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vs 룰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나란히 당선한 두 사람은 여러 모로 자주 비교돼 왔다.
우선 화려하지 못한 출신·학력의 자수성가형 정치인인 데다 잦은 낙선 등 험난한 정치역정,'평등·분배'를 지향하는 중도 좌파적 성향,미국과 불편한 관계 등 공통점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약 4년을 지나온 현 시점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행보는 많은 부분에서 엇갈린다.
룰라 대통령은 해외 투자자들의 염려와 달리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으로 추락하던 브라질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념 논란,과거사 청산 등 정치·사회적 갈등에 휩싸여 경제가 갈수록 활력을 잃어간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작년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브라질이 세 계단 오른 세계 11위로 한국(11위→12위)을 앞질렀다.
같은 출발선에 섰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을 비교해 보자.
◆닮은꼴 두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라는 긴 이름을 가진 룰라 대통령(60)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대학은커녕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자로 일하다 뒤늦게 3년간 직업학교를 다녔을 뿐이다.
공장에서 일할 때 산재로 손가락을 하나 잃기도 했다.
1980년 브라질 중앙노조(CUT) 창설을 주도하며 노동운동가로 입지를 다졌고 1989년부터 대선에서 세 차례 낙선,4수 끝에 당선했다.
룰라보다 한 살 아래인 노무현 대통령(59)도 상고를 나와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잠시 판사 생활을 하다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한때 청문회 스타로 불리기도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부산시장 선거 등에서 연거푸 낙선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열세를 뒤엎는 뚝심으로 꿈을 이뤘다.
그래서인지 2004년 노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 때 룰라 대통령이 즐기는 시가를 함께 피우며 서로 각별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브라질,'룰라 쇼크'에서 '룰라 효과'로
룰라의 당선은 당시 미국 등 선진국들에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공평한 분배'를 내건 룰라의 정치 노선에 비춰볼 때 전임 우파 정권과 달리 과도한 분배 정책과 외채 상환 거부 등으로 이어져 대내외에 여파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룰라 쇼크'로 불렀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룰라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당선 직후 곧바로 국제금융의 중심인 뉴욕 월스트리트로 달려가 반시장·반기업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약속,해외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전임 정권이 국제통화기금(IMF)에 약속한 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고 인플레를 잡았다.
그 결과 지난 대선 기간 중 브라질을 떠났던 해외 자본이 되돌아오기 시작했고 경제성장률은 2003년 0.5%에서 2004년에는 10년 만에 최고인 4.9%로 치솟았다.
이에 대해 서구 언론들은 '룰라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경기가 둔화해 성장률이 떨어지고(2005년 2.3%,올해 3%대 예상),재정적자를 줄이느라 교육·의료 등 서민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한국,정치에 짓눌린 경제
노 대통령의 당선 역시 한국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것이었다.
스스로 권위를 없애고 돈 안드는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을 실현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경제 부문에서 그는 '성장과 분배 동시 추구'를 내걸고 고루 잘사는 사회,균형 발전 등의 구호를 제시하면서 임기 중 '7% 성장' 공약을 내놨다.
그러나 정치의 초점이 이념 논쟁과 과거사 청산에 맞춰지면서 '가진 자'에 대한 혐오,반기업 정서,반미 등의 분위기가 형성돼 나라가 사분오열하는 양상이다.
이는 핵심 경제주체인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제성장률은 2003년 3.1%에서 2004년 4.7%로 반등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4.0%로 주저앉았다.
성장률만 놓고 보면 브라질보다 낮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기에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 우리 경제의 실력 발휘가 제대로 안 되고,경제의 체력이 자꾸 떨어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민들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
룰라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중도 좌파 성향을 띠면서도 경제에 관한 한 철저한 합리주의자,실리주의자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스스로 투자유치단장이 되어 브라질에 투자할 만한 나라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다.
반미를 포기하더라도 경제를 얻을 수 있다면 그 길로 가겠다는 태도다.
그는 성장의 뒷받침 없이는 국민들에게 나눠줄 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 좌파'로도 불린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올해 대선에서 재선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서민을 위하는 정권을 표방하고 분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좌파적이라면,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자주,평등,복지 등을 강조하는 정책에 비춰 실리보다는 오히려 명분을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으로 분배·복지 확대,국유화 등 좌파적 경제 정책으로는 더 이상 경제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독일 등 유럽의 좌파 사민당 정권들조차 해외 투자 유치,민영화,복지 축소 등 우파적 경제정책들을 앞다퉈 실행하고 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이름만 빼놓고 다 바꿀 수 있다는 게 요즘 세계 좌파 정권들의 행보다.
따라서 서민을 위하는 정책도 단순히 서민들에게 복지 혜택을 늘려 주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투자를 북돋울 성장 정책을 폈을 때가 분배를 강조했을 때보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훨씬 좋았다.
그런 점에서 가장 절실한 정책 방향은 비현실적인 명분론이 아니라 철저한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이념을 갖든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나란히 당선한 두 사람은 여러 모로 자주 비교돼 왔다.
우선 화려하지 못한 출신·학력의 자수성가형 정치인인 데다 잦은 낙선 등 험난한 정치역정,'평등·분배'를 지향하는 중도 좌파적 성향,미국과 불편한 관계 등 공통점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약 4년을 지나온 현 시점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행보는 많은 부분에서 엇갈린다.
룰라 대통령은 해외 투자자들의 염려와 달리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으로 추락하던 브라질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념 논란,과거사 청산 등 정치·사회적 갈등에 휩싸여 경제가 갈수록 활력을 잃어간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작년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브라질이 세 계단 오른 세계 11위로 한국(11위→12위)을 앞질렀다.
같은 출발선에 섰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을 비교해 보자.
◆닮은꼴 두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라는 긴 이름을 가진 룰라 대통령(60)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대학은커녕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자로 일하다 뒤늦게 3년간 직업학교를 다녔을 뿐이다.
공장에서 일할 때 산재로 손가락을 하나 잃기도 했다.
1980년 브라질 중앙노조(CUT) 창설을 주도하며 노동운동가로 입지를 다졌고 1989년부터 대선에서 세 차례 낙선,4수 끝에 당선했다.
룰라보다 한 살 아래인 노무현 대통령(59)도 상고를 나와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잠시 판사 생활을 하다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한때 청문회 스타로 불리기도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부산시장 선거 등에서 연거푸 낙선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열세를 뒤엎는 뚝심으로 꿈을 이뤘다.
그래서인지 2004년 노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 때 룰라 대통령이 즐기는 시가를 함께 피우며 서로 각별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브라질,'룰라 쇼크'에서 '룰라 효과'로
룰라의 당선은 당시 미국 등 선진국들에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공평한 분배'를 내건 룰라의 정치 노선에 비춰볼 때 전임 우파 정권과 달리 과도한 분배 정책과 외채 상환 거부 등으로 이어져 대내외에 여파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룰라 쇼크'로 불렀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룰라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당선 직후 곧바로 국제금융의 중심인 뉴욕 월스트리트로 달려가 반시장·반기업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약속,해외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전임 정권이 국제통화기금(IMF)에 약속한 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고 인플레를 잡았다.
그 결과 지난 대선 기간 중 브라질을 떠났던 해외 자본이 되돌아오기 시작했고 경제성장률은 2003년 0.5%에서 2004년에는 10년 만에 최고인 4.9%로 치솟았다.
이에 대해 서구 언론들은 '룰라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경기가 둔화해 성장률이 떨어지고(2005년 2.3%,올해 3%대 예상),재정적자를 줄이느라 교육·의료 등 서민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한국,정치에 짓눌린 경제
노 대통령의 당선 역시 한국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것이었다.
스스로 권위를 없애고 돈 안드는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을 실현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경제 부문에서 그는 '성장과 분배 동시 추구'를 내걸고 고루 잘사는 사회,균형 발전 등의 구호를 제시하면서 임기 중 '7% 성장' 공약을 내놨다.
그러나 정치의 초점이 이념 논쟁과 과거사 청산에 맞춰지면서 '가진 자'에 대한 혐오,반기업 정서,반미 등의 분위기가 형성돼 나라가 사분오열하는 양상이다.
이는 핵심 경제주체인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제성장률은 2003년 3.1%에서 2004년 4.7%로 반등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4.0%로 주저앉았다.
성장률만 놓고 보면 브라질보다 낮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기에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 우리 경제의 실력 발휘가 제대로 안 되고,경제의 체력이 자꾸 떨어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민들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
룰라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중도 좌파 성향을 띠면서도 경제에 관한 한 철저한 합리주의자,실리주의자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스스로 투자유치단장이 되어 브라질에 투자할 만한 나라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다.
반미를 포기하더라도 경제를 얻을 수 있다면 그 길로 가겠다는 태도다.
그는 성장의 뒷받침 없이는 국민들에게 나눠줄 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 좌파'로도 불린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올해 대선에서 재선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서민을 위하는 정권을 표방하고 분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좌파적이라면,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자주,평등,복지 등을 강조하는 정책에 비춰 실리보다는 오히려 명분을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으로 분배·복지 확대,국유화 등 좌파적 경제 정책으로는 더 이상 경제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독일 등 유럽의 좌파 사민당 정권들조차 해외 투자 유치,민영화,복지 축소 등 우파적 경제정책들을 앞다퉈 실행하고 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이름만 빼놓고 다 바꿀 수 있다는 게 요즘 세계 좌파 정권들의 행보다.
따라서 서민을 위하는 정책도 단순히 서민들에게 복지 혜택을 늘려 주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투자를 북돋울 성장 정책을 폈을 때가 분배를 강조했을 때보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훨씬 좋았다.
그런 점에서 가장 절실한 정책 방향은 비현실적인 명분론이 아니라 철저한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이념을 갖든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