르는 식의 다이어트 방법은 건강을 해칠 뿐더러 공부에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 명동 마이플한의원의 이창영 원장은 "청소년기에는 운동량이 적더라도 식사량만 과도하지 않게 일정량 이하로 유지한다면 살이 찌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단,식사를 균형 있게 하고 하루 세 끼를 거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혜린 생글기자(성신여고 2년) hyerin4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