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탈북자를 부르는 말은'귀순용사'였다. 지옥을 등지고'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것에 대해 영웅처럼 환영을 받고 평생 먹고살 것이 보장됐다.

탈북자들의 처지가 고단해진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소련과 동구권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냉전체제가 끝나면서부터다. 남북이 이념과 체제로 대결을 벌일 필요가 없어지자 탈북 행동의 정치적 의미가 격하됐고 지원 또한 인색해졌다.

정부는 1997년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을 폐지하고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했다.

이 법은 세 차례 개정됐는데,개정 전엔 1인당 3600만원의 정착금을 받았으나 현행 2005년 개정 결과 액수가 줄어 1인 2000만원,2인 2900만원,3인 3300만원,4인 3700만원의 기본 정착금을 주고 있다. 1인 탈북자의 경우 2000만원 중 주거지원금 1000만원과 초기 지급금 300만원을 주고 나머지 700만원은 2년에 걸쳐 매달 나눠서 지급한다.

원래는 한꺼번에 주던 것이 분할 지급으로 바뀐 이유는 새터민들이 탈북 과정에서 '탈북 기획단'의 도움을 받은 뒤 정착하자마자 목돈을 뜯기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새터민 수가 늘어나고 정부 예산이 빠듯해지자 생활비 지원도 1인당 매달 54만원에서 32만원으로 줄었다. 이들은 대부분 노원구 강서구 양천구에 밀집해 있는 정부 영구임대아파트를 얻어 살고 있다.

액수가 줄었다 해도 경제적인 지원이 보장되는 곳이 남한뿐이기 때문에 탈북자들에겐 지금까지 한국행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최근 6명의 탈북자에게 '정치적 망명'을 인정해준 후로 미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탈북자 지원단체인 두리하나 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이번에 태국 이민국에 연행된 175명의 탈북자 중 30명이 미국행 수속을 밟게 될 것 같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의 난민이주 담당 차관보가 최근 태국으로 와 미국행을 원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으며,낙관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한국행을 포기하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남쪽에서 받는 차별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에선 신분을 감추려해도 탈북자라는 사실이 이웃에 알려지게 마련이고,이 때문에 받을 동정과 차별이 싫다는 것이다.

새터민 중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고,실제로 대학 진학에 성공해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적응을 이유로 자퇴하거나 제적당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새터민들이 경쟁이 치열한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빠져 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2001년 54건,2003년 90건,2004년 93건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런 소문을 미리 접한 탈북자들은 차라리 미국이라면 탈북자라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기독교 정서상 인권 문제가 일반적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을 만들고 이듬해엔 북한인권특사라는 자리도 신설해 변호사 제이 레프코위츠를 임명했다.

미국 정부는 연간 수백명의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의회에 연간 2400만달러의 예산도 요청했다. 이 요구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탈북자를 돕겠다는 의지는 천명한 셈이다.

탈북자를 돕겠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선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민감한 문제다. 미국이 탈북자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한 북한이 조용히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북·미 간 대치는 언제나 한반도의 긴장 고조로 이어져왔다.

정부가 바라는 것은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따른 한반도의 혼란을 막고 북한을 서서히 개방시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탈북자의 숫자가 늘어나면 경제적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지도 문제지만,탈북자가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돼 북한 사회 내부의 동요가 거세지는 것도 정부가 고민하는 바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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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청소년 전용학교도 생겨

◆ 남한 적응 도와주는 하나원


하나원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이다. 1999년 7월8일 경기도 안성에 문을 열었다. 경기도 분당의 새마을연수원에는 분원이 있다.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3개월간 사회적응 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 문화적 이질감 해소,기초 직업교육·훈련,심리 안정 및 정서순화 교육,역사교육 등이 진행된다. 또 6∼8개월간 직업훈련을 받는다. 하나원 교육을 마친 탈북자는 호적을 취득하고 정부 규정에 따라 일정 금액의 정착금과 자격 유무에 따라 취업 기회를 제공받는다. 해당 거주지에서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는다.

북한 노동당,내각,군 사회안전성 및 국가안전보위부 출신,북한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 또는 친·인척,첨단과학 특수 분야 종사자 등 특별관리 대상자는 국가정보원장이 보호 여부를 결정하고,별도의 정착 지원 시설(안전가옥)에서 보호를 받는다.

지난 3월에는 이와 별도로 '새터민 청소년 전용 중고등학교'가 생겼다. 14~20세의 새터민 청소년들은 지금까지 일반 학교에 편입할 수밖에 없었으나 수년간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떠도느라 3~4년의 수업 공백이 생긴데다 남북한 말이 달라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문화가 다르고 나이도 많아 또래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새터민 학교는 현재 임시 개교한 상태로 학생 수도 50명에 불과하지만 건물이 증축되는 내년 3월에는 정식 개교해 140여명의 학생을 수용할 예정이다.