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한 금환본위제는 국제통화기금(IMF) 회원국 모두의 통화가 태환을 재개한 1958년에 가서야 완성됐다. 금환본위제는 무역의 자유화와 더불어 국제 결제에 있어서의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국가 간의 자본이동을 촉진하였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IMF나 국제결제은행(BIS)과 같은 국제기구와 긴밀한 협의 아래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환율을 브레튼 우즈체제의 출범 당시 정했던 상하 1% 범위 내에서 안정시켰다.

달러화의 가치에 자국 통화의 가치를 고정시키는 체제에서는 미국의 물가 변동에 맞추어 통화정책을 시행하면 되었다(환율이 고정돼 있으면 미국의 물가변화는 곧바로 다른 나라에 전달된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미국의 안정적인 물가변화의 혜택을 그대로 본 셈이었다.

그러나 금환본위제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금환본위제의 성공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우위에 기반하고 있었다. 1950년대 각국의 경제 회복과 성장은 금환본위제가 성립한 초기 미국의 이러한 지위에 영향을 주었다. 유럽국가들,특히 독일의 경제적 회복과 일본의 급부상,그리고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지위 강화 등은 모두 미국의 힘이 그만큼 약화된 것을 의미했다.

미국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는 기축통화였으므로 환율을 조정할 수가 없었다. 금 1온스당 35달러의 환율은 변함이 없었고,따라서 1940년대와 1950년대 저평가되었던 달러화는 이제 과대평가(overvaluation)된 상태가 되었다(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약해지면 달러화의 가치도 그만큼 하락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므로 과대평가된 것이다).

통화가 과대평가되면 경제 악화를 초래한다. 실업은 늘어나고,성장은 둔화되며 자본의 유출과 더불어 국제수지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이다. 바로 미국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금환본위제의 문제는 이처럼 달러화의 환율을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로 알려진 달러화의 신뢰와 국제유동성 공급의 문제가 그것이다.

쉽게 말해서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통화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고,동시에 세계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통화의 공급이 증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 유동성의 공급이 증가되기 위해서는,즉 국제시장에 더 많은 달러화가 유통되도록 하려면 미국으로부터 달러화가 더 많이 흘러나와야 하고,달러화가 흘러나온다는 것은 미국의 무역수지가 적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미국 달러화의 신뢰에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트리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을 관장하는 국제중앙은행 같은 것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했다. 새롭게 설립된 은행은 자신의 통화를 발행함으로써 국제유동성을 공급하면 기축통화인 달러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IMF가 이러한 은행으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트리핀의 제안은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 1965년에 프랑스는 금환본위제를 폐기하고 순수한 금본위제를 부활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금 보유의 규모가 늘어나야 했는데,금에 대한 각국의 통화가치를 동시에 낮추면 (다시 말해 금의 가치를 높이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프랑스의 이러한 제안 역시 거부했다.

1965년 당시 미국의 금 보유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에 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미국에도 도움이 되었겠지만,남아프리카나 옛 소련과 같은 주요 금 생산 국가들이 이러한 조치의 혜택을 보는 것에 대해 미국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게 금본위제를 부활하려면 미국이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놓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할 수 있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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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트리핀의 딜레마=1950년대 미국에서 수년간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자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또 미국이 경상흑자로 돌아서면 누가 국제 유동성을 공급할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당시 미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은 미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자 상태가 지속돼 미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준비자산으로서 신뢰도가 저하되고 고정환율제도 붕괴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한마디로 이래도 문제,저래도 문제여서 답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트리핀의 딜레마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