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가에서는 '장하성펀드'가 화제다.

대한화섬이라는 중소형 상장사를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공격,증시는 물론 재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타깃이 된 대한화섬 등 태광그룹 관련 상장 계열사들의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했고, 증시에 상장된 다른 지배구조 관련주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그동안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했던 소액주주 운동이 이번 일을 계기로 급속도로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장하성펀드'의 정확한 이름은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Korea Corporate Governance Fund)'다. 올 들어 증권가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사회책임투자(SRI)펀드'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SRI펀드란 무엇이고,증시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SRI의 기원은 1920년대

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책임에 봉사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새로운 개념의 투자방법이다. 다시 말해 투자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기업의 재무제표나 성장 가능성 등의 수익성은 물론이고 해당기업의 경영활동이 친환경적인가, 사회적 윤리에 부합하는가 등을 꼼꼼히 따지는 펀드라 할 수 있다.

SRI의 기원은 멀게는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구에서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술과 담배,도박 등 이른바 '죄악 주식(sin stock)'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캠페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 뉴욕의 ICCR라는 한 단체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투자금을 뺐고,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첫 주주 지원 결의안을 끌어내면서 기업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책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투자로 한 단계 도약했다.

SRI는 역할에 따라 △사회적 감시 및 감독(screening)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공동체 투자(community investing) 등으로 구분된다. 또 투자 분야에 따라 △윤리펀드 △환경펀드 △종교펀드 등 다양하며,투자 방식은 일반펀드와 유사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SRI펀드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간접투자 상품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2005년 말 기준으로 전체 펀드투자액의 8분의 1 수준인 2조3000억달러(약 2208조원) 정도가 SRI펀드로 운용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2002년 기준으로 영국의 SRI펀드 시장규모는 3260억달러에 달하며,캐나다는 314억달러에 이른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1999년 첫 SRI펀드가 시장에 나왔으며,현재는 18억달러 규모로 성장해 있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운용 중인 SRI펀드는 6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300여개가 유럽에서 운용되고 있고,미국에서는 201개의 SRI펀드가 활동 중이다.

○국내에서도 SRI펀드 출시 잇따라

선진국에 비하면 국내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SRI펀드 붐이 일어 시장규모도 급속히 커질 전망이다. SRI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신상품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대우증권은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우량기업을 포트폴리오로 편입하는 'KSRSI(가칭)'를 10월 중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도 1500억원 규모로 3개의 SRI 펀드를 연내에 출범할 계획이다. SH자산운용이 지난해 11월 출시한 SRI펀드인 'Tops 아름다운종류형 주식투자신탁' 펀드는 설정액이 1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는가 하면,지난 8월 농협CA자산운용이 내놓은 '뉴아너스 SRI펀드'에는 한 달도 안 돼 100억원이 몰렸다.

SRI펀드는 수익률에서도 기존 펀드에 비해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일반 주식형 펀드의 경우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이 아직 마이너스인 데 반해 SRI펀드들은 플러스 수익을 내고 있다.

실제 해외에서도 유럽 사회책임펀드 수익률을 나타내는 FTSE SRI지수는 5년 이상 장기투자에선 일반 펀드 수익을 훨씬 앞서고 있다. 1999년 출범한 미국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도 다우존스 지수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SRI펀드를 '대박 펀드'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 특히 '장하성펀드'처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내건 펀드들은 초기에는 경영권 분쟁을 재료로 투자 기업의 주가가 단기간 급등할 수 있지만 재료가 소멸되면 반대로 주가는 급락해 손실을 볼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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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펀드.환경펀드.종교펀드 등 다양

◆ 해외 SRI펀드 사례들

SRI펀드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에서는 펀드 종류도 다양하다. 인권을 보장하지 않은 특정 국가를 지목해 그 나라에 진출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거나,환경보전에 적극적인 기업에만 투자하는 SRI펀드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미국 노던트러스트의 '수단 펀드'=미국 노던트러스트 글로벌 인베스트먼트가 올 1월 선보인 SRI펀드로,내전 상태인 수단의 인권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압력으로 수단에 대한 투자를 철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방법은 수단에 투자한 기업을 투자대상 기업 목록에서 제외하는 것.투자기피 기업으론 3M,제록스,이스트만 코닥 등이 포함돼 있다. 펀드 규모가 70억달러(6조7000억원)에 달해 해당 기업들로선 무시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유럽의 ISIS와 주피터=유럽에서 가장 대표적인 SRI 투자를 운용하고 있는 대형 투자사들이다. ISIS의 '미래를 대비하는 친구들 펀드'는 새로운 대체에너지 등 신기술을 개발하는 업체에 투자하고 있으며,자산규모는 유럽에서 최대인 9억1900만유로(약 1조1030억원)에 달한다.

주피터의 경우에는 '주피터 글로벌 SRI 펀드''주피터 글로벌 녹색투자펀드' 등을 통해 대체에너지 개발과 사내 복지정책,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등의 요소에 대해서도 검토한 뒤 투자판단을 내리고 있다.

○캐나다의 '윤리펀드(Ethical Fund)'=인권 등 윤리적인 문제에 중점을 두는 펀드로 1986년 캐나다에서 처음 설립한 SRI펀드. 지방에서 출발했지만 첫해에 목표치인 300만달러의 3배가 넘는 1000만달러의 투자를 끌어들이면서 곧 전국적인 SRI 회사로 발돋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