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 1993년 '문민정부'란 문패를 달고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5·18 광주사태(뒤에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명칭이 바뀜) 재조명 작업을 벌이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광주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1979년의 12·12 사건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문제는 12·12를 어떻게 정의할지였다. 쿠데타로 규정한다면 사법처리라는 새로운 풍파를 몰고 올 것이고,쿠데타가 아니라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12·12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온 게 '쿠데타적 사건'이라는 희한한 문구다.

'적(的)'은 문법적으로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성격을 띠는''그에 관계된''그 상태로 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뜻으로 보면 영어의 형용사형인 '-tic''-tical'을 우리말로 옮길 때 적절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 고유어로는 '-스럽다'와 거의 같은 의미다. '적'은 또 수사적으로는 완곡어법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때는 어떤 특정한 단어가 충격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담을 때 그것을 완화하는 효과를 준다. 결국 '쿠데타적 사건'이란 '쿠데타는 아니지만 쿠데타 비슷한 사건'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적'의 이 같은 유용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글쓰기에서 이 말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적'의 쓰임새와 관련해선 일찍이 외솔 최현배 선생이 국어순화 차원에서 비판적인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한글 전용론 대(對) 국·한자 혼용론의 뿌리 깊은 논쟁을 주도했던 외솔은 이 말을 '-스런'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글 전용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과학적,일반적,역사적' 같은 말을 '과학스런,일반스런,역사스런'으로 바꿔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과도한 면이 있어 일상 언어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지금도 '-스런'은 많이 쓰인다. '자랑스런,사랑스런,평화스런' 따위가 그런 예들이다. 이런 것들에서도 '-적'과 '-스런'은 일 대 일로 대응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스럽다'는 대개 '-하다'가 붙을 수 있는 말이나 감성적 단어 등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적'을 남용하다 보면 자칫 '보람적 일터''유감적 사건''위험적 행동'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어법이 아니다. 모두 '-스럽다'를 써야 할 곳이다.

'사전적 조치''사후적으로 밝혀진''다방면적으로 뛰어나다'란 말도 '적'의 남용 결과다. '사전 조치''사후에 밝혀진''다방면으로 뛰어나다'가 더 분명하고 간결한 표현이다. '적'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간에 의미 차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체적인 기후는…''전반적인 부동산 경기가…'와 같은 말도 주의해야 한다. 이는 '기후는 대체로…''부동산 경기가 전반적으로…'와 같이 부사어로 쓸 것을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관형어로 쓴 것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